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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일터괴롭힘, 왜 부각되는가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6. 7. 14. 08:30

당신은 존중받으며 일하고 있습니까?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얼마 전 ‘자음과모음’이라는 꽤 유명한 출판사에서 편집자 한 명을 기존 업무와는 상관없는 물류창고로 발령한 일이 있어 이슈가 되었다. 그곳에서 업무도 주지 않고 쓰레기장 같은 사무실을 쓰게 했으며, 그 사무실에 계열사의 관리자와 단 둘이 있도록 했다. 편집자는 사무실 안에서 흡연하는 관리자에게 항의했다가 폭언을 들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살펴보았더니 해당 편집자는 과거 사내에 CCTV를 설치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회사와 마찰을 빚은 적이 있으며, 언론노조 출판지부의 조합원으로 활동한 바 있었다. 회사는 이미 한 차례 그를 물류창고로 발령했었고, 내부에서 반발이 일자 다시 편집자로 복귀시켰다가 또다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

 

참으로 분노가 일고 어이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사 보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뉴스이기도 하다. ‘이렇게 벌어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한숨과 ‘그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것일까?’ 하는 의문, 그리고 ‘역시 헬조선!’이라는 자조로 마무리한다.

 

일터괴롭힘, 왜 부각되는가


▶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류은숙, 서선영, 이종희 저)


왕따, 부당해고, 노조원에 대한 탄압, 성희롱 등 노동자가 겪는 부당한 일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 부당대우에 관한 기존의 개념이 아닌 ‘일터괴롭힘’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권활동가 류은숙과 공익인권변호사 서선영, 이종희가 함께 쓴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코난북스)에서는 ‘일터괴롭힘’의 정의와 배경, 그 영향과 대응방법 등을 상세하게 일러준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일터괴롭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겪는 어려움과 고민 지점도 이야기하고 있다.

 

경쟁이 심화되는 사회 속에서 유대 관계가 파괴되고, 타인을 배려하고 수용할 수 있을만한 여유가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만한 대상을 물색하게 된다. 불똥을 맞은 노동자는 따돌림, 근거 없는 소문, 과도한 야근이나 업무 미배정 등의 정신적, 신체적 괴롭힘에 시달린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개별 사건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 개인에게 돌리며, 이러한 환경을 조장하거나 방치한다. 심지어 이를 일종의 노무관리 전략으로 사용하며 일터를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 조금이라도 튀거나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라는 듯이. 때문에 보기에는 갈등을 빚는 대상이 사측이나 정부가 아니라 동료, 상사, 고객 등 일상 속에 부딪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된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하는 곳에서 행복하지 않다

 

노동이 자기실현의 도구라는 이상적인 문구를 들먹이는 것은 지금의 노동자들에게 사치인 것 같다. 임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직장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설문조사에서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했는가’ 라고 물었을 때 ‘아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구체적인 사례와 유형을 들며 이런 일을 겼었는지 물었을 때에는 결과가 달라진다고 한다. 나 역시 짧은 회사생활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 책에서 일터괴롭힘의 예로 드는 항목을 주욱 읽다가 몇 군데에 체크하기도 했으니.

 

그만큼 자신의 경험이나 불만을 어떻게 해석하고 처리해야할지 당사자들 역시 잘 모르고 있거나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뜻한다. 일터괴롭힘은 바로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먹고살기 빡빡한 현대 사회에서 일자리 하나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삶의 반증이기도 하다.

 

일터괴롭힘은 그 특성상 장기간 반복되고 점점 정도가 고조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는 일 자체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지거나 공동체에 대한 불신,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직장이나 공동체, 조직에서도 불안감과 경계를 안고 일하다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확률이 높다.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정신적, 신체적 장해를 입는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에 맞섰던 故 한광호 열사는 어용노조의 괴롭힘과 사측의 수차례 징계로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운명을 달리하기에 이르렀다. 고위 간부에 의한 성추행을 알리고 2차 가해에 시달리던 쌤앤파커스 성추행 피해자는 몸무게가 줄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일터괴롭힘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각국에서 일터괴롭힘에 대한 연구와 대응, 관련 법제도화가 오래전부터 준비되거나 시행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제야 일터괴롭힘의 개념을 알리고 있는 수준이다.

 

사실 일터괴롭힘과 관련한 법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모든 현상을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고 노동자의 권리를 나열하는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었던 노동법 개악안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취업 규칙을 사장 마음대로 바꿀 수 있거나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가 쉬워진다는 것을 보면, 기업가들이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거나 적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일터괴롭힘을 비롯해 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노동자들의 연대의식과 집단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고, 다양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숙제가 남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일터괴롭힘을 당했을 때 다양한 법제도와 기관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어떠한 무기를 가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 확보와 주의해야할 사항은 무엇인지 조목조목 소개한다. 왜 괴롭힘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었는지, 왜 목격하고도 방관했는지 비판하거나 자책하기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다시,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다

 

“인권의 토대인 존엄성은 인간은 ‘원래’ 존귀하다고, 존엄성을 자연적 본성처럼 여기는 게 아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구체적 인간의 실제 조건을 따지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p33

 

인권이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적으로 약속한, 상호간의 철저한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존중이나 배려보다는 권력 관계와 위계가 우선시되고 개인보다 조직과 질서를 강조하는 문화가 강력하게 존재한다. 일터괴롭힘이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좀 더 연구해봐야 할 문제이지만, 이 둘이 서로 결합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일터괴롭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은 연일 보도되는 ‘갑질’이나 ‘묻지마 살인, 폭행’ 사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해보게 된다. 사회적으로 약화된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왜곡된 집단의식을 바탕으로 저성과자, 장애인, 여성, 내부고발자, 이주노동자들이 쉽게 타깃으로 상정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약점을 찾아 그것을 파고들어 그 위에 밞고 서는 것이 아니라, 그 약점들이 전혀 장애가 되지 않고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서로를 바라봐 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다. 일터괴롭힘을 ‘말하라’. ‘말하자’, ‘듣자’! 여기서부터 출발하자.  ▣ 서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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