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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대학 성폭력, 사건을 넘어 문화를 말하자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5. 3. 24. 09:30

대학 성폭력, 사건을 넘어 문화를 말하자
국민대 단톡방 사건과 서강대 OT 사건이 보여주는 것 

 

※ 대학 내 성폭력과 반성폭력 운동에 대해 점검해보는 이 글의 필자는 고려대학교에 재학중인 동동 님입니다. 기고문의 일부 문구가 적절한 인용 표기 없이 도용 작성된 것으로 드러나, 2015년 3월 25일자로 원문의 출처를 밝히고 수정 개제하였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주

 

 

아무도 모르는, 하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학생 사회 안에서 ‘고전적인’ 성폭력 사건 서사가 있다. 술자리에서 남자 선배가 술에 취한 여자 후배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발생하는 성폭력. 농활을 가서 공동 생활을 하다가 발생하는 성폭력. 동아리 MT에서 술자리가 밤새 이어지는 가운데 벌어지는 성폭력. 학생들에게 익히 알려지고 공론화된 대부분의 학내 성폭력 사건들은 예외적이면서도 우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문제 제기를 망설이다가 그 공동체에서 사라지는 선택을 하고, 사건에 대한 조치를 취하더라도 조용히 공동체의 간부나 핵심 집행부에게 제보를 하고 문제 해결을 요청한다. 피해자나 공동체의 핵심 간부나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서로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를 공동체에서 방출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물론 이 조치 역시 조용히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해당 공동체에서 사라진다. 성폭력 사건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개인, 혹은 극소수에 의해 처리되므로 마치 우리가 매해 겪는 학생 사회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성폭력을 유발하는 요인 ‘대학 문화’
 

▲  SNS에 올라온 서강대 OT 사건 이미지. 
 

얼마 전에, 학생 사회 내에서 익숙한 학내 성폭력 사건과는 다른 성격의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일명 ‘국민대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이하 단톡방 사건)과, 서강대 경영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성희롱 문구를 사용해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단톡방 사건은 국민대 한 학과의 남학생들이 자신들의 소모임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의 사진을 올리며 성추행 발언을 주고 받은 사건이다. 한편, 서강대 경영대학 신입생 OT에서는 선배들이 숙소 문 앞에 ‘아이러브 유방’, ‘작아도 만져방’, ‘입장 시 위아래 춤 3명 이상 추기’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여놓아 신입 여학생들에 대한 성희롱이라는 비난을 샀다.

 

이 사건들은 성적 폭력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성폭력 사건의 서사에는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기존의 성폭력 사건에는 명확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가 성립한다. 술자리, 엠티 등에서 특정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의 행위를 했고,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식했을 때 성폭력 사건이 성립한다. 피해-가해 구도가 명확하고, 그와 관련된 개념도 지난 20년 동안의 사건사고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정립이 된 편이다.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규정하는 데에는 대체로 학내에서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 두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명확히 나눠질 수 있을까? 단톡방 사건의 경우를 보자. 만약 단톡방 사건이 공론화되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발자가 등장하기 이전 시점에서도, 단톡방 내에서 이루어진 언어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힌 것인가?

 

이번 사건에 대해 면밀히 따져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려내고자 한다면, 진상을 조사하여 직접 단톡방에서 언어성폭력을 저지른 인물, 또 오리엔테이션에서 여성비하적인 문구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을 가해자라고 지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를 일일이 가려내어 기존의 반성폭력 매뉴얼에 따라 징계 절차를 밟아 처리한다면, 이러한 사건에 대해 할 도리를 다 한 것인가?

 

국민대학교 학생자치언론 <국민저널>에서 단톡방 사건을 다루면서 인터뷰한 한국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 정하경주 활동가도 이러한 난점을 지적하였다.

 

“우선 이를 성폭력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성폭력은 피해와 가해의 경험이 명확하다. 특정 인물 몇몇에 대해 다수의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모르는 상태였으면 아무 일 없이 끝났을 문제였다.” (국민저널, 2015년 2월 27일자.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 2. “징계가 먼저 나오는 건 순서가 아주 잘못됐다는 뜻이죠.”)

 

서강대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발생한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해자 방출이나 피해자의 도피만으로는 결코 대처할 수 없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을 전부 징계 처리하는 것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는, 그런 사건이다.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면 답이 없어

 

학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들은 개인의 왜곡된 성 관념뿐만 아니라 ‘문화’라는 명목으로 계승되어온 악습의 흐름 안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행되어왔다. 그럼에도 ‘사적인’ 이슈로 치부되면서 그 맥락이 은폐되어 왔다.

 

이번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동안 학내 전통이라는 명분으로 당연시되던 학생 사회의 공동체 문화 자체가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톡방 사건의 경우, 분명히 단톡방 내 언어성폭력을 주도한 사람들이 있고 그 언어성폭력의 대상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단순히 해당 단톡방 만의 일은 아닐 것임이 분명하다. 굳이 단톡방을 예로 들 필요도 없다. 남성들 사이에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음담패설과 성적 대상화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 집단의 유대감을 맺는 과정이니까.

 

그리고 이러한 ‘남성 문화’ 속에서 성폭력 사건은 자연스럽게 발생해왔고, 사건의 당사자들은 늘 맥락에서 이탈하여 잊혀졌다. 당연히 사건이 공론화되었다면 가해를 한 주체를 가해자의 위치에 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폭력 사건에 충분히 대처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학내에서 매년 반복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그 ‘문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2011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반성폭력연대회의에서 활동하던 김푸른솔(법과대학)은 “출교 조치 그 이상을 요구하며”라는 대자보를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학생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성폭력이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성폭력은 고파스(고대 재학생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서, 결코 여성교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어떤 남성교수 발언에서, 남성학생에게는 편하기만 할 술자리들에서, 어떤 여성학생 자취방에서 끊임없이 벌어져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폭력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성폭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고려대학교 남성학생들은, 여성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고 여성을 음식물에 비유하고 여성을 ‘더 나은 자위 도구’로만 보는 행태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국민대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이나 서강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방문 앞에 걸린 성희롱 문구들도 이러한 일상화의 연장선에 있다. 굳이 단톡방이나 오리엔테이션에 찾아가지 않더라도, 온라인 공간 어디선가에서 너무도 쉽게 언어성폭력을 목격할 수 있다.

 

다시 ‘대학 문화’를 바라볼 때가 되었다

 

그동안의 반성폭력 운동은 학내의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며 매뉴얼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실제로 많은 학생 사회는 자체적으로 성폭력 사건에 대처할 매뉴얼과 반성폭력 내부 규약을 제정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로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었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는 없다. 위의 성과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을 단순히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소속된 공동체 ‘문화’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국 사회 특유의 ‘남성 집단문화’의 맥락, 그리고 이와 결부된 ‘대학 문화’가 지닌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이야기해야 비로소 성폭력 문제 해결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것이다.

 

학내 페미니즘은 성폭력 문제를 다룰 때, ‘성적 자기결정권’에 얽매여서 사건 그 자체 이외의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버거워한다. 성폭력을 매뉴얼처럼 다루게 되면서 성폭력이 더 이상 여성운동의 정치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여전히 우리는 무엇이 성폭력이고 무엇은 아닌지,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행위가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매달려서 정작 그러한 일이 발생한 맥락과 문화적인 폭력을 직시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국민대 학생 사회는 이 사건의 진원지인 해당 소모임과 소모임 제도 자체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해당 인물들은 학교 측의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여느 성폭력 사건의 해결 방식처럼, 성폭력 사건을 학생 사회의 문제로 가져가기보다는 가해자를 밀어내는 선으로 마무리 짓게 되는듯하다. 그것이 단순히 ‘이상한’ 남성 여럿이 저지른 ‘이상한’ 짓이 아니란 사실이 자명함에도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단톡방에서 같은 일은 반복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학내 페미니즘 운동은 ‘대학 문화’를 비판해왔지만, 그 시도들은 학생 사회에서 조롱과 무시를 당하곤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현재 학내 페미니즘은 성폭력 사건 대응 운동, 그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 이슈에 학내 자치 단위들이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뿐이다.

 

물론, 학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자족하는 것을 넘어야 한다. 다시금 ‘문화’를 바라볼 때가 되었다.  동동(고려대 석순편집위원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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