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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표 때문에 줄 서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배새래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배새래(Ve Xe Re)

 

2013년 7월에 창립된 <배새래>는 온라인으로 베트남 전국의 시외버스, 고속버스 승차권 통합 예매 대행 사업을 하는 호치민시의 사회적 기업이다. 베트남에선 전화로 표를 예약한 다음 출발 전 버스터미널에 직접 방문해야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연휴엔 승차권을 구입하려고 장시간 줄을 서는 등 큰 불편을 겪는다. <배새래>는 1천여 개 버스회사와 3천 개 버스노선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해, 승차권 예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4년에 ‘베트남 사회적 기업 지원센터’(CSIP)가 선정한 올해의 사회적 기업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베트남 상공회의소(VCCI)가 주최한 창업 경진대회에서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설 연휴, 터미널에서 밤을 지새는 베트남사람들

 

▶ 설 연휴에 버스 승차권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호치민시의 한 버스터미널.    © 아맙


설 연휴를 앞두고 해마다 반복되는 귀성표 예매 전쟁. 호치민시에 살고 있는 대학생 탄은 고향 달랏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부랴부랴 버스터미널로 달려가 손에 넣은 대기표의 번호는 715번.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는 대합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마침내 대기자 번호가 700번을 넘으려는 순간, 달랏행 버스표가 매진되었다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여기저기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몇몇은 회사 측에 항의하기도 했지만 현황판엔 ‘달랏행 매진’이란 붉은색 문구가 매정하게 반짝일 뿐이었다. 탄을 비롯해 달랏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표가 남아 있을지 모를 다른 터미널로 황급히 발길을 옮겼다.

 

한 장의 버스표를 손에 쥐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연휴 때마다 반복되는 귀성표 예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베트남 최초로 온라인 버스표 예매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배새래>의 이야기를 <아맙>에서 들어보았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명절을 앞두고 귀성표 예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한국도 예외는 아닌데요. 전화선이 폭주해 통화가 안 되자, 터미널로 달려가 승차권을 구매하기 위해 밤을 지새는 베트남 친구들을 보고 좀 놀라긴 했어요.

 

다오 비엣 탕(배새래 창립자이자 마케팅 팀장. 이하 ‘탕’): 베트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죠. 요즘엔 베트남도 시스템이 많이 발달해서 항공권이나 호텔의 경우 예약하기가 쉬워졌지만, 매년 2천4백만 명이 이용하는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예약 시스템은 여전히 낙후된 편입니다.

 

“어째서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지?”

 

수정: <배새래>를 함께 창립한 레 반 씨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미국에서 석사 공부를 하던 중에 <배새래>를 창업하기 위해 귀국했다고 들었어요.

 

탕: 저와 레 반은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저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에 돌아왔고, 반은 MBA 석사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죠. 어느 날 갑자기 반이 베트남으로 돌아온다고 하더군요. 아직 석사 공부가 끝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베트남에서 온라인 버스표 통합 예매 사업을 하겠다는 거였어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귀성표를 구하려고 버스터미널에 줄 서 있는 걸 인터넷으로 봤어. 너도 알겠지만 미국에서는 클릭 몇 번이면 표를 구할 수 있잖아. 어째서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지?” 저도 미국 유학 경험이 있어서 반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어요. 베트남에 돌아온 반은 제게 <배새래> 창업을 제안했고, 저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베트남에 유래가 없던 온라인 버스표 예매 사업에 도전하게 되었죠.


▶  <배새래> 창립자이자 마케팅 팀장인 다오 비엣 탕.   © 아맙


수정: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일했다면 연봉도 꽤 높았을 텐데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배새래> 창업에 도전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면요?

 

탕: 미국 유학 시절에 유니세프의 베트남 지원사업 기금을 모금하는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 어린이들의 실상을 알리고, 기금 마련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일이었죠. 베트남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가 힘을 보탠다는 생각에 정말 힘든 줄도 몰랐고 너무 즐거웠어요.

 

베트남에 돌아와 은행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죠. 그런데 부유층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일은 큰 보람이 없었어요. 가끔 유니세프에서 일하던 때를 떠올리며, 내가 가진 능력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참에 <배새래> 창업 제안을 받은 거예요. 직장 상사, 동료, 가족 모두 강하게 반대했죠. 어떤 친구는 제가 미쳤다고 했고요. (웃음) 실패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친구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도전하고 싶었어요. 제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베트남 도로의 무법자 ‘낙하산 버스’

 

수정: 현재 베트남의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승차권 예매 시스템은 어떤가요?

 

탕: 베트남에서는 전화로 버스표를 예약할 수 있어요. 하지만 출발 전에 터미널을 직접 방문해 표를 구매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늘 감수해야 하죠. 전화로 소통이 이루어지다 보니 예약 정보가 틀리는 경우도 많고, 상담원이 실수하는 일도 발생하죠. 30%가 넘는 예약 취소율도 문제입니다. 예약할 때 예약금도 내지 않으니 취소 수수료도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예약을 신중하게 하지 않아 혼선이 생기기 쉽고요.

 

각 노선마다 크고 작은 버스회사들이 정말 많이 있는데, 승객들이 각 회사의 버스 운행 정보나 요금을 비교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창구가 없거든요. 그동안은 자신의 경험이나 지인의 추천에 의존해 버스를 선택해야 했죠. 터미널에서 호객꾼에게 이끌려 잘 모르는 회사 버스를 탔다가 고생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수정: 저도 베트남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버스 때문에 곤혹을 치른 기억이 있어요.

 

탕: 대도시를 연결하는 버스 노선에선 그런 일이 없는데, 중소도시나 지방에선 운송사업 등록을 하지 않은 불법 버스를 만나는 일이 종종 있죠. 베트남 사람이라면 ‘낙하산 버스’라고 불리는 이런 버스 때문에 곤경에 처한 경험이 대부분 있을 거예요. 느닷없이 차의 행선지가 바뀌거나, 낯선 도로변에서 도중 하차를 당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요. 2인용 좌석에 세 사람씩 끼어 앉는 것도 부족해 가운데 통로에 앉은뱅이 의자까지 촘촘히 놓아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도 흔히 볼 수 있죠.

 

낙하산 버스들은 터미널도 아닌 곳에서 무단 정차하고 호객 행위를 하거나,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승하차를 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과적 운행, 과속, 곡예 운행을 하면서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차량도 많아요. 보통 2~3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소규모 운송회사들이 불법, 편법으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 낙하산 버스를 운행하는데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들에게 돌아가죠.

 

▶ 교통 법규나 안전을 무시한 채 수익을 위해 어디서든 승객을 태우는 베트남의 낙하산 버스.    © 아맙

 

전국의 터미널을 돌며 온라인 세계를 구축하다

 

수정: 전국의 버스 노선 정보를 총괄하고 예매까지 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탕: 버스표 예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통합 포탈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버스회사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이 가장 중요했죠. 그러나 사회에 갓 진출한 이십대 청년이 제휴를 제안하니 대부분 만나주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먼저 베트남 전국의 버스 터미널을 돌면서 버스회사와 노선 정보를 수집했어요. 버스를 직접 타보고 버스 터미널에 머물면서 서비스의 질까지 일일이 체크했죠.

 

그렇게 몸으로 부딪혀 얻은 정보들을 정리해 온라인에 공개하는 시스템을 선보이자, 그제서야 버스회사들이 관심을 보이더군요.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대합실에 쭈그리고 잠을 자면서 한 달의 절반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낸 성과였어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그런 고생을 감수하긴 어려웠을 거예요. <배새래>에 대한 꿈과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지금도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수시로 전국의 버스 터미널을 순회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수정: <배새래>의 온라인 버스표 예매 시스템에 대해서 소개해주시겠어요?

 

탕: 버스회사가 <배새래>의 기술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승객들이 <배새래> 사이트를 통해 직접 그 회사의 버스표를 예약하고 구매까지 할 수 있죠. 버스회사와 <배새래>, 승객 모두가 예약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도 있고요. 실시간 조회부터 예약, 결제까지 한 번에 가능하기 때문에 승객 입장에선 손쉽고 빠르게 승차권을 구매한다는 이점이 있고, 버스회사에서도 매일 그날그날의 매출과 좌석 현황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뺏길 필요가 없죠. 더 안정적으로 좌석 운영을 할 수 있고요.

 

은행 이용률이나 카드 사용률이 여전히 낮은 베트남의 상황을 고려해 신용카드, 인터넷뱅킹, 계좌 이체, 터미널 방문 납부, 수금원 자택 방문 등 다양한 결재수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배새래> 홈페이지를 통해 버스회사에 평점을 주고 이용 후기도 볼 수 있어, 승객들이 보다 안전하고 믿을 만한 버스를 비교, 선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방마다 승객들의 평가가 좋은 중소 규모의 버스회사를 <배새래>가 추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피드백을 통해서 ‘낙하산 버스’와 같은 불법, 편법 운영의 폐해를 줄여나가고, 버스회사들이 규정에 따른 운행을 하고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도록 유도하고 있죠. 매년 여름 입시철에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하노이, 호치민, 다낭 등의 대도시로 이동하는 수험생들에게 특별 할인가로 표를 제공하는 등 지원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  이십 대 청년들로 이루어진 젊은 사회적 기업 <배새래>.    © 아맙

 

승객의 편의뿐 아니라 ‘안전’한 이동을!

 

수정: <배새래>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배새래> 사업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탕: 버스표 예매 관리가 항공권이나 기차표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게 현실이죠. 버스의 경우 출발지는 같은데 도착지는 다른 경우가 많잖아요. 게다가 버스회사들은 소규모로 운영되는 영세업체들이 많은데요, 이런 사업장에서는 비용 문제와 낯선 디지털 시스템 때문에 <배새래>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걸 꺼려하기도 하죠.

 

현재 약 30개 회사가 저희 소프트웨어를 구매, 설치해 온라인 예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요, 나머지 회사들은 저희가 운행 정보와 예약 방법만 안내하고 있어요. 승객들의 안전과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가 단지 비용 문제로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저희 쪽에서 지원하기도 합니다.

 

<배새래>는 베트남 최초로 온라인 버스표 예매 사업을 시작해 큰 반향을 일으켰죠. 하루 평균 접속자 수가 1만 명에 육박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어요. 최근엔 또 <바소또>(Pasoto)라는 온라인 버스표 예매업체가 사업을 시작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고요. 현재 베트남 인구의 약 34%가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다음으로 3위에 해당하는 수치에요. 12년 만에 인터넷 인구가 15배 많아졌고, 온라인 전자상거래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죠. 이런 추세 속에 <배새래>의 사업도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베트남 전국의 모든 버스 운행 정보를 총괄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으로서 <배새래>는 저희 시스템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주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고요. 한 장의 승차권을 손에 쥐고 먼 고향으로, 그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서요.

 

*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공정여행 팀장)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연락처: 070-7554-5670(베트남 사무소)

<아맙> 후원 계좌: 신한은행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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