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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활동보조
장애인가족의 부담은 끝이 없다 
 

 

모처럼 머리를 자르러 갔다. 매번 가던 미용실이 문을 닫아 새로운 곳 몇 군데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아야 했다. 가장 ‘친절하다’는 평이 난 곳으로, 그러면서 비싸지 않은 곳으로. 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따라 나선다.

 

“왜요? 그냥 혼자 가도 돼요. 힘들게 뭐 하러…”

“아니야, 얘. 너 혼자 가면 사람들이 무시해. 그리고 네 목 조심하라는 얘기도 해야 하고.”

 

엄마가 이런 식으로 말씀을 시작하면 다른 어떤 얘기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결국 엄마와 미용실에 같이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휠체어를 탄 장애남성과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저 사람은 활동보조다. 엄마라면 저렇게 안 하지. 암, 저 남자 저 옷차림하고는…. 몸도 불편한 사람을 저렇게 냅두면 안 돼.”

 

엄마는 계속 혀를 차며 말씀하셨지만 난 모른 척했다. 내가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옷차림이다. 오히려 젊은 애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엄마, 활동보조인이라도 그런 건 간섭하지 않는 게 원칙이에요” 라고 반박하면 엄마는 분명 “그건 아니지, 그럼 왜 돈을 받니?” 하고 나올 것이 뻔하다.

 

엄마가 “너도 활동보조 좀 받게 해봐라. 넌 왜 요령 없이 그런 것도 못 받니. 엄마도 늙어서 힘들다. 아는 사람한테 말 좀 해봐” 하고 푸념하시는 얘길 들으며, 나는 또 건성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내가 자존심 때문에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복지 체계의 미흡함 때문에, 아무리 내가 원한들 활동보조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도움 줄 이가 곁에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  장애여성공감이 제작한 활동보조 인권지침서 <이것부터 시작해요>(2010년) 일러스트. ©장애여성공감 
 

십 년 전만해도 ‘활동보조’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낯설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보조는 가족의 몫이거나 장애인 생활시설의 몫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때문에 활동보조에 대해 ‘가족이 할 일’을 대신한다고 여기거나, 자원봉사 개념과 비슷하게 생각해서 ‘좋은 일’을 한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한편, 활동보조 일을 하는 분들은 코디네이터와 상담할 때 ‘그 집 엄마는 나만 오면 맨날 놀러 간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하고, 반대로 ‘그 집 사람들은 나한테 일을 너무 안 시켜서 일하기 민망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에 활동보조의 영역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 분야에서 오래된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장애여성이 한 집안의 엄마이고 주부일 경우에는, 어디까지 활동보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다.

 

아직 자리잡았다고 보기엔 미흡한 제도이지만, 장애인의 삶에 활동보조가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내 경우만 해도, 일상적인 일과임에도 어떤 선택을 할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를 테면 엄마가 옆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입고 나갈 블라우스 모양이 달라지고, 목걸이를 할 지 여부도 달라진다. (앞 단추는 잠글 수 있지만 뒤에 달린 단추는 잠그지 못한다. 목걸이도 손가락 힘이 없어 혼자 채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언어장애가 있기 때문에, 전화로 바로 일을 해결할지 메일로 처리해야 할지 여부도 달려있다. 맘에 드는 공연을 예매할 때 장애 할인을 받으려고 해도, 전화로 처리하는 공연장들 때문에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티켓 비용에 대한 잔소리를 들어야 할 때도 많았다.

 

하물며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중증장애인들에게 있어서 활동보조는 삶을 결정하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장애인들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활동보조 제도이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와 한계를 가지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중년이 된 장애인 딸을 둔 엄마의 하루

 

아마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의 원초적인 활동보조는 엄마일 것이다. 또 장애인들이 제일 많이 활동보조를 받는 것도 가족들로부터가 아닐까 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보살핌을 정말 많이 받았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비장애인 자녀 같으면 몇 년에 끝날 양육 과정을 장애 자녀가 있는 엄마들은 길고 길게, 혹은 평생 계속해야 한다.

 

소아재활병원에라도 가보면 엄마들의 돌봄은 끝이 없다. 엄마가 직장 일을 하면 그 몫은 고스란히 할머니한테 돌아간다. 활동보조를 받는 아이라 하더라도, 서비스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마음을 푹 놓을 수는 없다. 시간 맞춰 이동하고, 밥 먹이고, 공부도 시켜야 한다. 장애자녀를 돌보면서 비장애 자녀도 챙겨주고 남편까지 챙긴다. 그나마 아이가 스스로 움직일 정도가 되고 같이 양육을 도와줄 가족이 있다면 한숨 돌리겠지만, 엄마의 역할은 무겁기만 하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활동보조를 받지 않는,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나와 엄마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사람들이 좀더 이해할 수 있을까?

 

재활병원에 갈 때는, 정기적으로 교수님(의사)과 면담이 잡힌 날에만 엄마와 동행한다. 교수님과는 오래 만나왔지만, 그래도 엄마의 통역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인데, 보통 진료가 오전에 있다. 집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찍 서둘러야 한다. 서둘러 밥을 먹고 엄마도, 나도 약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선다, 엄마도 요즘 몸이 여기저기 편찮으시기 때문에 많이 피곤해하신다. 그래도 모른척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으니까.

 

버스에 오르니 자리가 하나 있다. 난 엄마 앉으시라고 버스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 손잡이를 붙잡고 선다. 엄마가 날 부르지만 못 들은 척한다. 엄마가 자리에 앉는 걸 보고 나서 한숨 돌린다.

 

병원 도착. 오늘은 여기저기 갔다 오라는 데가 많다. 아무래도 지난 번 검사 결과가 별로 안 좋았다 보다.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는데도, 병원은 자꾸 보호자를 요구한다. 겨우 엑스레이를 찍었다. 보호자가 잡아주어야 하지 않냐고 하는 것을 괜찮다고 우겼다. 엄마가 자꾸 옆에서 쿡쿡 찌른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내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창피하신 것 같다. 모른 척했다. 무조건 보호자를 요구하는 병원 측이 얄미워서였다.

 

그때 구청에서 전화가 온다. 몇 마디 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엄마를 바꿔줘야 했다. 의사를 만나니 역시나 검사 결과가 신통치 않다. 엄마는 옆에서 “얘 장애등급 좀 올려주세요. 활동보조도 받고 콜택시 좀 타고 다닐 수 있게요” 라고 하신다. 몇 번째 하시는 얘기라 의사도 허허 웃기만 한다. 집에 오는 길에 보니 엄마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집에 도착해 곧바로 자리에 누우신다.

 

있는 그대로 쓴 나와 엄마의 어떤 하루의 얘기이다. 자녀는 나이가 들어 이제 노화가 시작되는데, 이미 고령이 된 부모가 그 자녀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현실이지만, 당장 대안이 없다. 장애 등급이 낮은 내가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지 모르겠다. 몇 년 만에 서비스 대상자가 조금 확대되긴 했어도 말이다.

 

가족에게 부담스런 존재가 되길 원치 않는다

 

▲  장애여성공감이 제작한 활동보조 인권지침서 <이것부터 시작해요>(2010년) 일러스트. © 장애여성공감 
 

요즘 뉴스에선 장애 가족을 둔 사람이 돌봄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동반자살을 한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특히 지적 장애나 자폐성 장애와 같은 발달장애가 있는 경우, 이들은 대부분 가족의 돌봄을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책임을 가족에게 맡긴 사회에서, 이 같은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나에게도 동생이 있는데, 장애인 가족이 느끼는 부담이 몹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나에게 ‘올케한테 아무 부탁도 하지 말라’고 계속 강조한다. 조금이라도 부담을 준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며. 밥벌이도 하고 나름대로 내 삶을 알차게 꾸려가고 있지만, 동생 부부한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의 행동 반경이 좁아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다른 가정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집에서는 부모가 장애가 있는 형제만 과잉 보호하고 자신을 홀대한다고 느낀 비장애인 형제가 가출을 한 경우도 보았다. 사실 이것이 어떻게 부모의 잘못이겠는가. 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부담은 끝도 없다.

 

만약 우리 사회의 복지 체계가 조금만 더 탄탄해진다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 대한 치유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고,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가족들도 장애인을 부담스런 존재가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장애운동 진영은 장애 등급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 등급이 폐지되고, 필요에 따라서 나 같은 사람도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다면 나와 내 가족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우리 엄마처럼, 장애인과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신들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테고, 그만큼 부담도 덜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선택의 폭이 그만큼 늘어나고 활동 영역도 넓어질 것이다. 전동휠체어가 처음 선을 보였을 때 장애인들 중에는 ‘혁명’이라고 이야기한 이들도 있었다. 활동보조는 그에 견줄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두 시간쯤 걸려 머리 스타일을 짧게 바꿨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만족해하고 있는데, 옆에선 엄마는 또 한숨을 짓는다. “이 머리 관리하기가 얼마나 어렵겠니? 그냥 묶일 정도만 자르라니까.” 사실 나는 드라이도 좀 하고, 고데기도 다룰 수 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헤어디자이너 분이 오히려 미안해한다.

 

‘관리 안 되면 다시 오시라’고 하는 디자이너에게 ‘머리 잘 나왔어요. 저 관리 잘해요’라고 웃으며 말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머리 속 한 켠으로는, 내가 지금보다 팔 힘이 빠지게 되고 그때에도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내 삶에서 선택이 얼마나 줄어들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이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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