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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어필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⑦ 외모 가꾸기와 표현의 자유



※ 2016년 <일다>는 새로운 페미니즘 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청년여성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소개팅을 통해 알게 된 ‘타인의 시선’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생전 교복치마 외에는 치마라곤 입지 않고 살았던 나였다. 대학생이 되어 파마머리를 하고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발 아픈 구두를 신고 언덕을 오르는 것이 불편했으면서도 ‘그래도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하는 생각에 남들 따라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 대학생이 되어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이런 내가 정말 나 자신이 맞나? 의문이 들었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부로 예전처럼 편한 복장을 하고 민낯에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다녔다. 당시 ‘예쁜 것’에 관심도 없었거니와 꾸미는데 소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몰랐다. 소개팅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개팅 성공하려면 꼭 예쁜 원피스 입고 가.”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던 대학 선배는 나에게 ‘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첫 인상이 결정되는 만큼, 반드시 블라우스와 치마 또는 원피스를 입고 나가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소개팅에 성공하기 위한 더 많은 팁이 있었다. 너무 떠들지 말고, 상대방의 말에 잘 웃어주고, 청순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얘기는 소개팅에서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의 이미지에 나를 맞추고 만들어가는 것이 일종의 예의이자 덕목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던 것 같다. 화장을 하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얼굴에 못난 부분이 있는지 신경 쓰고, 혹시나 살이 찐 것처럼 보일까 걱정하게 되었다. 제대로(?) 꾸미게 되었고, 그 덕분에 예뻐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예뻐진 것이 아니라, 남이 보는 시선에 나를 맞추는 데 익숙해진 것일 뿐이었다.

 

‘원래 대학 축제는 이런 것인가요?’

 

대학에는 1년에 한번 있는 학생들의 이벤트가 있다. 학내 구성원뿐만 아니라 외부인들까지 오는 행사, 대학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바로 대학 축제다. 대부분 동아리들이 축제를 위해 공연과 전시를 오랜 시간 준비하고, 많은 학생들이 정성을 들이는 행사이기에 나 역시 기대가 컸다. 고등학교 때도 축제는 있었지만 학생들의 자유로운 행사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학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한 대학 축제는 나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신입생 때 봤던 축제의 광경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빨간 등을 달고, 짧은 치마를 입고, 바니걸을 연상시키는 토끼 머리띠를 쓴 채 학교에 놀러온 ‘남자’ 손님들의 팔짱을 끼며 호객 행위를 하는 여학생들. “부킹 100%”, “미아리 텍사스”라고 적힌 주점 홍보 간판. 시끄러운 음악과 더불어 남자 손님 테이블에 한 명씩 앉아있는 여학생들…. 이 모든 것들이 엄청난 충격을 던져줬다.

 

이것이 과연 자유인가! 원래 대학 축제는 이런 것인가? 엄청난 불편함을 느끼며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학교에서 축제 기간이 되면 일찍 집에 갔다. 이 이질적인 분위기와 문화 속에서 나는 홀로 떨어진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축제에서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우리 학교 축제인데 정작 나는 참여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냈다.

 

축제의 주인은 누구인가! 학생들의 문제 제기

 

▶ 숙명여대 모 학과의 주점 포스터.


그러나 축제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낀 건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 축제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학생회와 동아리들에 속한 몇몇 학생을 제외하고는,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축제 주점에 참여하지 못했다. ‘대학 4년 다닐 동안 축제를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이러한 축제 문화에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당시 축제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의상을 포함한 선정적인 분위기에 대한 것이었다. 섹시하고 성적 서비스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은 여학생들이 남자 손님에게 호객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두 번째는 밤에 운영되는 주점이 재학생인 여학생들이 아닌, 외부의 남자 손님만을 위한 장소로 운영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축제를 즐겨야 할 재학생들이 축제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이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축제에 참여해서 직접 주점을 운영해 본 학생들 사이에도 공통된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었다. 자신들이 입은 옷이 사실상 학과나 동아리 차원에서 지정된 유니폼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가 없었고 그저 선배들이 입으라는 대로 입었다는 것이다.

 

학교 익명게시판은 축제를 전후로 매년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한 축제였는가, 왜 꼭 매년 이런 식으로 주점이 운영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학생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결국 2014년, 총학생회와 학생회장단의 논의 기구로 학생대표들 110여명이 모여 ‘전체학생 대표자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 결과로 <2014년도 청파제 규정안>을 내놓았다. 주점을 운영하는 학생들의 선정적인 의상을 제제하고, 벌금 등 규제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시는 축제가 이런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자정하자는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를 반겼다.

 

언론이 ‘여대생’을 소비하는 방식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우리학교 축제를 비판하는 글을 보았냐고 이야기를 꺼냈다. 인터넷에 접속하자마자, 포털사이트 메인에 여대 축제 선정성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도배되어있었다.

 

그리고 모든 기사에는 메이드 옷을 입은 여자가 허리를 숙이자 그 안에 망사 스타킹과 가터벨트가 보이는 캐릭터를 그린 주점 포스터가 학교 이름과 함께 삽입되어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해당 학과는 ‘섹시한 메이드’를 컨셉으로 잡아 주점에 있는 학생들이 메이드 복장을 한 채 서빙과 호객 행위를 했을 것이다. 수많은 비난 댓글이 달렸다. 선정적이다, 여대생이 이렇게 싸보여서 되겠느냐, 요즘 대학생들이란 등등.

 

언론과 네티즌들의 시각은 두 가지였다. ‘선정적이고 문란한 여대생들’이라는 반응과, ‘복장 규제를 하다니 꼰대와 뭐가 다르냐’는 반응. 두 가지 시선 모두 정작 학교 재학생들의 목소리와 주점 운영에 관한 규제안이 나오게 된 맥락은 살펴보지 않은 채 단정 짓고 있었다. 언론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대 축제’를 소비하고 있었다.

 

‘문란한 여대생’이라는 비난에는 여자대학생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각이 드러나 있었다. 원래 여대생은 참하고 조신하고 청순해야하는데, 이렇게 선정적이고 문란하면 되겠냐는 질책과 분노가 담긴 반응이었다. 매스컴은 축제를 둘러싼 학생들의 논의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고, ‘여대생’ ‘선정성’ ‘문란함’이라는 키워드로 조회수를 올리는 기사를 쉽게도 써내려갔다. 나는 우리 사회가 여대생을 소비하는 방식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성 해방인가, 성 상품화인가

 

학생들이 ‘복장 규제’라는 방식을 취한 것에 대해 비판한 기사들도 있었다. ‘규정안이 쿨 하지 않다’, ‘군부독재 시절 두발 제한 치마길이 제한과 다를 게 무엇이냐’, ‘성 해방에 역행하여 성 보수주의를 향해 달려가는 여대생’ 등의 기사와 여론이 그것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사실 대학 축제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비판의 전제로 깔린 시각은, 대학 축제는 자유로우며 복장은 개인의 선택인데 그러한 자유를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 축제 주점에서의 성 상품화 문제는 비단 우리 학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위 사진의 출처는 타 대학(남녀공학, 여대 포함)들의 신문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보도한 내용에 포함된 일부. 

 

하지만 내가 본 대학 축제는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선배들이 입으라는 대로’ 의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는 학생들의 의견도 제기되었고, 주점을 통해 학생회나 동아리의 활동 예산을 확보하려는 주최 측에는 자치보다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도록 배우고 강요 받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대학 축제에서 여대생들이 주점을 운영할 때 섹스어필을 하는 복장을 입고 남성 고객들을 호객하는 것은, 그저 표현의 자유라고만 해석될 수 없는 맥락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성 상품화지 성 해방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미 자리잡은 축제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학생 자치적인 규제’(교수나 교직원, 외부의 규제가 아닌)라는 장치를 통해 일단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착한 몸매”가 요구되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나는 여성의 외모 가꾸기와 섹스어필이 ‘여성성’과 어떤 연관 고리를 가지는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보게 되었다. 성형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외모를 꾸미고 치장하는 행위는 여성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표현의 자유나 개인의 욕구 충족 또는 자발성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여성들의 외모 가꾸기와 섹스어필이 반드시 남성의 시선에 맞춘 수동적인 행위라고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여성들이 ‘성적 존재’로서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밖으로 보이는 현상만 보았을 땐 구분되지 않을 수 있고 미디어에 의해 왜곡되어 전달될 때도 있지만, 남성의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성적 표현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고 지지받아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여성성을 강요하는 문화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것이다.

 

▶ 여성들은 남성의 시각에 맞춘 여성의 이미지에 자신의 몸을 맞추도록 요구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은 평소에도 자신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기보다 ‘남’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는데 익숙하다. 20대 여성을 주 고객층으로 삼는 인터넷 쇼핑몰들은 ‘남친 코피 팡 원피스’, ‘썸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머리’,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 등의 문구를 상품 홍보에 활용한다. 내가 신을 신발 하나를 사려고 해도 ‘남자들이 좋아하는 신발’을 사라는 광고를 보게 되는데, 이러한 문구에 곧 익숙해진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시각에 맞춘 여성 이미지에 자기 몸을 맞추도록 요구받으며 자란다. “착한 몸매”라는 말이 유행이 된 사회에서, 예뻐야 한다는 것은 인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과 동급인 덕목이 된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것이고, 날씬하지 않으면 자기 관리도 못하는 게으른 사람이다.

 

여자 아이돌을 모델로 채택한 한 통신사는, 통신과는 무관하게 모델의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보여주는 광고로 인기를 얻는다. 여성 기상캐스터는 섹시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정장을 입고서 오늘의 날씨를 설명한다. 미디어를 통해 흔히 볼 수 있는 성 상품화가 여자아이들의 삶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얼마큼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한번쯤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여성의 권리가 높아졌다는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내 몸에 대해서조차 ‘주체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 설경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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