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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녀’이거나 ‘개념녀’이거나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① 존중을 원해



※ 2016년 <일다>는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당사자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첫 기사의 필자는 인문학카페36.5º 대표 홍승은 씨입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효녀연합 “미소녀”


▶ 동생 승희가 올해 초 대한민국 효녀연합 피켓팅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 되었다. (우측) ⓒ사진: 장건섭


지난 1월, 신문에 동생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효녀연합-”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는 익숙한 얼굴. 승희였다.

 

아베 신조와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졸속 협상, 그리고 이 협상에 항의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를 ‘종북 세력’으로 모는 어버이연합의 망언 등에 분노하던 사람들은 동생의 피케팅에 관심을 집중했다. 꽤 많은 언론에 동생의 활동이 언급되었다. 나에게도 연락이 몰려왔다. “뉴스에 나온 거 승희 맞지?”, “승희는 괜찮아?” 연락을 안 한지 꽤 오래된 지인들까지 합세해서 하루종일 카톡이 북새통이었다.

 

처음 동생 사진을 기사로 봤을 때 가족들과 나는 “오, 승희 또 나왔네”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익숙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시작된 촛불집회 때부터 2016년인 지금까지 햇수로는 9년 동안, 그때그때 마음이 동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집회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종종 언론에 노출되었다.

 

대규모 집회가 아니고서는 다수의 집회에서 안면을 익힐 정도로 자주 보는 얼굴들이 많았고, 언론에서도 으레 ‘젊은 여자’인 우리를 비추는 경우가 많았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도 “너네는 꼭 집회에 나가면 언론에 나오더라” 하고 종종 이야기했고, 몇몇 기자들도 ‘젊고 눈길을 끄는 여자’가 언론에 노출되어야 대중이 반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정도로, 사회운동 이슈에서도 ‘눈길을 끄는’ 여성에 대한 집중은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게다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예술 활동을 하며 거리에서 각종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내온 동생이 언론에 회자되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일베>나 보수 진영에서 동생을 비판하는 자료들을 보면 승희는 ‘전문 시위꾼’으로 불릴 만도 하다.

 

통일대행진 ‘촛불여대생’, 반값등록금 집회 ‘유심열사’, 실신한 ‘여대생’,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광화문 ‘시위녀’, 광화문 ‘청순녀’, ‘돌직구녀’, 청년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소셜아티스트, 신촌대학 ‘대자보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업을 해서 벌금을 많이 받았다고 ‘벌금녀’, 그리고 보수 진영의 ‘종북녀’, ‘통진당녀’까지…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생에게 붙여진 이름은 참 많다. 거기에 올 1월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대한민국 효녀연합 미소녀.”

 

신문을 읽은 그날 밤,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봤어? 나 효녀됨. ㅎㅎ 효녀연합에 이어서 별별 연합이 생기고 있어” 라면서 내게 보라고 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기사들 속에서 익숙한 언론 플레이과 여론의 반응을 발견했다. 언론에서는 동생의 ‘미소 짓는’ 사진을 통해 ‘미소녀’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3개월 전 “광화문 국정교과서 반대 청순녀”라고 동생을 호명해 논란이 되었던 ‘OO녀’ 붙이기는 여전했다.

 

댓글들도 언론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얼굴도 예쁜데 개념도 있네”, “역시 얼굴이 예쁜 여자가 개념이 있어”와 같은 댓글들이 추천 1-2위를 앞다투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각종 연합(오빠연합, 커피연합, 삼촌연합 등)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름부터 눈에 띄었던 ‘대한민국 오빠연합’은 “효녀연합을 지켜주겠다”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혔다.

 

‘효녀연합’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과 동시에 다양한 시각에서 동생의 행위가 해석되고 재단되었다. 나는 우리가 활동하며 반복적으로 겪어왔던 ‘여성 활동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눈에 띄었다. 특히 그 사안이 여성인권과 직결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기 때문에, 이대로 논의가 흘러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동생을 질투하는 이기적인 “꼴페미”


▶ 홍대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피켓 만들기에 열중인 우리 자매. (2011년)  ⓒ홍승은


내 페이스북에 이러한 문제 의식을 남겼다. 지금 효녀연합을 바라보는 “얼굴도 예쁜데 개념도 예쁘네”라는 말에 문제를 제기하며, 동생을 또다시 ‘미소녀’, ‘개념녀’, ‘종북녀’로 이름붙이는 행위를 그만두라는 내용도 적었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 민족 문제로만 논할 사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반복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 혐오와 같은 젠더-섹슈얼리티 문제와도 연결해서 성찰해야 한다고 느꼈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며, 이것은 굳이 전쟁 중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이뤄져왔던 ‘여성혐오-여성멸시’에서 비롯된다는 것만 간단하게 말하고 싶다. ‘강간, 성희롱, 성차별,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성노예’는 같은 연장선에 있다. 여성을 ‘인간’이 아닌 ‘여성’으로만 보는 게 여성혐오이며, 여성혐오는 여성멸시와 여성숭배를 동시에 의미한다.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위안부’를 두었던 것, 일본에서 살아 돌아온 ‘위안부’를 멸시했던 건 조국의 남자들이었다는 것도,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가 ‘위안부’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중 일부)

 

동생이 내 문제 의식에 동의하고 내 글을 공유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글이 노출되었다. 순식간에 다양한 피드백이 왔다. “‘위안부’ 문제를 여성 문제라고 하면 욕먹기 때문에 말을 못했는데 이렇게 여성 문제로 들고나와줘서 고맙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데 말해줘서 고맙다”, “궤도가 이탈되지 않도록 잡아주어서 다행이다”라는 반응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예쁘다는 건 얼굴이 아니라 개념이 예쁘다는 것입니다”, “위안부가 어떻게 젠더 문제냐”라는 식의 다른 반응들도 있었다.

 

다양한 층위에서 내 글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쏟아져 당황스러움을 느끼던 중에, 한 지인이 좀 문제가 되는 글이 있다며 나에게 캡처한 이미지를 보내주었다. 이미지 속에는 두 남자가 나를 조롱하는 대화 내용이 있었는데 “동생은 21세기 운동가형이고, 언니는 20세기 먹물형이다”라고 시작한 글에서 그들은 다짜고짜 나를 ‘재수 없는’, ‘동생 활동에 찬물을 끼얹은 언니라는 년’으로 호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그 글에 동조하고 있었다.

 

당시는 워낙 다양하게 내 글과 내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일에도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미지 속 글들은 원색적이고 저속한 표현이 가득했다. 묻지마폭행을 당한 것처럼 몸이 떨려왔다.

 

그들이 진심으로 나에게 화가 나있었다. ‘대의’를 추구하는 21세기형 운동가 동생의 앞길을 망친 옹졸한 페미니스트라고 나를 명명하며, 경멸하고 조롱했다. 너무나 격렬한 반응에 ‘내가 정말 잘못했나, 내가 이기적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전에 나는 내 정체성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젠더 문제를 꺼내는 순간, 나에게도 이름이 붙었다. 이기적인 ‘꼴페미’. 대의에 찬물 끼얹어서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 문득 5년 전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5년 전 여름 농활에 갔을 때, 당시 노총각이었던 이장님이 나에게 ‘임자’라며 약간의 스킨십을 했다. 그런 이장님의 태도가 불편하다는 의견을 운영회의에서 내놓았을 때, 한 남자선배가 “너는 이장님의 호의를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야해? 이장님이 농민들과 화합을 위해서 얼마나 애써주셨는데, 죄송하지도 않아? 정말 너무한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울분을 토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선배들(애석하게도 모두 남자선배들 뿐이었다)도 침묵으로 그 선배의 문제 제기에 동조했다. 그 속에서 나는 ‘굳이’ 불편함을 느끼고 이야기를 꺼내서 농민들과의 화합이라는 대의를 망친 옹졸한 여자가 되었다.

 

그 뒤로 미래복지아카데미, 청년대안연구소, 인문학카페36.5º와 같은 운동 조직을 꾸려 활동을 할 때에도, 조직 문화에서 성차별 언어나 태도에 변화를 요구하는 동생과 나에게 돌아온 반응은 “홍자매는 너무 감정적이야. 너무 예민해”였다. 감정적인 것에 치우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사람들을 조직하며 함께해야 한다고 우리를 타이르고 달랬다.

 

“페미니스트만 아니면 돼”

 

다시 올 1월로 돌아와서, 묻지마폭행 같은 온라인 조리돌림을 당한 뒤 주변 사람들의 조언대로 굳이 상대하지 않고 페이스북에서 바로 그들을 차단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둘은 온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온라인 지지자들을 거느린 자칭 ‘진보마초’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나 이전에도 많은 페미니스트들을 비난해왔던 걸로 명성이 자자했다.

 

처음엔 무시하면 자연스럽게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악착같이 나를 비난하고 헐뜯었다. 비난은 내 ‘발언’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와 동생에 대한 가족 관계와 ‘나’라는 사람 자체에까지 이어졌다. “동생을 질투하는 언니”라는 표현은 그나마 나은 표현이었다. “카인과 아벨 이후 처음”, “저런 언니라면 없느니만 못한데”부터, 나는 “좌익소아병”, “벌레만도 못한”, “이기적인”, “병신”이 되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글을 공유하고 ‘좋아요’ 해주는 것에도 큰 충격을 받았다. 폭력의 주체가 <일베>가 아니라 노란리본을 단 사람들이라는 게 놀라웠다.

 

▶ 인문학카페36.5º의 2016년 1월 9일자 입간판.   ⓒ홍승은


한때나마 동생을 존경한다며 ‘리스펙트’(존경) 운운하던 그들은, 동생이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지금도 일어나는 젠더-섹슈얼리티의 문제이니 하나의 적을 상정하지 말고 함께 성찰하길 바랍니다’ 라고 말하자 바로 돌변했다. 그들은 “착한 모범생을 일진 언니들이 망쳐놓은 꼴”이라며, 동생에 대해서도 스물일곱이나 돼서 언니 말만 듣는 비주체적인 인간이라고 조롱했다. 그들이 말하는 ‘존경’은 이런 것이었다.

 

<대한민국 효녀연합을 대하는 오빠들의 자세.

 너네는 얼굴도 어여쁘고 마음도 예쁘니 우리가 지켜주겠다.

 너네는 “바람직한 사회운동”하는 개념녀이니 지켜주겠다.

 페미니스트만 아니면 돼~ ㅎ  

                                 -인문학카페36.5º 입간판>

 

페이스북 <김치녀> 페이지에서도 “효녀연합의 역겨운 실체”라며,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동생을 ‘김치녀’, ‘메퇘지’라고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그들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동생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회’운동을 해야지 ‘여성’운동을 하게 되었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대체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의 차이는 무엇이며, 여성운동은 뭐가 이기적이라는 걸까.

 

여자치고 ‘기특하거나’ 여자라서 ‘모자라거나’

 

어릴 때부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역할과 책임이 싫었다. “여자는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야해”라는 엄마의 핀잔부터, ‘여자는 피부가 깨끗해야해, 여자애는 얌전해야해, 여자는 털털하더라도 여우같은 면이 있어야지, 여자는 여자는 여자는…’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온 여자의 조건. 뿐만 아니라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돈을 많이 벌어야지, 스펙을 쌓아야지, 도전을 해야지, 자식은 효도를 해야지, 직장인은 끈기를 갖고 잘 참고 살아야지…’와 같은 ‘OO의 조건’이 싫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 보니까 사회운동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두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대의를 위해서이기 전에, 부당하게 내 삶을 재단당하거나 평가받고 싶지 않아서. 내가 자유롭고 싶어서. 내가 스스로의 책임과 역할을 설정하고 그것을 지키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어서 사회운동을 선택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운동인데, 돌이켜보니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와- 여자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기특하다”였다. 우리가 처음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했을 때만해도 그렇다. 언론들이 ‘촛불소녀’를 대명사로 칭할 만큼 수많은 여학생들이 나서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왔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여자들은 이런 사회활동에 관심 없잖아. 연애나 사적인 거에나 관심 있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래서 동생과 나는 어떤 단체에 가도 ‘홍자매’라고 불리며 그 ‘의외성’이 부각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의외성이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하기 좋은 지점이었을 것이다. 수년간 동생에게 붙여왔던 꼬리표처럼, 아무리 정치적 피켓을 들고 서있어도 ‘청순녀’ ‘미소녀’라는 꼬리표로 부각된다. 이렇게 청순하고 미소가 예쁜 여자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니 “얼굴도 예쁜데, 개념도 있다”는 것이다.


▶ "나는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서 사회운동을 한다." 인문학카페36.5º 미술소통모임(2014) 우측이 필자.  ⓒ홍승은

 

이렇게 여자라서 주목받는 ‘의외성’은 반동적으로 여자는 ‘역시’와 같이 비하하는 평가의 연장선에 있었다. 사회운동을 하며 만났던 전 남자친구는 “너는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말이 통해서 좋아”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너는 여자들 특유의 감정적인 면이 있어. 너는 나처럼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해”하며 나를 깔아 내렸다.

 

남자친구만이 아니라 사회적 활동을 하며 만난 남자들도 나를 ‘동료 혹은 동지’라고 여기기 전에, 잠재적 연애 대상 혹은 자신이 가르쳐줘야 하는 부족한 여자 정도로 여겼다. 역사와 각종 철학에 대해 줄줄 읊으면서도 젠더 감수성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1월 이후, 우리의 활동이 회자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인문학카페36.5º에 찾아와서 응원해주고, 과일과 책 선물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젊은 여자들이 기특하다”는 반응과 “젊은 여자라 모자라다”는 두 가지 반응. 이것을 보며 동전의 양면처럼 무척 닮아있는 칭찬과 비난 사이에서 기분이 오묘해진다. 기폭제가 된, 우리를 향한 인신공격과 폭력은 일면 수그러드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러한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자는 ‘김치녀’이거나 ‘개념녀’로 분류된다. 요즘에는 김치녀, 된장녀 말고도 생강녀, 간장녀라는 별 이름표가 다 붙는다. 이렇게 분류되고 대상화되는 게 싫어서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선택한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젊은 여자는 꽃으로 취급되며 어떤 역할을 요구받는다. 동생이 사회운동가로서 퍼포먼스를 했을 때에는 “개념녀”가 되고, 페미니스트로서 발언을 할 때에는 “배신자”가 되는 것처럼.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사는 걸 억압받는다. 온전한 내가 되고 싶을 뿐인데, 그게 참 어렵다. ▣ 홍승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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