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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어긋난 자식을 양육한다는 것
한 장애여성이 읽은 <부모와 다른 아이들>

 

 

얼마 전 MRI를 찍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일이 있었다. 2~3년마다 있는 일이라 이번에도 별 느낌 없이 입원 수속을 밞고 환자복을 갈아입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한숨을 내쉰다. 엄마는 모아둔 돈을 병원비로 쓰고 있는 딸의 상황이 답답하고, 이제 나이 들 대로 들어서 중년의 딸 병원 시중을 들어야 하는 현실에 짜증이 나신 듯했다. 옆에 계시겠다는 엄마를 굳이 집으로 돌려보낸 것은 엄마가 옆 환자의 보호자와 하는 대화를 듣고 난 후였다.

 

“난 오래 살아야 해요. 한 90살만 살아도 쟤가 60정도 되니 좋은 시설 보내놓고 가면 되겠지.”

“얘 때문에 난 친구도 없어요. 그땐 얼마나 부끄럽던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는 엄마의 모습은 내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중증장애로 누워 있는 환자의 보호자와 그런 얘기를 나누시는 것이 듣기에 영 껄끄러웠다. 게다가 내가 2년 후쯤엔 작은 작업실이라도 얻어 독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아시면서도 ‘시설’ 얘기를 하는 것에 화도 났고.

 

사실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딸이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장애를 이유로 많은 제약을 받고 차별을 경험하는 것을 보며, 나보다 더 분노하고 좌절한 사람이 부모님이란 걸 모를 리 없다. 더구나 나는 얌전히 말 잘 듣는 딸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님이 나를 여전히 불안하고 못 믿을, 장애를 가진 딸로밖에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섭섭할 때가 많다.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자식

 

Solomon Andrew <Far From the Tree>(Vintage Books, 2014) 
 

내가 태어날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것, 또는 어린아이가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것은 가족의 모습을 바꿔놓는 일이 된다. 복지가 잘되어 있는 사회와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대부분 가족에게 그 책임을 맡긴다. 가족은 양육, 교육, 사회 활동, 건강관리 등 장애인의 평생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내가 늙으면 좋은 시설이나 찾아줘야 할 텐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비장애인 자녀의 경우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면 부모로서 이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부모는 장애가 있는(남들과 다른) 자식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갖게 되며, 그래서 ‘전생의 죄 값’이라는 하소연까지 나오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비단 우리 사회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앤드류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고기탁 역, 열린책들, 2015)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막대한 분량의 이 책에는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양육한 가족들 인터뷰가 열두 가지 범주로 정리되어 있다. 제목을 보고 쉽게 떠오르는 장애는 물론이고 신동, 범죄, 트랜스젠더, 강간으로까지 범주를 넓혀 부모와 자식의 ‘다름’에 집중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다름의 정도 차이가 큰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 대한 심리적 고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반적으로 부모 자식 간에 벌어지는 일이 아닌 조금 특별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되는 부모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런던여행을 기획했는데 네덜란드에 도착한 것’

 

나는 흔히 얘기하는 ‘정상가족’ 안에서 자라났다. 부모님 두 분이 함께 살았고, 남동생이 있다. 교육을 받고, 직장을 잡고, 독립할 계획을 잡고 있다, 동생은 따로 가정을 꾸렸다. 내가 장애인이란 걸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냥 보통 가정의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혹자는 장애인인 내가 있으므로 ‘정상가족’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장애가 미치는 영향이 크니까.

 

장애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상황까지 바꾼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남의 이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름에 대한 관용이 많지 않은 환경에서 장애아를 양육한다는 것은 ‘엄마’보다는 수도자나 성녀가 되는 것이라고 할 만큼 헌신이 따른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최선을 다하셨지만,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순탄한 삶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곤 했다. 나의 존재가 ‘원죄’라는 생각에 좌절했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분노했다.

 

나는 혼자 일상생활을 하는 게 가능했음에도 주위에는 ‘시설’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다. 부모님과 동생의 정상 생활을 막지 말라는 의미였다. 정상성은 언제나 나 자신을 속박하는 이데올로기였다. 정상 생활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흔히 장애라고 하면 신체적 장애를 생각하게 된다. 사전에 의하면 장애는 ‘질병이나 사고 등에 의해 지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결함이 생겨 이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정상적인 생활은 어떤 생활을 말하는 것인지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생활이 정상적인 생활일까? 평균적인 사람들이 하는 생활이 정상 생활일까?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저자 역시 세상의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강요된 정상성의 시각에서 본다면, 책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자녀가 정상적이지 못해 불행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리 불행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상황이 달랐다면 좋았겠다’고 얘기하는 부모는 많아도 ‘아예 낳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는 부모는 없다. 자신들과 완전히 다르고 기대에 어긋난 자식을 책임지고 키우는 것이 이 책의 비유에 따라 ‘런던여행을 계획했지만 네덜란드에 도착한 것’처럼 막막하고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다름을 수용하는 마음

 

▲ 앤드류 솔로몬 <부모와 다른 아이들>(고기탁 역, 열린책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의 관용을 생각해봤다. 장애에 대한 관용, 차이에 대한 관용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상황의 자식을 키운다는 것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받아들이느냐라는 것이 그 가족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이것은 물질적 지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그 사람 인생 전체를 좌우할 수도 있는 사회적 시선의 문제이다.

 

차갑고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에 맞서 저항할 것인지 아니면 그 시선을 회피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러한 선택이 양육하는 입장만을 생각한 것은 아닌지, 당사자의 행복을 고려한 것인지 조금은 깊이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자식에게 투영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식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치료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우생학적 관점에서만 자식이 지닌 ‘차이’를 바라볼 때, 당사자들이 좌절한 사례를 이야기하며 이 책은 조심스럽게 독자들에게 생각해보도록 권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어쩌면 저자 자신이 소수자 정체성을 지녔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앞에서 우리 엄마는 장애인 딸을 둔 것에 대해 죄인이 된 것처럼 느끼고 계신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말을 듣는 게 나 하나만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질 자식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남들과 다른 자식을 둔 부모라면 한번쯤 할 법한 이야기이다. 특히 복지 기반이 약한 사회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슬슬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나이에 접어든 나도 10년 후의 내 몸의 상태를 장담할 수 없다. 일을 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불안하다. 그렇다고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아니다. 부모님도 나이가 드시니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진다. 장애가 있는 딸이라도 ‘기대’는 하신다. 그 ‘기대’에 맞추려면 나에게도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리적 지원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먼저라는 걸 나는 안다. 물리적 지원 역시도 다름의 인정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말이다. 이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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