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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도 숫자로 존재해선 안 된다
형제복지원에서 <숫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버거웠다. 책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하고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마치 그 분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를 들은 듯 막막하고 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 들어 도저히 다음 장을 열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책을 덮곤 했다.

 

올해 여름은 무척이나 덥다. 걸어만 다녀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가 지속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더위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숨막힘을 경험했다. 분노, 슬픔, 기막힘 등이 뒤섞여 어마어마한 무게로 짓눌렀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 바로 우리의 일상 속 사람들이 경험했을 수도 있는 현실을 직면하는 무게감이었다.

  

<숫자가 된 사람들>(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저, 오월의봄, 2015)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열한 명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구술집이다. 형제복지원은 1971년 보육시설에서 부랑인 보호시설로 바꾸어 권력의 비호 아래 수많은 사람을 가두고 폭행, 살인, 성적 유린, 착취를 조직적으로 실행하거나 묵인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범죄가 버젓이 일어난 시설이다.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도 5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생명을 다했다. 사망한 사람들은 아무 절차도 없이 가마니에 말려 무연고자 묘지에 묻히거나 대학병원에 팔려 시신마저 유린되었다고 한다.

 

1987년 검찰 수사 하에 형제복지원은 폐쇄되었지만, 관련자 누구에게도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도 권력의 연관 관계로 많은 사실이 사회에 드러나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되었고,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부당하게 받아 챙긴 막대한 정부 보조금에 대한 추징도 없이 징역 2년 반 형만을 살고 나머지 범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와 그의 가족들은 종교와 복지라는 간판을 내걸고 당당하게 부와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반면 형제복지원에 있었던 피해생존자들은 여전히 그 기억을 생생히 가지고, 지워지지 않는 영향력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분들은 인권 유린의 피해자이지만 사회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마치 자신이 지은 죄인 양 여기며 삶의 무게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일진데….

 

부랑자들 싹 쓸어버려!…국가시스템과 시민의식

 

얼마 전 서울역을 지날 때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몇몇 노숙인 분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서 종교행사인지 정치행사인지 모를 구호를 외쳐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멍하니 내려오는데, 뒤에서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저런 ○○ 들 때문에 발전을 못해, 발전을. 저런 병신 같은 ○○들 박통이나 전통 때가 좋았지. 저런 부랑인들 싹 잡아다 없앴잖아.’ 오싹한 기분이 들어 슬쩍 뒤를 보니 깔끔하게 차려 입은 노부부였다.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평범한 노부부의 입에서 끊임없이 ‘쓸모 없는 부랑자는 없애버려야 해’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 무심코 넘겼던 그 일이 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다. 자신들의 삶에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는 나 같은 장애여성이나, 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 기준을 벗어난 이들은 언제라도 저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끼쳤다.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일상의 박인근’을 못 본 척하거나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야기를 구술한 생존자들 대부분은 이유도 모르고 잡혀 들어가서 영문도 모르는 체 엄청난 폭력에 시달렸다. 끌려간 그날 군기를 잡는다고 두들겨 맞고, 몸이 아프다고 맞고, 밥을 남긴다고 맞고, 조장이나 선배의 기분이 안 좋다고 맞고, 말을 더듬는다고 맞았다. 도망치다 잡히면 죽을 만큼 맞았다. 그 와중에 죽어 나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성폭력 사건은 드러나지도 못했다. 한 사람이 성적 폭력을 가하면 다른 사람도 가했다. 남녀 가리지 않았다. 반항하고 도망치면 더 맞았다.

 

원장 ‘박인근’은 도망치다 잡혀온 사람이 있으면 정말 무자비할 정도로 팼다고 한다. 그에게는 원생이 그저 돈으로 보였을 테니까. 원생이 도망을 간다는 건, 시설 수용자의 머릿수대로 돈을 퍼주는 무지막지한 시스템에서는 재산이 없어지는 것이었으니 그는 자신의 재산을 지킨 것이다. 그 속에 사람은 없었다.

 

책에서 여러 피해자들이 그런 시설이 존재하게 만든 국가 책임에 대한 문제 의식을 말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이라는 지옥을 가능케 한 ‘내무부 훈령 410’호나 정부가 형제복지원에 지급한 막대한 지원금, 폭력에 대한 방조, 부실 수사 등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국가 시스템의 동조와 묵인에 대해 분노한다. 대부분 구술자들이 경찰이나 파출소 직원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인계되었다고 증언했다. 간신히 형제복지원을 탈출하고 얼마 못 가 다시 그곳으로 잡혀 들어간 것도 경찰에 의해서였다. 그것은 ‘부랑인 검거’라는 합리화로 포장된 인권 유린을 성과로 여기는 국가 시스템의 문제이며, 그것을 알고도 못 본척한 관계자들의 책임이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 만연해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역시, 무관심과 방조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못 본척하라는 말, 나서지 말라는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했을지 근래의 여러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생존자들이 겪은 시간들의 1차적인 책임자인 원장도, 관계자도, 국가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가능한 공소시효는 만료되었다. 진실 규명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안 마련도 요원해 보이고 생존자들의 남은 시간도 많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놓은 사람들이 저렇게 얼굴 들고 살아가는 걸 보는 심정은 차마 짐작도 못하겠다.

 

방치와 묵인 속에 ‘시설 폭력’은 현재진행형

 

나도 장애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에 폭력 피해에 대한 사례를 조금은 알고 있는데, 정말 화가 나는 상황은 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이 못나서’ 혹은 ‘자신이 잘못해서’라고 생각하며 움츠려 들고 그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네가 잘못했으니 맞았겠지’ 라고 탓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특히 장애여성들의 경우 그러한 자책은 더욱더 심하다. ‘내가 못난 탓이야’, ‘내가 강하지 못해서 그래’ 등의 말이 나올 때, 사회가 우리에게 왜 이런 죄책감을 심어주었는지 생각하며 분노했다. 게다가 가해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걸 볼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 된다. 왜 우리 사회는 폭력에 대해 이토록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을까?

 

어린아이일 때 혹은 청소년일 때 형제복지원에 갇혔던 분들은 이제 마흔을 훨씬 넘은 나이가 되었다. 사회는 이제야 이 사건에 대해 아주 약간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숫자가 된 사람들>이 나온 것은 그 기억의 일부를 보존하려는 것이다. 그 기억을 공유하여 이제라도 그분들의 삶을 누르고 있는 무게를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좀더 깊은 바람이 있다면, 우리 자신이 일상 속에서 무심히 넘긴 폭력에 대한 방조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시설’이 많다. 정식으로 시설 인가를 받은 곳도 있지만 비인가 시설도 많다. 비인가 시설은 사실상 규제할 수 없다. 그 속의 생명들이 다치고 사그라져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도 신문 귀퉁이에 단편적으로밖에 보도되지 않아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시설 폭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전처럼 마구잡이 검거는 아니지만 시설에 있고 싶어서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경우, 시설 수용자들은 가족의 손에 의해 버림받고 사회에서 버림 받았다. 그렇기에 관심을 줄 사람도 없다. 시설 폭력에 대한 감시를 하는 인권단체들이 있어 그나마 최악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이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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