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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엄마대학원생 현실에 눈뜬다면
서정원의 미국대학 탐방(5)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서울대 부모학생조합 <맘인스누> 대표 서정원씨(33세)가 양육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을 위한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미국 대학들을 탐방하고 온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편집자 주

 

 

‘부모학생’ 인식 개선을 위한 대학생들의 캠페인

 

얼마 전 서울여대 학부생 다섯 명으로 구성된 그룹에서 반가운 이메일이 왔다. 자신들의 친구 중에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통해서 ‘대학에 다니는 과정에 엄마가 된 학생이 공부와 육아를 함께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다섯 명의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힘을 합쳐 엄마인 학생들을 위해 작게라도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대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부모학생조합 <맘인스누>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가 이 학생들의 열정을 만나니 멋진 인포그래픽(Infographics,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탄생했다.

 

우리는 이 인포그래픽을 인터넷에 게시하고, 인쇄하여 대학 캠퍼스를 함께 찾아 다니며 ‘아이를 양육하는 학생들’의 존재를 알리고 부모학생을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부모학생 이슈에 관심을 가진 국회의원실에도 방문하여 그 내용을 전달하였다.

 

▲ 서울여대 학부생들이 부모학생 이슈에 대한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국회의원실을 방문, 설명하고 있다.    
  

어린이집 입소…맞벌이 가구에 대학원생도 포함

 

며칠 전, 포털 사이트 메인에 기사가 올랐다. 어린이집 입소 우선 순위 시스템이 전면 개편되어 맞벌이 가구에 가산점이 부여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대학원생도 포함된다는 내용이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맞벌이 가구를 지원하는 정책에 대학원생도 포함시켜 달라고 신문고에 청원을 올리기를 수 차례, 정책 관련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마다 붙들고 어린이집 입소의 사각 지대에 놓인 엄마대학원생의 처지를 알려왔었다.

 

과연 누가 엄마대학원생의 ‘키다리아저씨’(혹은 아주머니)기 되어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책을 통해 최소한 어린이집 입소 우선 순위에서 밀려 엄마대학원생이 복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엄마대학원생, 혹은 엄마인 대학원생은 미래 세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어머니이자, 연구직 양성 과정에 있는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인식되는 20세기 이후 등장한 새로운 인구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대학원생이 적을 둔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 교육부 관할이다. 모유 수유할 곳이 없어 화장실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유축을 할 곳이 없어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을 빌려서 써야 하는 대학의 현실은 아직까지 대학이 학생의 모성보호를 대학의 책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고등교육 정책에서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모성보호, 학업-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내용이 간과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 고등교육이 여성인력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형편에서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 입소 우선 순위를 개선하며 맞벌이를 비롯해 대학원생을 지원 대상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은, 적어도 ‘보육’의 측면에서는 엄마대학원생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인식한 것으로 보여진다.

 

‘가정이냐, 학업이냐’ 혼자 고군분투해온 여성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엄마대학원생이 잠재력과 가능성을 평등하게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측면, 즉 대학의 공간과 학칙, 연구실의 문화, 학사 제도와 같은 고등교육의 환경이 엄마대학원생의 현실과 학업-가정 양립에 눈뜨지 못하면, 여전히 아이를 양육하는 대학원생들은 지독히 불리한 환경과 조건에서 혼자 고군분투해야 한다.
 

           ▲  미국 MIT공대 캠퍼스 중앙건물 1층은 바로 어린이집이다.   © 사진: 이진화 

 

지금 학계에 있는 여성학자들이나 연구직 여성들 중에는 이런 고단하고 외로운 과정을 꿋꿋이 버텨낸 저력과 능력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과 같은 길을 걷다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된 수많은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고 가정을 돌보는 것은 수고와 공이 엄청나게 요구되는 일이다.

 

나는 사회적 경력을 탄탄히 쌓아간 여성들도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또 다른 선택을 한 여성들의 인생의 승자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에게 주어진 불리한 조건들 속에서 삶을 버텼고, 최선을 선택하며 삶을 살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배여성들의 삶은 우리 사회에서 승리로 해석되기보다는 전자는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기 영달만 쫓은 여자’, 후자는 ‘집에 들어앉아 애만 키운 여자’라고 폄하되기 일쑤다.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 환경에서 엄마대학원생에게 주어진 선택지 역시 선배여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최선이겠는가? 가족이라는 사적인 관계와 그 속에서의 노동과 책임이 없는 것처럼 자신의 일에만 매진하거나, 소중한 관계를 지키고 역할을 다하기 위해 또 다른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삶? 이런 상황에서는 여성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실패’라는 사회적 평가와 자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엄마대학원생, 성장을 꿈꾸는 여성들의 부단한 삶을 폄하하고 낙인 찍은 것은 지금까지 역사로도 충분하다. 내 후배들과 자녀들의 세대는 우리가 경험한 난감하고 황당한 이중 구속의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어느 개인의 힘이나 특정 집단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오로지 ‘정치적 수사’ 속에서만 ‘양성 평등’한 지금의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대의 행동이 필요하다.

 

싱글맘과 엄마대학원생이 무슨 공통점이 있냐고?
 

▲ 서울여대 학부생이 대학 캠퍼스에서 부모학생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하는 모습. 
 

지난 달 11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 협회’ 인트리가 주관하여 열린 제5회 싱글맘의 날 기념 컨퍼런스에 <맘인스누>도 공동 주최 단위로 참여하였다. 컨퍼런스에서 나는 대학에서 엄마들이 겪는 상황에 대해 발언하였다.

 

얼핏 보면 싱글맘과 엄마대학원생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문화, 같은 사회에서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기르고자 노력하며, 자기 자신 역시 성장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엄마이고, 여성이라서 경험하는 사회적 배제와 억압의 유사성이 있다는 것, 특히 고등교육 제도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싱글맘들은 공감해주었다. 나는 이런 자매애와 연대가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 사이에도 차이는 있다. 하지만 차이를 인식하는 것과 서로를 구별 짓기 하며 분산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가 가진 공통분모를 보면, 서로의 차이라는 것도 생각만큼 크지 않고 충분히 힘을 모을 수 있다. 서로의 차이를 알되,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달려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엄마대학원생 모임을 만들고, 엄마대학원생의 권리와 복지를 위한 활동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우는 아이 젖 준다. 그러니 열심히 울어라’였다. 그러나 활동의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혼자서 울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웃고 싶다. 엄마대학원생과 함께, 다른 여성들과 함께 웃고 싶다. 울어야만 웃을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다면 기꺼이 울 것이다. 함께 울며, 결국은 웃음을 만들어갈 친구들을 초대한다.  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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