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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4월 16일에 멈춰있는 시계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5.07.20 09:00

4월 16일에 멈춰있는 시계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한 시간(2)

 

 

416 참사 1주기에 광화문에서 일어난 일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한 날,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1년 전 그날처럼 슬퍼했습니다.

 

1년 사이 시청 광장에 있던 분향소가 사라졌기 때문에,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에 있는 분향소로 헌화를 하러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곧 경찰 차벽에 가로막혔습니다. 시청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까지는 큰 길을 따라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경찰은 2009년에 이미 법원에서 ‘불법’이라고 판결한 차벽으로 시민들이 분향소 가는 큰 길을 세 겹으로 막았고, 청계천을 따라서 돌아가는 길까지도 모두 막았습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기 위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종로까지 돌아서 갔지만, 종로도 경찰 차벽으로 막혀있었습니다. 성난 사람들은 경찰 차벽 앞에서 항의하기도 했고, 어떻게든 헌화를 하러 가려고 골목골목 경찰이 막지 않은 곳을 찾아 헤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  2015년 4월 16일 밤 11시경,  경찰에 통제된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광장 사이길.   © 화사

 

저도 계속 경찰에 막혀 종로 2가까지 갔다가 아직 경찰에 막히지 않은 골목길을 찾았는데, 경찰들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뛰어서야 간신히 광화문 광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헌화하는 줄이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서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저도 같이 줄을 서려다가,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굶고 있는 유가족들이 경복궁 현판 앞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급한 대로 빵과 우유를 사 들고 골목골목을 돌아서 거의 사직공원 근처까지 가서야 경찰이 없는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계속 이 길 저 길 막고 있어서 거의 경찰과 함께 뛰면서 경복궁 앞에 계신 유가족들에게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 경찰은 차벽으로 유가족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청계광장 교차로의 차벽, 세종로 사거리의 양쪽 인도를 막은 이중 차벽, 세종대왕상 옆에 차단벽,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사이의 양쪽 인도를 막은 이중 차벽까지…. 시청 광장과 유가족 사이에는 총 6중 벽이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경복궁 앞에서 포위된 유가족들

 

4월 16일 아이들을 억울하게 떠나 보낸 날, 폭도 취급을 받으며 경찰에 둘러싸여 추위에 떨고 계신 유가족들을 두고 따뜻한 집으로 올 수가 없어서 계속 자리를 지켰습니다. 정리해두었던 겨울 점퍼를 꺼내 입고 왔는데도 추위가 온몸을 파고들었습니다. 차가운 바닥의 기운이 고스란히 올라와 덜덜 떨렸습니다.

 

▲  2015년 4월 17일 새벽 경복궁 앞. 경찰에 둘러싸여 추위에 떨고 계신 어머니들. © 화사

 

저는 그날 월경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 노숙으로 이후 며칠 동안 월경이 중단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찬 바닥에 앉아계신 어머니들의 건강이 걱정되었습니다. 팽목항에 계실 때, 도보 행진을 하실 때, 찬 바닥에 앉아계실 때마다 어머니들의 몸이 얼마나 축났을 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새벽녘에 어머니들 몇 분이 참다 참다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경찰에게 부탁했습니다. 경찰은 “나갈 수는 있지만 들어올 수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이를 보낸 날 간절한 마음으로 다른 유가족들과 모여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의지를 다지고 있는 가운데, 겨우 화장실 가겠다고 그 자리를 포기하고 함께한 사람들에게 못 돌아갈 선택을 누가 하겠습니까?

 

어머니들은 고민하다가 두르고 있던 담요로 서로 가려주면서 소변을 봤습니다. 정말 속상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어머니들은 대부분 사십 대인데, 경찰방패에 막혀 화장실도 못하고 길에서 술 취한 남자들 마냥 용변을 봐야 하는 일이 벌어지다니요!

 

하지만 그 자리에 있으면 어머니들의 그런 선택을 이해할 수밖에 없답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지요. 자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여태껏 어떤 싸움을 해오셨을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되었습니다.

 

새벽녘 바닥에서, 1년 전 그날처럼

 

유가족과 시민들은 인도 위에 앉아있는데도 경찰은 계속 불법 채증을 했습니다. 한 어머니가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계시는데, 진압을 명령하는 경찰이 갑자기 “저 여자 잡아!”라고 소리쳤습니다. 순간 방패를 든 경찰이 우르르 몰렸고, 유가족과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몇 안 되는 시민들은 그분이 잡혀가는 것을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순간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네 명이 연행되었습니다.

 

경찰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자, 아버지들은 몇 안 되는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서로 팔짱을 끼고 둘러섰습니다. 언젠가, 자식은 못 지켰지만 유가족의 가족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안 다치게 지킬 거라던 한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라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무장한 경찰 앞에 맨몸으로 선 유가족들이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경찰 차벽에 막혔지만, 많은 시민들이 유가족들의 안부를 걱정해서 어떻게든 가까이 와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수백 명의 경찰이 유가족과 시민의 만남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터넷 방송을 하는 분들이 들어와 계셔서 현장의 소식이 조금이라도 알려졌다는 점입니다. 생중계를 보며 애 태우던 분들이 새벽녘에 경찰에게 강력하게 항의해서, 식사거리나 깔개, 담요 등을 반입해주었습니다.

 

           ▲  2015년 4월 17일 새벽 경복궁 앞, 경찰병력에 갇혀 노숙하는 유가족들  © 최창덕 
 

따뜻한 국물을 마셔서 몸이 조금 데워지니 긴장이 풀리면서 기절하듯 몇 분간 잠이 들었습니다. 서로서로 몸을 기대어 체온을 나누었지만, 작은 담요 두어 개만으로는 너무 추운 아침이었습니다. 날이 밝고, 저는 더 버틸 수가 없어서 계속 자리를 지키실 유가족에게 담요를 덮어드렸습니다. 진도 체육관에서 몇 날 밤을 새며 아이들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담요를 덮고 바닥에 쓰러져 계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말 이 나라가 유가족들을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도록 두는 것 같았습니다.  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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