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엄마와 함께 본 ‘국제시장’
<모퉁이에서 책읽기> 문승숙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여성, 목소리들>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입니다.

 

영화관에서 <국제시장>을 보고 돌아서는 길에, 엄마가 묻는다.

 

“근데, 왜 저 부인 가족 이야기는 안 나오지? 둘 다 독일에서 광부로, 간호사로 일하다 만났고 여자도 맏이고 자기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면서, 결혼한 다음 부인 친정 쪽 가족은 어떻게 된 건지, 맏딸이 더 안 벌어줘도 되는 건지, 어찌됐는지 그런 얘기는 없냐?”

 

이상하다는 것이다. 왜 여자가 결혼하고 나면 남자 쪽 가족으로만, 게다가 의존적인 존재로만 그려지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했다.

 

“마지막 장면 참 안됐더라, 남편이 아버지를 부르면서 ‘그동안 힘들었다’고 우는 장면 말이다. 그러게, 남자들이 밖에서 돈 벌려면 얼마나 힘들었겠냐.”

 

엄마는 퇴직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어쩐지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장면에서 주인공은 자기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끌어안고 힘들었다며 울고 그 옆방에는 아내와 자식과 손주들이, 그러니까 평생 아버지의 ‘노동력’만을 그늘 삼아 번창한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둘러앉아 있고, 그 옆에는 서울의 휘황찬란한 야경이 나오는데, 그것은 폐허에서 성장한 국가, 그 번영을 이루어낸 이들이 아버지들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장면을 보고 엄마는 단박에 뜻을 알아채고 주눅이 들어버렸고, 나는 그 장면이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장면은 평생 전업 주부였던 엄마를 아무 생산도 하지 않은 사람 취급을 한 것이다. 생산하지 않은 여자들, 나라의 부를 만들지 않은 여자들.

 

영화에서 주인공은 독일의 광산에서, 베트남전에서, 시장통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목숨 걸고 ‘생계 부양자’ 역할을 하는 남편인 것이지, 주는 돈과 편지를 받고 울먹이면서 시댁 식구 챙기고 자식 낳고 키우고 살림하는 부인은 아닌 것이다. 남편의 욕지거리와 분노는 ‘생계부양자’로서 터뜨릴 만한 울화통이며, 부인은 그것을 이해하고 두둔하기에 바쁘지, 자신의 분노를 터뜨리는 주체는 아닌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렬한 정서적 환기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묘사하는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동원된 우리의 근대화 과정을 간과했다고 여겼다.

 

근대화의 성별 관계: 생계부양자와 가정주부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문승숙 지음, 이현정 옮김. 또하나의 문화, 2007)는 ‘한국의 경제와 정치에서 나타나는 성별 관계의 비대칭성이 여성과 남성이 국가에 통합된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파하는 책이다.

 

“군사화된 근대성의 핵심 요소는 공산주의자 타자와 싸우는 반공주의 자아로서 한국을 구성하는 것, 훈육과 물리력으로 반공 국가의 구성원을 만드는 것, 산업화 경제를 군 복무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 정체성의 군사화는 반공과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를 그 특징으로 한다. 다시 말해, 한국은 ‘주적’ 북조선에 맞서는 반공 국가로서 세워졌다. 나라를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근대화를 추진하는 국가는 감시와 정상화라는 훈육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제도화된 폭력까지 사용함으로써 개인과 사회 집단을 개조했다.” (46p~47p)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산업화 과정의 한국에서 성별 위계의 근대화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재구성과 유지에 달려 있었고, 그것은 가정주부 아내와 생계 부양자 남편 이데올로기와 성별 노동 분업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조에서 남성적인 정체성은 성별 분리 노동 시장에서의 특권적 지위에 기초하고 있었다. 남성이 안정적인 풀타임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몇몇 메커니즘이 작동했다. 그것은 국가 정책, 제도적 장치에서부터 기업체와 공장들의 개별적 관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또 가족생활, 학교 교육, 대중 매체를 통해 성별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101p)

 

“여성은 산업화 경제를 위한 지속성 있는 노동력으로 훈련하는 체계적인 정책과 프로그램은 없었고, 이 시기 동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과 프로그램 중 일관성 있게 추진된 것은 ‘가족계획’ 정책과 ‘합리적인 가정 경영’ 캠페인뿐이었다. 그런 정책들은 여성이 사적 영역에 묶인 재생산 담당자라고 전제하는 것이었다. 가족계획 정책에서는 여성을 양육자로 설정했고 합리적인 가정 경영 캠페인에서는 여성을 주부로 설정했다. 군사 정권이 이런 사업에 대해 남성의 군사적, 경제적 동원에 투자한 것과 같은 물질적인, 이데올로기적인 투자를 한 적은 없지만, 그것은 군사화된 강력한 산업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여자들을 근대 국가에 통합하는 차별화된 방법이었다.” (104p)

 

“20년간의 산업화를 거친 뒤, 1980년대쯤에는 생계 부양자 남편과 가정주부 아내라는 규범적 성별 분업이 확고해졌다. 1980년대 말에 이루어진 일레인 김의 연구에 따르면, 계층과 연령에 무관하게 이 남성들의 인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남성성은 가족 부양 역할이었다. 남자다움을 일차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경제 능력이었다. 근대적 성별 위계는 여성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농촌 여성들이나 도시 빈민 여성들은 가계 수입을 보태느라 일을 해야 했는데도 대부분 자신을 주부라고 보았다.” (100p)

 

“임금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시민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인데, 이렇게 성별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산업 경제를 만드는 속에서, 여성의 임금 노동 참여 가능성이 두 가지 방식으로 훼손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독립의 근원인 안정된 전일제 일자리가 없었으므로 여성은 세금을 낼 수가 없었고 따라서 여성의 정치체 구성원 자격도 가족과 친족에 의해 매개되었다. 가족과 친족 속에 잠겨 있는 재생산 담당자라는 여성의 주체성은 시민이라는 정치적 주체성, 즉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고 그런 권리에 실체를 부여하기 위해 기꺼이 투쟁하는 시민이라는 주체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247p~248p)

 

'생계부양자’ 남편이라는 자의식이 근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가정주부’라는 규범 또한 군사화된 사회에서 제조된 것이며, 이는 반공과 국가 이데올로기 위에서 빠른 속도로 확립 가능했던 것이다.

 

그 다음 우리가 맞닥뜨린 과업은 ‘여전한 반공주의와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를 쇠퇴시키며 여성과 남성이 정치체 구성원으로 평등하게 시민으로 등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이 책은 ‘한국에서 남성이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을 통해 시민성을 획득해가고 있을 때에도 시민운동은 남성의 군사적 동원에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여성이 시민성을 위한 투쟁을 할 때 모든 계급 여성들의 평생 평등 노동권을 위해 범계급적인 자율적 여성단체가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요컨대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치체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1988년 절차적 민주주의로 이행하기까지, 또한 1993년 문민정부가 되고 정권이 바뀐 지금에 이르도록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시민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린 아직 거의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마치 우리 사회가 애써 넓혀온 인식의 지평을 잘라먹은 듯한,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며 싸우는 사람들의 자리를 지워버린 듯한, 그 밤의 울음 장면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국가와 일체가 된 듯한 아버지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한 화면을 보고 다른 울음소리들이 켜켜이 겹쳐지며 들린 것이다.

 

입양인 제인 정 트렌카가 쓴 글도 그 울음소리들 중 하나였다. ‘서울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빛나는 한강의 기적과 서울 하늘의 윤곽선을 수놓은 저 거대한 부가 가능했던 건 수많은 사람들이 참고 견뎠기 때문이었다. 여기 우리, 추방된 자들은 바로 그 일원이다. 우리는 침묵을 맹세한 적 없고 우리의 가족들도 그렇지만, 우린 아직 거의 말하지 못한다.’(<덧없는 환영들>에서)

 

우리 엄마는 노동자였다. 대구의 방직공장에 다녔던 엄마는 1974년에 결혼했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가족계획을 했고 정해진 수의 아이를 낳았으며 대대적인 캠페인 속에서 저축과 절약을 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강한 농촌에서 친족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남편이 비운 집을 지키며 자식들을 길러내었다.

 

‘가정 경제의 파수꾼’, ‘가정의례 준칙의 실천자’, ‘근대적이고 교양 있는 어머니’, 엄마는 국가가 제시해주는 목표 앞에서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모성의 실천을 혼신의 힘을 다해 해냈다. 자신이 받아보지 못한 보살핌을 자식들에게 행했다. 그 엄마가 <국제시장>을 보고 미안해한다. 그 동안 너무 한 게 없다고. 남편의 덕에 산 세월이니 미안하다고.

 

그리고 갸우뚱하며 다시 묻는다. ‘영화 속의 저 부인은 노동자가 아니었냐’고, ‘저 여자가 산 세월은 도대체 어디 갔냐’고. 엄마는 영화 속에서 말 없는 아내를 한 사람의 노동자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건 엄마가 자신이 그동안 한 일을, 아무도 몰라줘도 자신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안미선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영문 사이트        |           일다 트위터     |           일다 페이스북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