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부끄러운 시대를 마주하는 청년의 자화상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2016) 포스터


<동주>는 일제 강점기라는 주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윤동주(강하늘)와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박정민), 두 사람에 관한 영화다. 북간도 용정에 있는 같은 집에서 태어나 한 밥상에서 밥을 먹으며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시대의 부조리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빛과 어둠처럼 상반된 기질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송몽규가 독립운동과 총과 칼이라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시대와 맞서는 투사적 인물이라면, 윤동주는 내면으로 향하는 자아 속에 세상의 부조리를 품은 채 ‘문장’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시대와 마주했던 인물이다.

 

실존 인물들과 사건에 대해 감독의 해석과 상상력을 입힌 영화 <동주>는 겹쳐질 듯 가까웠던 두 개의 세계가 헤어져 분리되었다가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부끄러운 시대 앞에 길을 내었던 청년 자아의 짧은 여정을 시각화한다.

 

총과 시, 시대에 맞서는 방법

 

전반부에서는 일찌감치 신춘문예에 당선했지만 문학보다 혁명을 추구했던 송몽규의 삶이 도드라져 보인다. 신춘문예 당선이며 연희전문학교 우등 졸업, 교토제국대학 합격까지 자신보다 항상 한 발자국 앞서 가는 송몽규를 보며 윤동주는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는 것으로 그려진다.

 

윤동주는 시대의 한계와 더불어 자신을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어차피 발표하지도 못하는’ 시를 쓰는 존재로 인식한다. 송몽규의 빠른 성취나 확고한 신념은 윤동주가 스스로를 부끄러운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시에서 드러나는 부끄러움이라는 정서가 가장 가까운 친구와의 관계라는 개인적인 맥락에서 움텄음을 암시한다.

 

윤동주와 송몽규라는 두 개의 세계가 각각 단단해지면서 발생하는 긴장은 영화 중반부 이후의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송몽규의 제안으로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되는 등 윤동주는 여전히 그의 자장 속에서 영향력을 받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시를 경유한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간다.

 

<동주>는 두 사람의 삶의 여정과 더불어 유기적으로 삽입된 윤동주의 시 내레이션을 서사 진행의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 이를 통해 문학교과서 혹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명칭 아래 박제되었던 윤동주라는 이름은 삶을 포함하는 시, 시를 포함하는 삶이라는 의미를 딛고 안팎으로 확장된다. 영화가 서사의 한 축으로 시 내레이션을 다루는 방식은 윤동주가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벼려가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스틸컷.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

 

두 세계의 필연적인 분리

 

영화 초반부에서 확신에 찬 열변을 토하는 것은 주로 송몽규였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것은 윤동주였다. 하지만 문예지에 실을 글을 고르며 토론을 하던 중, 문학을 도구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송몽규의 의견에 반발하며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윤동주의 모습은 그가 시를 자기 연민의 흔적을 넘어 삶의 태도로써 명확히 인식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향인 용정에서 만나 연희전문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뒤 창씨개명 강요로 들썩이는 경성을 뒤로 하고 윤동주는 고향으로, 송몽규는 독립운동을 위해 중경으로 향하게 된다. 이어 일본 유학을 결심한 뒤 송몽규는 교토에, 윤동주는 도쿄에 머물며 두 사람은 점차 공간의 분리를 경험하게 된다. 송몽규가 교토에서 조선인 학생들의 집회를 이끌며 학생 세력 조직화에 힘을 썼다면, 윤동주는 도쿄의 대학에서 만난 의식 있는 일본인 교수와 동료와의 관계를 통해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단단하게 다져간다.

 

도쿄에서의 탄압이 심해지자 윤동주는 송몽규가 있는 교토의 대학으로 편입하고 두 사람은 재회한다. 윤동주는 송몽규가 참여하고 있는 조선인 학생 조직화 작업에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히지만, 송몽규는 정작 중요한 집회에는 윤동주를 데려가지 않는다. 일본 형사들에게 발각이 되어 사건의 불씨가 되는 집회 장면은 윤동주가 방 안에서 시를 쓰는 장면과 교차되며 제시된다. 집회에서 사용되는 송몽규의 언어와 시에서 문장으로 드러나는 윤동주의 언어의 차이는 시공간의 분리와 함께 두 사람이 속해있는 언어의 본질적인 차이를 통해 두 세계의 필연적인 분리를 가시화한다.


▶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스틸컷

 

동료들이 잡혀간 뒤 하숙집으로 돌아온 송몽규는 고향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하지만 윤동주는 거절한다. 하루만 더 지나면 도쿄의 대학에서 만난 동료 쿠미(최희서)에게 시집의 번역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바로 내일이 시인으로서의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날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송몽규의 간절한 제안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어디에 발 딛고 서 있는지를 정확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송몽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가까스로 자신의 시집을 손에 넣지만, 뒤를 밟은 형사에게 곧 체포되고 만다.

 

부끄러움을 아는 시대정신

 

영화 <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 취조실에서 형사와 윤동주가 대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 이후 과거의 회상 장면과 현재의 형무소 장면이 교차되며 제시된다. 이러한 구성은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거짓 진술서에 서명을 요구하는 형사와의 대립을 통해 드라마의 절정으로 치달아간다.

 

유학생을 규합해 사상교육을 시켰으며, 비밀리에 조선어 문학을 유통하고, 조선인 반군 조직을 결성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진술서에 서명하라는 형사의 요구에 대해 송몽규는 그렇게 하지 못했음이 한스럽다 말하며 서명을 하고, 윤동주는 이런 세상에서 시인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 부끄럽다 말하며 서명을 거부한다.

 

짧은 일생에서 겹쳐지고 분리되며 서로의 세계에 개입해 왔던 두 사람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듯 다시 만난다. 영화 <동주>는 ‘시’라는 길을 내며 걸어갔던 윤동주의 삶과, 그의 삶에 빛과 어둠을 드리우며 나란히 함께 걸었던 송몽규의 삶을 통해 부끄러움을 아는 정신으로 시대와 맞섰던 그들의 시간을 마주하게 한다. ▣ 케이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영문 사이트        |           일다 트위터     |           일다 페이스북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