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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볼수록 ‘내 몸이 불만족스럽다’
<렛미인> <화이트 스완>…성형시장과 미디어의 공생 

 

※ 필자 이윤소 님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미디어가 우리의 ‘몸’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

 

<TV가 피지섬에 들어온 지 38개월이 지난 금년 초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 섬 여성의 74%가 자신을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또 조사대상 여성의 15%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억지로 음식물을 토해낸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피지의 전통적 미인형은 근육이 튼튼하게 발달하고 풍만한 여성.

 

베커 교수는 “이 섬 주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88년엔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면서 “TV 전파를 타고 미국 영국 등에서 제작된 ‘ER’, ‘여전사 지나’ 등의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깡마른 여성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이상적 여성상이 뒤바뀌어 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1999년 5월 24일자 “전통‘뚱보미인’싫어…깡마른‘TV미인’좋아” 중에서)

 

위 기사에 등장한 앤 베커 교수(미국 하버드대 인류학과)의 연구 결과는 미디어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TV 드라마 속 여성 주인공들의 외모가 피지섬 여성들에게 ‘미’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현재까지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2010년 방송된 <마르고 싶으세요>(SBS)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에게는 신체 이미지가 과도하게 강조된 광고를, 다른 한 그룹에게는 정보가 강조된 광고를 보여줬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체크하도록 했다. 예상대로 신체 이미지를 강조한 광고를 본 대학생들 그룹에서 자신의 신체가 불만족스럽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았다. 미디어가 우리의 몸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성형광고의 극단을 보여주는 TV성형프로그램

 

우리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의 광고를 접한다. 그 중에는 ‘얼굴을 고쳐라’, ‘살을 빼라’고 말하는 성형외과, 한의원, 피부과, 치과 등의 광고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 광고는 또한 ‘비정상적인 외모’를 규정하고, 이러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환자’로 취급하며, 시술과 수술을 통해 ‘정상적인 외모’를 가져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러한 광고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렛미인>(tvN), <화이트 스완>(JTBC)와 같은 TV성형프로그램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지하철에 붙은 성형외과 광고에서 볼 수 있는 전후 비교 사진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와, 방송 영상을 통해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꾸며 더욱 강력하게 성형의 효과를 광고하고 있다.

 

▲  6월 5일 낮 12시 서울 상암동 CJ E&M 앞. 성형수술을 조장하는 방송프로그램 '렛미인'의 방송중단을 촉구하는 여성단체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 일다 
 

TV성형프로그램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출연자를 등장시키고 이들의 불우한 환경을 강조한 후, 성형수술을 통한 외모의 변화를 보여주고 이로 인해 삶 또한 변화한다는 방식의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외모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렵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워 이것은 성형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변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정당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부각되어 보여지는 것은 ‘성형수술의 효과’이다.

 

만약 이들 프로그램에서 성형수술 과정과 수술 후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정신과 상담, 심리 치료, 취업 상담 등의 요소만 남게 된다.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TV성형프로그램이 성형수술에 대한 방송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한, 성형외과를 광고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본질은 변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있으나마나 한 ‘성형광고 금지’ 규정

 

사실 TV방송을 통해 병원이나 의료인, 의료시술을 광고하는 행위는 의료법 제56조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TV성형프로그램은 협찬을 받는 방식을 통해 이들에게 실질적인 광고 효과를 주고 있다. 제작사는 병원 측으로부터 수술과 시술이라는 지원을 받고, 병원은 이를 통해 광고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성형산업과 미디어는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의사와 병원이 방송프로그램 협찬이나 제작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난 6월 11일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남인순 의원과 한국여성민우회가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개최한 “TV성형프로그램을 통해서 본 의사·병원 방송협찬의 문제점” 토론회에서는, TV성형프로그램이 제작될 수 없도록 법적인 검토를 하였다.

 

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 협찬 고지에 관한 규칙 등은 협찬 ‘고지’를 금하고 있지만, 정작 협찬 행위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고 있지 않아 지금과 같은 편법 협찬 행위를 낳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 협찬 고지에 관한 규정을 통해 ‘방송사업자는 협찬주에게 광고 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구성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광고 효과를 버젓이 주고 있음에도 강력한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또한 지적되었다.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조연하 교수는 방송광고 금지 품목을 규정하고 있듯이 협찬 금지 품목을 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병원과 의사의 방송 협찬을 엄격히 금지한다면 TV성형프로그램처럼 전면에 성형수술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이 제작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된다.

 

외모 차별의 해결은 외모를 고치는 것?

 

TV성형프로그램이 제작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성형광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 프로그램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외모 차별에 대한 내용이다. <렛미인>(tvN), <화이트 스완>(JTBC)은 모두 외모 차별을 묵인하고, 단지 외모를 변화시키라는 메시지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한 예로 두 프로그램에는 출연자가 외모로 인해 고용차별을 받는 모습이 등장한다. <화이트 스완> 2화에서는 출연자가 한 화장품 매장에 면접을 보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매장 직원이 “면접을 보러 오면서 마스크를 썼네”라고 하여 출연자가 마스크를 벗자, 직원은 “사람 구했어요”라고 말한다. 심지어 이 장면 바로 뒤에, 프로그램의 담당 작가가 해당 매장에 찾아가자 바로 채용이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렛미인>의 방송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1화에서 출연자가 취업 면접을 보러 간 의류매장의 직원은 “얼굴하고 사진하고 좀 많이 다르네?”, “걱정되는데… 얼굴이 또… 그런 것 같아서…”, “(노력하겠다는 출연자의 말에) 노력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고 말하며 이력서를 돌려준다. 다음으로 찾아간 한 카페의 사장도 ‘이런 일 자체가 손님을 마주하는 거라 거부감이 들면 제 입장에서도 곤란하다’는 이유로 출연자를 돌려보낸다.

 

그 후 출연자들은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를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방송의 내용은 외모로 인한 고용차별이라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외모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다.

 

▲  케이블방송 프로그램 '렛미인'의 방송중단을 촉구하는 민우회 활동가들의 피켓시위.   © 일다 
 

출연자에 대한 차별 발언과 행동도 문제이다. <렛미인> 첫 방송에서는 ‘차라리 태어나지를 말지’라는 출연자 가족의 말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냈다. 또 출연자가 등장하였을 때 놀라거나 눈물을 흘리는 MC들의 모습을 방송한 것 등은 한 사람의 외모에 대한 언어의 폭력, 시선의 폭력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화이트 스완>에서는 출연자의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민에게 묻고 그 대답을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최종적으로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출연자의 외모에 대한 언어폭력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남성적인 느낌이 좀 있는 것 같아요’, ‘표정이 어두워 보여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할머니 같은 상’과 같은 말은 외모를 이유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이다.

 

이러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방송되는 것은, 타인의 외모에 대해 쉽게 평가하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우리사회의 잘못된 문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 제작진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외모를 잣대로 누군가를 비하하는 표현을 하는 것은 일종의 ‘혐오 표현’이기에 방송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방송이 ‘성형시장 수요 늘리기’에 일조해선 안돼

 

외모 차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지 못한 채 이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성형수술을 통해 ‘예뻐져서’ 차별의 대상이 안 되면 되지 않냐는 식의 TV성형프로그램의 내용은 일상 속의 외모 차별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들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외모 차별로 인해 받는 고통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방송 프로그램이 나서서 외모로 인한 고통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을 ‘수술과 시술을 통한 외모의 변화’ 한가지로 제시하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진심으로 외모 차별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TV성형프로그램을 만들어 성형수술을 통한 ‘인생역전’이라는 판타지를 심어줄 것이 아니라, ‘다르니까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맞다. ‘몸의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확산시키고 우리 사회에서 외모 차별이 사라지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는 프로그램 제작을 권하고 싶다.

 

TV성형프로그램으로 인해 출연자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 지라도, TV 밖의 외모 차별은 더욱 공고해진다. 성형수술의 효과를 맹신하게 되고, 성형수술을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까지 성형시장의 ‘고객’이 되도록 만들어, 성형산업을 비정상적으로 확장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의 엄청난 영향력이다.

 

지상파 방송이 아니어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JTBC와 tvN도 방송의 공적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고려하여 TV성형프로그램 제작을 중단하길 바란다.  이윤소

 

* 성형외과 광고와 다름없는 <렛미인> 중단을 위한 온라인 서명  http://bit.ly/1dFnQ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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