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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핵은 양립할 수 없다

<죽음연습> 집단학살과 전쟁이 야기하는 죽음을 보며④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연재 ‘죽음연습’.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폭심지에는 상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희생자의 다리만이 두 개, 꽉 콘크리트 길바닥에 달라붙어 서 있다.” -<피카동>, 오에 겐자부로 <히로시마 노트>(고려원, 1995)에서 재인용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의 B-29 폭격기는 우라늄 235로 만든 핵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일본 히로시마 시에 떨어뜨렸다. “피카동(pika-don, 번쩍-쾅)!” 핵폭탄이 터지면서 밝은 빛을 쏟아냈고, 폭심지 근처의 온도는 3,4천도를 넘어 뜨거운 열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곧이어 열폭풍이 반경 1.5km내의 모든 건물을 붕괴시켰다. 나무를 뽑고 빌딩을 무너뜨리는 태풍보다 10배 이상 강력한 힘이었다. 밤처럼 어둡고 방사능과 열로 달궈진 히로시마는 물을 달라는 부상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로 가득 차 지옥 같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증발된 수분이 방사능 재와 뒤섞인 검은 비가 되어 대지를 적셨다.

 

대량살상 무기인 핵무기가 인류역사상 최초로 사용된 것이다. 이날 미국의 핵무기 공격으로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사흘 후 나가사키에 떨어진 플루토늄 핵폭탄 ‘팻맨’(Fat man)이 야기한 희생자까지 아우른다면 2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된다. 두 번의 핵폭탄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일본인만이 아니다. 무려 4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거짓 역사에서 태어난 ‘핵무기의 신화’


▲  오에 겐자부로 <히로시마 노트>(이애숙 역, 삼천리, 2012)

 

핵무기, 생화학무기와 같은 가공할 대량살상 무기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구 생명체들 간의 공존을 위해 일해 온 ‘Think the earth’에서 펴낸 다큐멘터리 사진집 <100년 동안 인간이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짓들>(나무심는사람, 2004)에서 20세기 동안 6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전쟁만 165건이고, 전쟁에 의한 사망자가 1억 8천만 명에 달한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차 세계대전부터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대량살상 무기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인명 피해도 그만큼 심각해졌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 민간인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75-90%에 이른다. 대량살상 무기가 동원된 전쟁에서 무장한 군인과 비무장한 민간인의 구분은 더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대량살상 무기 가운데 핵분열이나 핵융합을 이용한 핵무기는 가장 가공할 무기로 여겨진다. 물론 핵무기의 경우, 그 살상력과 파괴력에 대한 공포로 말미암아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사용된 이래 더는 실전에서 사용된 적은 없다.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겪은 비극을 통해서 핵무기가 사람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자연생태계도 파괴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단 핵폭탄의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은 장기적으로도 심각한 피해를 야기해 세대를 넘어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냉전 시대는 물론이요, 오늘날에도 핵폭격이 실제로 야기한 무시무시한 참극은 잊힌 듯하다. 오히려 핵폭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도시를 파괴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핵무기이기 때문에 핵무장 국가는 그 누구도 공격할 수 없고, 따라서 핵이 평화를 안겨준다는 믿음, 즉 ‘핵무기의 신화’만이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국방 문제 전문가인 프랑수와 레저도 <인류의 영원한 굴레, 전쟁>(부키, 2005)에서 “핵무기는 위험하지만 강력한 안전을 가져온다”고 단언하며 핵무기의 신화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핵무기 제고 프로젝트의 선임연구원 워드 윌슨은 저서 <핵무기에 관한 5가지 신화>(플래닛 미디어, 2014)에서 핵무기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생각을 비판한다. 핵무기는 평화를 보장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고, 핵 억제의 효과란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핵무기가 언제든 파괴적인 전면전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워드 윌슨에 의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이 일본 군부를 항복시키고 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다는 허구에서 ‘핵무기의 신화’가 탄생했다고 지적한다. 역사적 진실은 다르다. 일본 지도부가 항복을 결정하게 된 진짜 이유는 일본 국민의 사기 저하와 소련의 전쟁 개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지도부와 일본 군부는 역사를 왜곡시켜서라도 ‘핵무기의 신화’를 양산할 필요가 있었다.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본이 항복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미국 지도부는 핵폭탄을 사용해서 소련을 견제하고 미국의 군사적 위상과 외교적 영향력을 드높이는 쪽을 선택했다. 또 원자폭탄 개발에 사용된 20억 달러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자국의 안보 강화에 핵무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일본 군부도 전쟁의 패배를 적의 핵무기 탓으로 돌려, 자신들의 무능함에 대한 비판을 잠재웠다. 뿐만 아니라 핵폭탄 덕분에 일왕의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북한의 핵무기 집착


▲ 워드 윌슨 저, 임윤갑 역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 플래닛 미디어, 2014

 

1950년대 무기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가져왔다는 ‘수소폭탄의 혁명’ 역시 핵무기의 신화에 한 몫 했다. 핵융합에 기초한 수소폭탄은 미국이 1952년에 시험했다는 새로운 형태의 핵무기로서, 이론적으로 우라늄에 수소를 첨가해 만든다. 이 핵무기는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히로시마 원자폭탄 위력의 수천 배, 아니 이론상으로는 백만 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다시 말해서 수소폭탄이야말로 인류 전체를 절멸시킬 수 있는 무기이며, 지구상에서 그 어떤 무기도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라는 믿음이 널리 유포되었다.

 

이달 초,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제 1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 북한은 2010년에 이미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강력한 핵폭탄을 소유함으로써 자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핵무기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은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2012)에서 북한이 왜 그토록 핵무기에 집착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북한이 “한국전쟁 이후 60년 넘게 미국의 핵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 온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북한이 미국의 핵위협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한국전쟁부터라고 한다.

 

미국은 1950년 초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대만과 한반도를 제외한 미국 방위선,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이미 1949년에 2백여 개의 핵무기를 소유한 미국은 바로 이 핵무기가 주한미군의 주둔을 최소화하면서도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맹신과 달리, 핵무기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의 맥아더(UN군 총사령관)와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쟁의 종결을 위해서는 핵 공격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다행히도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핵폭탄을 사용하지 못했다. 북한 지역에 전략적 폭격을 가할 산업이나 군사시설이 없었고, 지하까지 파괴하기에는 핵무기가 비효율적이며, 종전을 원하는 동맹국의 눈치도 보이고, 소련의 핵전력이 증가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미국의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2차 세계대전이 핵폭탄 덕분에 끝이 났다고 주장했듯이, 한국전쟁 역시 핵 위협 덕분에 종결되었다고 역사적 진실을 또 한 번 왜곡한다. 사실 소련, 중국, 북한의 경제난이 한국전쟁을 끝낸 진짜 이유였는데도 말이다. 핵의 신화는 계속해서 강화된다.

 

미국의 대북 핵위협, 이에 협력하는 한국


핵을 숭배하는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핵무기를 이용한 대량보복 전략을 채택한다. 이제 미국은 공산군의 남침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한다.

 

“1958년 1월부터 핵 대포와 어니스트 존이 한국에 배치됐고 이듬해에는 사정거리 1100킬로미터의 마타도르 핵순항 미사일도 배치됐다. 이후 미국이 핵무기의 수와 종류를 늘려나간 결과 1970년대 중반에는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가 1000개에 육박했다.” -정욱식 <핵의 세계사> 15장 ‘미국의 대량보복 전략과 북한’

 

미국에 의한 대북 핵공격 위협 앞에서 북한은 지하시설을 갖추고 지하수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맞섰다.


▲  정욱식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2012)


미국은 1976년부터 한국과의 ‘팀 스피리트 훈련’으로 북한에 대한 핵위협 강도를 높였다. 사실 ‘팀 스피리트 한미 합동훈련’은 박정희 정권이 1974년부터 비밀리에 시작한 핵개발을 포기하는 데 대한 대가였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소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주한미군이 감축되자, 국가 안보가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핵을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오늘날 북한이 자국의 안보를 위해 핵무기에 집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북 핵위협 훈련인 ‘팀 스피리트 훈련’에는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F16 전투기, B-1B 전폭기, 핵미사일이 탑재된 잠수함까지 동원되었다. 이에 북한은 핵 개발에 착수한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때 미국은 북한을 핵으로 위협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클린턴 미 행정부는 대북 모의 핵 훈련을 계속했다. 뿐만 아니라 원거리 핵공격 작전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심지어 21세기에 들어서면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인 북한을 겨냥해 남한을 미사일방어체제(MD)의 전초 기지로 삼았다.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3년부터 한국에 최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 PAC-3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PAC-3 배치는 수원·평택의 오산공군기지와 군산을 잇는 서남부에 집중되었다.”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노무현 정부 때도 미국의 미사일은 우리나라에 대거 배치되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미국 미사일방어체제의 편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괌, 오키나와 미군기지 방어를 위한 강정마을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강행한다. 마침내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국가로 평가받는다. 이에 북한은 2006년, 2009년, 2013년 세 차례의 핵실험으로 대응했다.

 

현 오바마 정부조차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선제 공격을 하겠다며 북한을 원거리 핵무기 선제공격 대상국가로 남겨둔 상태다. 얼마 전, 북한은 수소폭탄을 소유했다고 공표했다.

 

핵무기 통한 힘의 균형, 위태롭고 공포스런 평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껏 미국은 핵을 숭배하는 핵무기의 신화를 탄생시키고 핵의 위협을 이용한 강압외교를 펼치면서 패권주의를 지켜왔을 뿐만 아니라, 핵 억제를 통한 평화 유지를 주장하며 ‘핵무기의 신화’를 공고히 해왔다. 미국이 북한은 위험하고 비이성적인 도발집단이며 한국은 한미 동맹의 종속국가라고 보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핵무기의 신화를 믿는다면, 북한이 자국의 방어를 위해 핵무기에 집착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핵무기가 안겨준 평화를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다 죽는다’는 위협적 공포가 가져준 힘의 균형이다. 이 균형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핵무기의 신화에 의하면, 미국과 소련 모두 상호 핵무기를 소유해 전쟁 억제 효과를 낳았기에 미소 냉전 시기동안 평화가 유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워드 윌슨은 핵을 통한 균형과 평화는 지도자의 비이성적 판단과 공격성에 의해 언제든 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비롯해서 여러 차례 핵 위기에 봉착했던 역사적 기억은, 핵 억제를 통한 평화가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인지 잘 알려준다.

 

워드 윌슨의 지적대로 핵무기의 신화가 진실이 아니고 허구라면, 또 북한이 핵무기, 수소폭탄을 보유한 것이 사실이라면, 21세기 한반도의 평화는 더욱 위태로워진 것이 분명하다. 정욱식은 한반도가 지구상 그 어느 곳보다 핵 전쟁 위험이 높은 곳이라고 단언하다. 미국이 핵에 의존한 패권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북한이 핵에 의존한 자국의 방어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의 긴장은 계속될 것이며 언제든 핵전쟁은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발붙이고 살아가는 우리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체험자들의 절규를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이제 전쟁은 싫다. 이제 전쟁은 싫다. 이것이 히로시마 원폭체험자의 비통한, 마음속부터의 절규이다.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평화에 대한 요구의 진정한 절규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토록 가혹한 체험을, 이제는 세계의 그 누구도 절대로 겪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을 세계를 향해 호소하고 싶다. No more Hiroshima라는 표어는 오늘날 국제 상황에서 가장 높이 게양되어야 한다. 오타강변의 평화탑 주변에서 나지막하고 쓸쓸하게 떠돌고 있어서는 안 된다.” -히로시마 문리대학 교수의 글, <히로시마 노트>에서 재인용

 

일본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말대로 “핵무기가 초래할 인간의 비참함의 극지(極地)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일본의 원폭 체험을 생생히 기억해야 할 때다.

 

‘핵무기 없는 세상’은 정녕 불가능할 것일까?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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