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첫 봄을 맞는 동네책방에서 ‘일단 멈춤’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2집 앨범 배달여행
※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 이내 2집 앨범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배달여행 중
언제까지 우연과 운명을 믿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어차피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므로, 생각해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찾아오면 고마워하면 되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 무엇도 탓할 수 없다.
앨범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앨범을 만들라고 돈을 먼저 주는 마음은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을 믿음이라 했으니 말이다. 앨범을 선 주문을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배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특별히 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최대한 찾아가보려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또 생겼다. 잊지 않도록 잘 기록해 두어야겠다.
작은 서점들이 문닫는 요즘 책방을 낸 ‘일단 멈춤’
작년에 부산에서 A의 사진 여행전 오프닝 공연을 했는데, 굉장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가끔 찾아본다.
※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러브쏭] 공연 유튜브 영상 youtu.be/5e_xkgb2ZKY
지금은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서 앨범 배달을 핑계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며칠 후 공연할 장소인 독립출판서점 ‘일단 멈춤’에서 만나기로 했다. 낯선 장소에서 하는 공연이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가능하면 공연 전에 기회를 만들어 찾아가보곤 하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일타이피!
볕이 잘 드는 주택가 사거리에 자리잡은 ‘일단 멈춤’은 작은 동네 책방이다. 여행서적을 주로 판매하며 소소하고 재미난 이벤트가 종종 열린다. 출입구 앞 계단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동네 주민들이 조용히 고개를 까딱인다.
▲ 독립출판서점 ‘일단 멈춤’ 출입구 앞 계단에 앉아 기타를 치다.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대형 서점에 밀려 동네 책방들이 속절없이 문을 닫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책방 일을 덜컥 시작한 젊은 여사장님이 우리에게 차를 내어주며 그 곳의 햇살처럼 웃었다.
A에게 앨범을 건네며 책방 사장님에게도 한 장 선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원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잘 지켜달라고.
“혹시 가수 이내씨 인가요?”
그때 우리보다 먼저 책방에 와 있던 한 손님이 말을 걸어왔다. (사실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라 무척 신기했는데) 내 얼굴을 보고 긴가 민가 하다가 우리 사이에 내 앨범이 오가는 것을 보고 알아봤다고 했다.
자신은 상주에 있는 함창 <카페 버스정류장>의 주인인 박계해 선생님의 제자인데, 선생님을 통해 나를 알게 되어 유튜브에서 노래를 찾아 들었다고 했다. 부산에 살고 있고, 서울에 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일단 멈춤’에 들렀는데 나를 만나 신기하고 반갑다며 앨범을 한 장 구입해주셨다.
한날 한시에 그 곳에 모인 네 사람은 일단 멈추어, 차를 마시며 제법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한 번의 작은 우연과 운명을 경험한 것이다.
▲ 동네서점 ‘일단 멈춤’에서 만난 사람들.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최근 책방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고백하며 소설가 김연수의 글이 옮겨진 ‘일단 멈춤’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았다. 그녀는 그 글에서 ‘가장 무용(無用)한 시간’으로 지금을 견디겠노라며 필사(筆寫, 베껴 씀) 모임을 제안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의 의사를 밝혀 온 눈치다.
잔인한 4월, 바다 속 깊은 곳의 물 온도는 기온보다 두 달 정도 느리게 변한다고 한다. 차가운 시절에도 구석구석 어딘가에 신성한 마음들이 세월을 거스르며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이제 첫 봄을 맞는 동네책방 ‘일단 멈춤’이 뚜벅뚜벅 잘 견뎌 주었으면 좋겠다.
※ 독립출판서점 ‘일단 멈춤’ 블로그 blog.naver.com/stopfornow
덧) 서울에 산다면 책방 출입구 앞에서 매일 기타를 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그 곳의 햇살은 특별했다.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지나가던 행인들이 무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더니 내 이메일 주소를 적어갔다. 사진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얼마 후 현상과 스캔을 거친 사진들이 속속 도착했다.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고 까맣게 잊어버린 경험이 있는 나에게 이 사진들은 부끄러움이고 놀라움이었다. ▣ 이내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영문 사이트 | 일다 트위터 | 일다 페이스북
'경험으로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혼(非婚) 여성의 귀농 이야기 (1) | 2015.05.21 |
---|---|
할머니 포크가수의 환갑잔치 같은 공연 (0) | 2015.05.17 |
고맙다, 생각다방산책극장 (0) | 2015.05.16 |
나도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1) | 2015.04.07 |
‘아들, 이런 일 하기 싫으면 공부 열심히 해’ (0) | 2015.04.01 |
홍성 ‘ㅋㅋ만화방’에서의 게릴라 공연 (0) | 2015.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