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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들키지 않는 강간’ 문화에 선전포고를!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6. 3. 28. 08:30

‘들키지 않는 강간’ 문화에 선전포고를!

비명에 가까운 캠페인 <#그건_강간입니다>⑤



※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그건_강간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의 기획단이 그동안 논의한 내용과 변화를 위한 질문과 제안을 담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골뱅이 따먹는다”는 말이 농담?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던 낯선 남성과 술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끊긴 후 일어나보니 알몸으로 모텔에 누워있더라는 거다. 그 얘길 듣고서 자기보다 더 화를 내는 나에게, 친구는 그 남자 이름도, 연락처도 모른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숨지었다. 결국, 친구는 술에 취한 자신의 실수였다는 자조로 괴로운 기억을 묻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골뱅이 따먹는다”라는 말이, ‘강간’이라는 무서운 맥락은 삭제된 채 마치 농담처럼 오고 가는 사회에서 나는 살고 있다. 그 “골뱅이 따먹는” 행위의 피해자가 바로 내 친구다. 그녀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그 표현은 절대 농담이 될 수 없다.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강간 약물 사용 후기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료여성의 술잔에 ‘강간 약물’을 몰래 타서 먹인 후, “그녀가 먼저 흥분해서 달려들었으므로 합의된 관계였다. 깨끗했다”는 내용의 글도 있었다. 그의 글에 약물 판매자는 “여성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고 먹이라”는 조언을 남겼다.


▶ 2월 14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동의하고 하는 행진’에서 손피켓.   ⓒ 한국성폭력상담소

 

우리는 강간 범죄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여성들은 이러한 경험들 속에서 절대 다수의 남성들을 향해 ‘이 남자가 잠재적 강간범은 아닐까’ 하는 공포를 가지고 살도록 요구 받는다.

 

왜 이런 남자들이 존재할까. 내 주변의 남성들은 모두 ‘괜찮아’ 보이는데, 선량해 보이는 그들도 결국 ‘잠재적 강간범’일 수 있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캠페인 기간 내내 나를 짓눌렀다. 이들도 흥분제를 먹인 여성을 강간하는 것을 ‘합의 후 관계’라고 여기고, 술 취한 여성을 강간하는 것을 두고 ‘골뱅이 따먹었다’는 말을 술안주처럼 지껄일까?

 

처벌받지 않는다면 “강간하겠다”

 

이런 공포감을 기반으로 나는 내 주변 남성들을 대상으로 작은 실험을 기획했다. ‘남성들이 향유하는 성 문화’에 대해 알고자 몇 개의 질문지를 구성하여 세 명의 남성 동료와 4-5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경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들은 남성이 강간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본능이며, 모든 남성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남성들끼리는 여성에 대한 ‘언어강간’ 문화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가장 단적인 예가, 군대에서 여성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저 여자를 벗겨서 어떻게 하고 싶다’는 식으로 강간에 대한 판타지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강간은 극단적인 경우, 대학에서 함께 강의를 듣는 동기 여성을 대상으로도 가해지며, 해당 여성에 대한 보복성 심리를 투영한 가학적이고, 잔인한 형태의 언어강간으로까지 발전한다고 했다.


나는 이들에게 만약 당신들이 술에 취해 의식이 없이 쓰러진 여성을 발견했는데, 그 어떤 법적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면, 강간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세 명 모두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 2월 25일 열린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그건_강간입니다> 최종발표회.  ⓒ한국성폭력상담소

  

그런데 여기서 참 아이러니한 결론이 났다. 이들에게 나는 만연한 성폭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어떤 운동을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세 사람은 모두 강력하게 남성들의 본능에 내재되어 있는 강간 욕구는 바꿀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남성들의 도덕성이나 인식의 변화에 기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생각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놈들이 문제라고. 그러므로 실제 법적으로 선고된 강간범들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강화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수많은 의문을 낳는 결론이었다. 본인들도 매일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강간 문화’를 향유하면서, 법으로 유죄가 선고된 강간범들에 대한 처벌을 그리도 강조하는 걸까?

 

‘강간 문화’가 강간범을 낳는다

 

남성 집단의 성문화는 극단적으로 ‘강간’이라는 행위를 남의 문제인 듯 타자화하고 있다. 강간범이라는 자들은 정신이상이고 극악무도한 범죄자이기 때문에 나는 강간범과는 거리가 멀다는 논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타자화와 금기화를 통해, 본인이 행하는 언어강간이나 여타 성폭력적인 행위에 대해 응당 느껴야 할 죄책감을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강간을 하고 싶고, 처벌 받지 않을 기회가 온다면 행할 것이지만, 그걸 실제로 행동에 옮겨 법에 기소되는 사이코패스들과 나는 다르다’. 이런 식으로 강간을 혐오하면서도 강간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집단이 형성되는 것이다.

 

실제 많은 성폭력 가해자의 특성에 대한 연구들도 가해자와 일반 사회구성원 간에 큰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유사점들이 더 많다고 보고하고 있다. 남성에 의해 행해지는 성폭력 행위는 단지 그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고, 일부는 심지어 학습되는 것(Sarah Brown, 2005)이다.

 

결국 문제는 강간범 개인들이 아닌,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강간 문화’다. ‘골뱅이를 노려 쉬운 섹스에 골인하라’든가, ‘저항하는 그녀를 강간 약물로 굴복시키라’는 등의 사회적인 메시지. ‘강간범은 정신이상자가 많을 것’이고 ‘여성의 침묵은 사실상 동의’라는 등의 강간에 대한 통념. 이러한 문화적 가치와 믿음들이, 걸릴 위험만 없다면 강간하고자 하는 남자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간의 타자화’라는 맥락 안에서 우리는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행위가 아니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닌 것”으로 여기며 어떤 성폭력들에 대해 침묵시킨다. 이렇게 인정받지 못하는 성폭력은 인사불성한 여성이라든가, 최음제를 복용한 여성에 대한 강간 등 ‘들키지 않는 강간’ 목록을 만들어 강간 문화를 다시 한 번 강화한다. 이런 문화는 결국 피해자들조차 스스로 성폭력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대응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런 알고리즘을 감안한다면, 실제 현상과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사이에 얼마나 거대한 갭이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 2월 25일 열린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그건_강간입니다> 최종발표회.  ⓒ한국성폭력상담소

 

‘들키지 않는 강간’ 신화를 무너뜨려야

 

우리에게는 따라서 ‘강간 문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 강간은 예민하고 사소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가해자에게는 사소한 일탈일지라도 성폭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누구나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상기하게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 내내, 우리는 무엇이 그 새로운 문화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한국에서 그나마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례로 대학 내에서의 술자리 예절교육이 언급되었다. 술자리 예절교육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몇몇 학교에서는, 조금의 성폭력 징후가 보이면 서로 “너 그러다 성폭력예방단에 잡혀 간다”는 식으로 경각심을 촉구하는 표현을 농담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우리사회에서 피해자를 향해 ‘조심해’라고 말하기보다, 가해자에게 ‘강간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강간을 타자화하는 사회는 성폭력 가해행위를 지적하는 것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갖는다. ‘강간 문화’를 멈출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은 이렇듯 사소하고 예민하게 구성원의 이탈 행동을 지적해줄 수 있는 형태를 띠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랜 기간 동안 치열한 논의와 고민을 거듭했던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의 최종발표회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감정과 생각들을 우리만의 운동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성폭력 예방활동을 위해서 남길 수 있는 말들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출발은, 강간이지만 강간범은 부재하는 골뱅이, 강간 약물 등과 같은 ‘들키지 않는 강간’ 신화를 무너뜨리고, ‘강간 문화’의 범죄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강간을 남의 일로 보는 타자화를 멈추어야만 한다. ‘강간 문화’ 안에서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강간당할 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내재화하도록 교육 받는다. 이제는 누구나 강간범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나도 누군가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하고 싶다.

 

또한 이 운동은 법적, 제도적 변화로도 연결되어야 한다. “동의” 없이 진행된 성적 행위는 모두 성폭력으로 정의하는 서구권과 달리, 한국은 법원이 인정하는 정도의 ‘폭력’과 ‘협박’, 또는 피해자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가 증명되어야만 성폭력으로 인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강간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작업은 “동의” 없는 성관계가 법률상 ‘강간’으로 확실히 인정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 글을 준비하던 중, 또 다른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주말 저녁에 술집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은 내게 또 다른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선전 포고를 남기며, 이 글을 맺는다.  ▣ 닥터W.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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