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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행복해지기

<이 언니의 귀촌> 전북 완주에 살아요(하)



※ 비혼(非婚) 여성들의 귀농, 귀촌 이야기를 담은 기획 “이 언니의 귀촌” 기사 연재를 마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삼례 장터, 비슷한 풍경의 청년들


▲  삼례장터 첫 판매.      © 김다솜


귀촌하여 자급자족하며 산다해도, 조금의 돈벌이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삼례라 불리는 이웃동네에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내려와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이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분들을 통해서 조만간 귀촌인들이 주도하는 작은 마켓이 매주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셀러로 참여하게 되었다.

 

손으로 하는 재주가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당장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은 없었다. 하지만 고민 고민 끝에 만들기가 비교적 간편하고 실패의 여지가 없는 향초를 만들기로 했다. 가끔은 텃밭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건강한 요리를 선사해보기로 했다. 친구와 나는 둘 다 요리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매주 나갈 장터를 위해 틈만 나면 요리를 연구하고 함께 음식을 해먹었다.

 

물론, 시골장터에서 열린 귀촌인들의 아트마켓이었던 지라 장사가 잘 될 턱이 없었다. 셀러들이 내놓는 향초 혹은 아기자기한 수제품들은 더욱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매주 장터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면서, 서로를 다독여 주고 앞으로는 번창하리라 굳게 믿으며 서로를 위안했다.

 

참 운이 좋은 날엔 3만 원 정도의 돈을 벌어 셀러들과 시원한 맥주를 나눠 마셨다. 만 원어치의 향초를 팔았던 날엔 옆집 도시락을 사먹으며 점심을 해결했다. 한 푼도 벌지 못한 날엔 인심 좋은 언니가 만들어주는 빵을 얻어먹기도 했다.

 

하나도 팔지 못하는 날엔 장터가 얄미운데다가 매주 주말마다 있는 장터 준비가 번거롭게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이상하게도 매주 장터로 출근하는 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매주 삼례로 넘어가 또래친구를 만나는 재미가 꾀나 쏠쏠했나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단의 구성원은 죄다 별다른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다. 옆집 ‘설레’는 나무로 만든 작은 브로치와 실 팔찌를 팔았는데, 장터 외엔 별도의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룸메이트 역시 나무그림 액자를 팔았는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 옆집 타코를 팔던 청년은 장터 외의 시간엔 국비로 지원되는 빵 만들기 수업을 받으며 지내노라고 말했다.

 

도시락을 판매하는 인심 좋은 언니와 삼례 지역에 사는 이모 역시 은퇴 뒤 별다른 돈벌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경제 활동이 활발치 않아 끼니를 대충 때우는 청년 셀러들에게 언제나 먹을거리를 나눠주곤 했다. 기타등등 많은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풍경으로 장터에 자리잡고 있었다.


▲  삼례장터 풍경.    © 김다솜

 

우리의 재미난 관계를 공동체라 말하긴 부끄럽지만

 

이 장터 사람들의 풍경은 마치 경제 활동이라는 척박한 세상을 등지고 학업 외에 모든 것에 열정을 다하는 과거의 대학 동아리 풍경 같았다. 이들에게는 ‘백수’라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스케줄은 그들의 거점 공간이 되었던 <삼삼오오게스트 하우스>에서 서로 영어, 기타, 우쿠렐레, 요리수업 등을 배우고 나누며 오후를 보내고, 밤이 되면 동네 친구 집에서 음주와 가무, 타로 꺼리들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곤 주말엔 장터의 셀러로 참여했던 것이다. 지역에서 필요한 조금의 알바 혹은 사업들을 서로 알선해주며 조금의 돈을 버는 사람들이 그렇게 어울렁더울렁 살고 있었다.

 

내가 매주 돈도 안 되고 번거롭기만한 이 장터에 참석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금 딱딱하게 설명하면 같은 계급, 비슷한 문화적 환경을 공유하고 나누는 이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비슷한 정서로 모인 사람들이 장터를 꾸렸고, 장터의 문화는 자연스레 서로의 재능을 나누고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곳으로 형성된 것이다.

 

장터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의 대화 주제는 ‘어떻게 하면 부와 성공을 쟁취할 수 있을까’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끼리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오늘은 뭘 하고 놀아야 재미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듯하였다.


▲  토종씨앗 행사 모종나눔.    © 김다솜

 

이곳을 통해 나의 흥미를 유발하는 다양한 일들도 벌어졌다. 삼례 지역은 농업과 직접 연결되는 문화는 아니었지만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농사를 짓는 것을 목표로 하는 나였기에 농사에 대한 정보에 촉을 세우고 있었던 찰나,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셀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모임은 올해 여름부터 시작해 지속되었으며 10월엔 작은 토종씨앗 나눔 행사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롯하여 고산 지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벼농사 모임 등 다양한 관계망과 모임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삼례 지역의 재미난 사람들과는 꽤 가까운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작은 탈들도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지내는 것은 만족스러웠다. 우리의 관계를 공동체라고 부르긴 부끄럽지만, 서로의 관심과 문화를 자연스레 형성하는 건강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한 달에 35만원 소비하는 나의 하루일과

 

개인적으로는 장터를 통해 필요한 돈을 모두 충당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벌이곤 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소농을 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쉐’ 장터에 나가 한 달에 20만원 남짓의 돈을 벌었다.

 

서울에서 지낼 때는 몰랐지만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상경하는 서울의 느낌은 또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 나에게 서울은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흥나는 일터가 되었기 때문에 가끔의 서울 상경은 마냥 즐겁다.

 

▲  아이들과 만든 업싸이클 텃밭.       © 김다솜


삼례와 완주 주변의 관계를 맺다보니 꽤 쏠쏠하고 재미난 알자리가 생기기도 했다. 군수님과 장터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청년 귀촌을 지원받아 캠프를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껏 배운 소농 등으로 청소년들과 만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에 35만 원 정도의 돈을 벌고 또 그만큼의 돈을 썼다.

 

한 달에 35만원을 소비하는 하루일과는 단순하다. 조금은 늦은 잠을 자고 일어나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오전엔 조금의 공부를 했다. 텃밭의 재료들을 중심으로 점심을 해먹고 휴식을 취한 뒤, 집 앞 도서관에 가서 조금의 독서를 하거나 혹은 가끔 들어오는 알바를 수행하기 위해 오후를 보내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장터에 가지고 나갈 향초를 만들었다. 재활용 향초를 만들려고 쓰레기통에 있는 유리병을 주우러 다니고, 자연장식을 하고자 작은 언덕에 올라가 솔방울을 줍곤 했다.

 

또래 친구와 어울리고 싶은 날이면 지갑 없이 핸드폰 하나 딸랑딸랑 들고 동네 친구네 가서 함께 밥을 지어먹고 수다를 떨었다. 완주에서 사귄 젊은 친구들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 퇴근해서 돌아오는 친구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서 만경강변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 맥주 한 캔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동네에 일하는 언니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밥을 나눠먹기도 하며 그렇게 저녁 시간을 보냈다.

 

간혹 삼례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날엔 이웃동네 사는 나에게도 초대장이 발부되었다. 비교적 한가한 나는 310번 버스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가 같이 고기를 얻어먹고, 몇 병의 소주를 함께 나눠 마시기도 했다.

 

돈을 많이 벌지 않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는 지속적이었지만, 소비중심적인 관계로 유지되지는 않았다.

 

자립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한 공간

 

물론 내게도 현재의 완주 생활이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다. 첫째는 내가 사는 이 멋진 빌라 때문. 일터를 구하느라 급하게 구한 집이었기 때문에 완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 너무 도심으로 느껴지는 이곳보다는 자연환경이 조금 더 깨끗한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 맘이 크다.

 

둘째는 좀 더 자급농으로서 비중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조금 더 큰 평수의 밭을 개량하면 더 많은 농작물을 원없이 먹을 수 있고, 물물교환을 하거나 농산물을 직거래하며 적은 돈이라도 벌고자 하는 바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년의 계획은 이사를 목표로 자급농 비중을 더 늘리고 개인적으로 흥미로워하는 손작업들을 더 많이 해보려 한다.


▲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쉐 장터 준비   © 김다솜

 

완주에서 3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경험으로 깊이 깨달은 것이 있다면, 같은 뜻을 가지고 우정을 나눌 친구들이 내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침 이러한 고민을 지원해주려는 언니와 토종씨앗 모임 혹은 삼례에서 사는 청년들과 함께 작은 작당을 구상해보려 한다. 완주에 사는 청년들의 농촌형 거점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이 작당의 취지다. 물론 도시보다야 집값이 싸지만 완주에서도 셋방살이 살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적은 돈 혹은 자연 재료로 서로의 집을 짓고, 서로 다양한 배움과 문화적 나눔으로 일상을 지낼 수 있도록 구상하는 것이다.

 

사실 이 작당 아닌 작당이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지는 당체 모르겠다. 깊이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 당장의 즐거운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백수로서의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무작정 살아가다보면 해답이 있겠거니 싶기도 하다.

 

올 겨울은 백수 사정에 그나마 모아둔 적금을 탈탈 털어 두 달하고 보름 동안 유럽여행을 계획 중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그리고 같은 처지에 있는 서양사람들은 얼마나 더 유쾌하게 지내는지 염탐하러 가는 것이다. 생태공동체를 기반하여 우핑(현지 농가의 일손을 도우며 체류하는 것)을 중심으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가는데 있어 좀 더 현실적인 삶을 구상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겠다.

 

내년의 계획이, 그리고 내가 계획하는 여행이 완주살이에 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의 완주살이는 같은 고민을 가지는 또래 친구들과의 작당과 만남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적당한 활력을 주는 관계들과 적당한 노동, 그리고 자연과 자급농, 이런 백수의 삶은 아직까지 꽤나 만족스럽다.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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