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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 반영하는 언론보도

1월 2일자 경향신문의 “노인 성(性), ‘민망하고 불편한 시선’들을 이제는…” 제목의 기사는 노인의 성에 대해 금기시하지 말고 사회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인의 성적욕구를 인정하고 자연스런 표출을 도와야 한다는 지적은 수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주장은 옳지만, 그 논리는?
 
기사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근거로 제시된 사실들은 이상하다. 논리전개 과정에 심각한 성적 편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이야기해서, 성에 대한 통념을 비판하는 기사가 또 다른 통념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서는 ‘노인의 성’을 말하겠다면서 오로지 남성노인의 성적욕구와 그 해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노인에는 여성노인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노인의 성’을 이야기하는 이 기사에서는 여성노인에 대해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오로지 성적 주체를 남성에 한정하는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노인 성문제’에 대해 남성노인의 성적욕구에 대한 억압으로 포커스를 맞추면서, 이를 성범죄와 연결 짓고 있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기사는 “노인들의 성적 욕구 분출이 막혀 있다”고 말한 후 “이 때문에 노인관련 성범죄(‘성매매’도 언급하고 있다)도 늘어나는 형국”이라고 설명한다. 노인들이 성적 욕구를 분출할 수 없어서 성범죄가 늘어난다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하며, ‘노인의 성문제’가 심각하다고 결론짓는다.
 
또한 이 기사는 “노인의 성적 욕구는 단순히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비뚤어져 범죄로 이어졌을 때 사회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말하며, 노인의 성문제에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를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설명하고 있다.
 
성범죄의 원인이 ‘성욕’…위험한 인식
 
최근 들어 특히 증가추세에 있는 십대의 성범죄에 대해 우리는, 십대들의 ‘억압된 성적욕구’라고 진단하지는 않는다. 청년, 장년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문제를 상담해 온 전문가들은 ‘억제할 수 없는 남성들의 성충동’ 때문에 성폭력이 일어난다고 하는 통념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문제제기해왔다. 실제로 성폭력은 가해자의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이나, 폭력적 행위를 ‘해도 된다’고 허용하는 상황 등 성충동 외적인 부분에 기대어 발생한다.
 
이를 테면 경향신문 기사에서 사례로 제시된 남성노인이 아내를 돌보기 위해 방문한 요양보호사를 성추행한 사건의 경우를 보자. 작업환경이 외부와 분리된 가정에서 요양보호사 여성이 보호서비스를 해야 하는 상황과, 성추행을 겪고도 문제제기하기 힘든 점 등 돌봄노동자가 처한 안전망의 문제와 성별 권력관계에 대해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남성노인의 ‘억압된 성’이 성폭력의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이야기는,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남성들이 하는 통념에 기댄 변명일 뿐이다.
 
노인의 성적욕구는 그것이 존재하고 있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금기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인의 성을 금기시하는 것은 젊고 아름다운 몸만을 가치있다 여기고, 성적인 행위를 외모와 육체적 능력에 한정해 사고하는 우리 사회의 얄팍한 성 인식에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노인의 성에 대한 통념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성에 대한 인식 전체를 건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노인의 성문제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환기해야 하는 이유가 범죄 가능성 때문이라면, 이는 오히려 노인들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다. 
[일다] 박희정  관련기사 보기: 성폭력 판결문에 “욕정” 표현은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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