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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나와 마을로 들어간 청년들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교실 없는 대학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교실 없는 대학 (Hoi An Sustainability Field School)

 

2014년 시작된 베트남 중부 호이안의 <교실 없는 대학>에서는 청년들이 마을 공동체와 만나 주민들의 실질적인 요구와 필요를 이해하고, 유기농업과 공공시설 설치, 마을 공정여행 등 지원사업을 펼치며 스스로 배움의 장을 열어간다. 학습과 자원활동이 융합된 서비스-러닝(Service-Learning) 프로그램이다. 베트남 중부의 후에, 다낭, 호이안, 냐짱의 대학생 30여 명이 참가하는 <교실 없는 대학>은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에 연 2회에 걸쳐 진행된다. 호이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트남 NGO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센터>와 판쭈찐 대학을 비롯한 베트남 중부 대학들의 협조와 지원 아래 이뤄지고 있다.

 

진정한 배움터, 마을 공동체로 가자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쳐 배우기,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일하며 배우기, 학생 스스로 프로그램을 주도하기”

 

<교실 없는 대학>의 세 가지 운영 원칙이다. 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처음부터 당황스럽다. 이름처럼 교실만 없는 것이 아니라, 교재도 없고, 정해진 커리큘럼도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그들의 교실은 호이안의 한 마을이다. 학생들은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한 달간 온몸으로 부대낄 ‘사람’들을 교재 삼아 스스로 배워야 한다.


▶ 참가자들의 토론과 발표를 통해 마을 지원사업을 하며 배움의 장을 여는 <교실 없는 대학> ⓒ아맙


베트남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교육과 자원활동이 결합된 프로젝트 <교실 없는 대학>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고 있을까. 불과 2년 사이에 마을 놀이터, 초등학교 하수처리시설 등 창의적인 공공시설을 만든 성과로 베트남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교실 없는 대학> 청년들의 이야기를 <아맙>이 들어보았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얼마 전 <교실 없는 대학> 학생들이 만든 놀이터를 답사했어요. 3백 달러든 1천 달러든 예산에 상관없이 주어진 여건 속에 학생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만든 놀이터 곳곳에서 독특한 아이디어와 아기자기한 매력이 돋보이더군요.

 

쩐 비엣 주이(교실 없는 대학 프로젝트 매니저. 이하 ‘주이’): 네, 마을 놀이터 지원사업으로 <교실 없는 대학>이 유명해지고 언론을 타기도 했죠. 그만큼 마을마다 놀이터가 절실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요. 교육과 자원봉사를 결합한 프로젝트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교육 방식이라서 더 각광을 받은 것 같습니다.


수정: 교실 없는 대학! 이름이 참 멋집니다. 어떤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인지 궁금한데요.

 

주이: <교실 없는 대학>은 학생들이 마을 지원사업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경험을 쌓는 서비스-러닝 프로그램이에요. 베트남의 교육 시스템이 보통 주입식이고 이론에 치중해 있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제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졸업하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 잘 모른 채 사회에 던져지는 경우가 허다하죠. 대학 졸업생들의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현실과 괴리되고 낙후한 교육 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교실 없는 대학>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 삶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배움의 공간을 교실이 아닌 마을 공동체로 옮겼어요. 학생들은 마을과 소통하면서, 주민들의 어려움이나 요구 사항을 이해하고 토론을 통해 마을 지원사업을 꾸려내지요. 학생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요. 기본적인 틀과 원칙만 주어질 뿐 세부 커리큘럼은 스스로 만들어 갑니다.


▶ <교실 없는 대학> 프로젝트 매니저 쩐 비엣 주이.    ⓒ 아맙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거리 찾기

 

수정: <교실 없는 대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이 되나요?

 

주이: 쉽게 말하면 수업을 ‘지양’하고 배움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어요. 학교에서 학습한 이론을 실제에 적용해 마을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배움을 얻도록 하는 거지요. 참가자들이 모여 마을 사업을 정할 때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민들의 어려움이나 요구 사항을 꼭 반영해야 한다는 거죠.


놀이터 지원사업의 경우, 학생들이 짓고 싶은 멋지고 현대적인 놀이터가 아니라 마을의 전체 풍광과 주민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놀이터를 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놀이터 외양도 디자이너의 시선이 아니라 주민들의 시선을 반영해 설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자재들도 최대한 지역 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하고 폐타이어 등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하죠.


학생들은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거리를 찾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실제 조건들과 몸으로 부딪치면서 방법을 찾아내죠.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건축가, 디자이너, 기자 등 전문가를 초청해 고민을 나누며 자기 관리, 시간 활용, 건강 관리 등에 대한 소프트스킬 강의를 듣기도 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센터>에서는 환경 문제와 지속 가능한 발전, 유기농 등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죠.

 

▶ 프로그램이 끝난 후 학생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지은 다낭(상)과 후에(하) 지역 <교실 없는 대학> 놀이터.  ⓒ아맙

 

수정: 주이 씨는 언제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나요?

 

주이: 저는 2012년부터 호이안의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센터>에서 일했습니다. 2014년에 센터가 아일랜드 외교부 개발협력부(Irish Aid)의 지원을 받아 <교실 없는 대학>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저는 1기와 2기 때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가했습니다. 참여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죠.

 

수정: 호이안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대학생들도 참가한다고 들었습니다.

 

주이: 베트남 중부의 주요 도시인 후에, 다낭, 호이안, 냐짱 등지에서 대학생들이 참가합니다. 호이안의 판쩌우찐 대학을 포함해 베트남 중부에 있는 6개 대학이 함께 프로그램을 꾸리는데요, 학생들에게 신청서를 받고 인터뷰를 거쳐 참가자를 선발합니다. 학교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대학 기숙사 또는 학교 인근 홈스테이에서 3~4주간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각자의 지역에 돌아가서도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마을 놀이터 짓기나 유기농 텃밭 가꾸기 같이 <교실 없는 대학>에서 했던 사업을 이어가기도 해요. 냐짱대학의 학생 다섯 명은 자신의 고향에 놀이터를 지었죠. 우리는 학생들이 <교실 없는 대학>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전문가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농민과 여행자를 잇는 공정여행 프로그램 꾸려

 

수정: <교실 없는 대학>에서 학생들은 주로 어떤 사업을 하나요?

 

주이: 앞서 소개한 마을 놀이터 건립, 초등학교 하수처리시설 공사, 유기농 농장 가꾸기, 마을 공정여행 사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 환경 문제를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고 유기농, 친환경 상품 바자회를 열기도 해요. 마을 사업은 항상 주민들과의 소통과 어울림 속에서 진행되는데요, 학생들이 불볕더위에 구슬땀을 흘리며 놀이터를 짓고 있으면 주민들이 끼니를 챙겨주고 음료수나 새참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놀이터가 완공되면 닭을 잡아서 학생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요. 마을 사람들과 정감을 나누면서 학생들이 느끼고 배우고 것이 참 많습니다.

 

하수처리시설 공사는 냄새도 많이 나고 육체적으로 정말 고된 작업인데요, 그럼에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학생들이 만든 이 시설은 호이안 인민위원회에 모범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죠. 이 프로그램을 마친 뒤 친환경 건축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친구도 있어요. 고향에 돌아가 친환경 농장을 시도해 보겠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수정: 호이안은 베트남 유명 관광도시인데요, <교실 없는 대학>에서 진행하는 공정여행은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합니다.


▶ 학생들이 진행하는 하수처리시설 공사 현장.  ⓒ 아맙


주이: 호이안 중심가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껌탄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교실 없는 대학>이 만든 놀이터나 하수처리시설이 많은 곳이죠. 껌탄 마을은 투본강 하류 바닷가 근처에 있는데, 100헥타르 규모의 물야자나무 숲이 유명해요.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베트남 게릴라들이 투쟁을 벌이던 항전 기지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껌탄 마을이 생태여행 장소로 주목을 받고 있어요. 여행자의 발길은 늘고 있지만, 수익의 대부분이 여행사에게 돌아가고 있죠. 마을은 여행자들로 붐비는데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주민들과 함께 여행 코스를 개발하고 <도시 발전을 위한 행동센터>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유기농 농장 체험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죠. 주민들이 직접 여행자들을 안내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요.

 

농민들이 여행자들에게 유기농을 선택한 이유나 유기농사의 어려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행자들이 일손 돕기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기농 농장 체험 프로그램에는 외국인뿐 아니라 베트남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와요. 주로 초중고 학생들이 견학을 옵니다. 호이안시 교육청에서 유기농 교육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도 학생들의 방문이 계속될 것 같아요.

 

건축이론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설계하다

 

수정: <교실 없는 대학>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주이: 처음엔 수줍음도 많이 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던 청년들이 직접 사업 기금을 모금하러 호이안 곳곳을 발로 뛰어다닙니다. (웃음) 불과 몇 주 사이에 아주 적극적이고 사교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놀라곤 하죠. 누군가 던져준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 결정한 사업이기 때문에 더 애착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놀이터 사업의 경우 건축학과 학생들이 설계를 맡을 때가 많은데요. 처음에는 학교에서 배운 건축 이론을 주장하던 학생들이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친구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워갑니다. 참가자들이 직접 재원을 마련하는 건 아니지만 예산 규모에 따라 사업 내용을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것은 바로 학생들의 몫입니다. 놀이터 건립 예산이 3백 달러든, 1천 달러든 그에 맞춰 자재를 고르고, 경비가 부족하면 지원처를 수소문해 보는 등 대안을 모색하죠. 그러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현실 대처 능력을 키웁니다.

 

▶ 마을 인민위원회, 주민들과의 소통 속에서 마을 사업을 진행하는 <교실 없는 대학>  ⓒ 아맙

 

수정: <교실 없는 대학>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올해로 2년째인데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주이: 학교가 시작되면 약 한 달간 참가자들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판쩌우찐 대학으로부터 기숙사 지원을 받거나 홈스테이를 구하는 문제가 쉽지 않고요. 학생들의 숙박은 물론 식사 등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일도 만만치 않죠. 미리 치밀하게 계획된 커리큘럼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을 통해 사업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에, 원만한 진행이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굉장히 좋아하고 정말 열성적으로 참여합니다. 학생들은 책이 아닌 곡괭이와 삽을 들고, 교수의 강의가 아닌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죠. 또한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에게 배우는 것도 많고요. 대학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실습,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한 달간 부대끼다 보니 자신의 인생에 남을 친구를 사귀기도 합니다. 매 학기마다 커플이 탄생하기도 하고요. (웃음)

 

앞으로는 학교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참가비를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요. <교실 없는 대학> 프로그램이 대학교의 서비스-러닝(Service-Learning) 교과목으로 선정되어 운영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고요. 이번 방학 시즌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공정여행 팀장)

 

<아맙> 카페: cafe.daum.net/doanhnhanxahoi락처: 070-7554-5670(베트남사무소)

<아맙> 후원 계좌: 신한은행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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