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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았습니다
<모퉁이에서 책읽기> 최현숙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여성, 목소리들>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 –편지자 주

 

 

지방에서 일을 보고 서울행 버스를 탔는데 한 여자가 곁에 앉았다. 오육십 대쯤 되어 보이는 그 여자는 휴게소에서 나에게 캔 커피를 건네주었다.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가야 하니 심심하던 차에 말동무나 하자는 뜻 같았다. 자기도 고향에 들렀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라 하면서 내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게 존대했다.

 

“남편과 저는 전라도 쪽이 고향이에요. 결혼을 하고 나서 시어머니와 살았는데 제가 그때 미움을 많이 받았죠. 지금도 그분은 살아계시고. 힘들게 시집살이했죠. 저한테는 밥을 주지 않았어요. 밭에 가서 일할 때 물도 주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남편은 배를 타는 사람이었어요. 집에 늘 없어서 제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죠. 저는요, 밭일을 할 때 목이 말라서 구덩이의 물까지 먹었어요. 먹고 나서 들여다보니까 벌레가 우글거리더군요.”

 

나직한 목소리로, 저녁이라 불이 꺼진 버스 안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시댁에서 미움을 받게 된 건 결혼 전에 다른 남자를 알고 있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시누이가 대수롭지 않게 “올케, 이웃 총각 만났다며?” 묻는 걸, 그냥 아니라고 할 것을 생각 없이 “일없이 한번 본 게 죄가 되는감.” 하고 웃었는데 그 후로 방에만 가둬두고 밥도 안 줬다고 했다. 소리 없이 죽으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일찍 혼자 된 사람인데 아들밖에 몰랐다.

 

“저는 다 안답니다. 누군가 나를 해코지하려고 한다면 예감이 들어요. 하루는 시어머니가 웬일로 밥 먹고 나보고 어서 방에 들어가서 쉬라고 합니다. 이상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방문고리에다 삼베 끈을 칭칭 동여매 절대 열리지 않게 해놓았습니다. 자고 있는데 문이 덜컹거려요. 남자 그림자가 어른거리면서 방으로 들어오려고 합디다. 내가 문을 묶어두었으니 못 오잖아요. 어떻게든 들어오려고 발광을 하다가 닭이 울어서야 잠잠해졌습니다.

 

아침이 되어 문을 열어보니 눈이 수북이 쌓였는데 큰 발자국이 찍혀 있어요. 그런데 발자국이 한 방향이에요. 돌아갈 때도 이미 있는 발자국에 거꾸로 디디고 갔더라고요. 시어머니의 계략이었어요. 아침에 나보고 서방질을 했다고 쫓아낼 기세였죠. 그렇게 함정에 빠질 뻔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언제나 옷을 입은 채 신발을 신고 잤어요.”

 

“남편은 아무것도 몰랐나요?”

 

“몰랐죠. 남편이 바다에서 보낸 편지는 시집에서 나한테 주지 않고 없애버렸거든요. 그리고 자기네가 가짜 답장을 써 보냈죠. 내가 바람이 나서 딴 남자랑 놀아난다고. 그래서 남편이 배에서 내려 낫을 들고 사립짝에 들이닥친 적이 있었어요. 죽여버리겠다고, 낫을 휘두르는데.”

 

“그걸 어떻게 다 참으셨어요?”

 

내가 물었더니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동물들이 도와줍디다. 시댁에서 내가 작두질을 못한다고 어머님이 구박하면 이만한 지네가 나타나 그네 손가락을 꽉 깨물어요. 밭에서도 못 쓰는 호미를 던져주고 나보고 일하라 시키고 나면, 어느새 벌이 어머님 눈두덩을 쏘아 앞도 못 보게 하구요. 한번은 마당에 뱀이 나왔는데 저보고 죽이라는 걸 살려주었더니 꿈에 푸른 도포 입은 노인이 나타나 고맙다고 했어요.

 

그뿐인가요. 제비가 거미줄에 걸려 못 날고 퍼덕거리는 게 가여워 구해줬더니 다음날 문 앞에 찾아왔어요. 오 년 내내 그 제비가 내 처마에 와서 새벽마다 웁니다. 울음소리로 하루 일을 다 알았어요. 구슬프게 우는 날은 구박이 심해지는 날, 시끄럽게 우는 날은 불길한 날, 짧게 울고 가는 날은 좋은 일이 생기는 날, 하루하루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았습니다.”

 

아무도 시집살이하는 약한 자기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동물들이, 미물들이 도와주었다 했다.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다. 우리 세대는 잃어버린 무속의 감성 같은,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나뉘어지지 않고 같이 연결되어 있던 세계를 아직 느낄 수 있는 한 나이든 여자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슬프고 억울한 건 여전하다.

 

“저는 언제나 다섯 번 참고 아니면 끝을 냅니다. 시집에서 오 년을 살다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시장에서 막걸리를 팔고 전을 부쳤어요. 술장사를 한다고 시댁에서 또 난리입니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남편보고는 배에서 내리게 한 다음 꼼짝 말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내 책임이 되니까, 그 비난이 감당 안 되니까 내가 일을 하겠다고. 돈은 나 혼자 일해서 가족이 먹고 살 만큼 벌었어요.

 

그런데 밤에 집에 오면 딸애가 그럽니다. 동생 한번 보라고. 이불을 들춰보면 낮 동안 술 취한 남편한테 맞아서 아들애가 시커멓게 멍들었어요. 빤쓰를 벗기면 살이 떨어져 나옵니다. 무섭게 대들었어요. ‘이 새끼야, 이건 내 자식이야! 내 배로 낳은 내 자식한테 손대지 마!’ 그때 첫 번째로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시장에서 노점을 하고 나중에 작은 호프집을 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일이나 몫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밖에서 돈 버는 여자, 술 파는 여자,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고 자식 건사 못하는 여자. 그녀는 분노했다. 내 자식한테 손대지 말라고.

 

“시어머니가 늘 그랬지요. ‘니가 자식을 낳고 잘될 거 같으면 내가 열 손톱에 장을 지지고 눈알을 뽑고 하늘로 승천한다’고. 어디 한번 그렇게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런 말만 듣고 남편도 나를 그렇게 대하는 거예요.”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그녀가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했다.

 

“이쪽 뺨이 꺼멓죠? 남편한테 빗자루로 얻어맞아 색깔이 변한 거랍니다.”

 

창밖에 가로등 불빛이 스쳐가는 통에 긴 검은 그림자들이 갈퀴처럼 그녀의 얼굴을 할퀴고 갔다. 그 거무스름한 자국을 볼 수 있었다. 차라리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혼자 벌어 가족들 감당하는 건데 차라리 맞지 않고 혼자 벌어 살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왜 결혼 속에서 그렇게 착취당하고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남편은 돈이 부족해지자 나한테 ‘니 거시기를 팔아서 돈을 벌어와!’ 했죠. 그때 대들어서 맞았어요. 남편이라고 믿고 시집에서 살면서 그렇게 기다렸는데, 부인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요? 그렇지 않나요? 우리 아들이 그래요. 아빠한테 너무 맞아서 한 가지 좋았던 건 군대 가서 한 번도 안 맞았다는 거예요. 하도 눈치가 느니까 맞기 전에 알아채고 저 혼자 피하는 거죠. 그런 눈치가 보통 사람 이상이니까 남들은 맞아도 자기는 안 맞는 거죠.”

 

그녀는 그 말을 좀은 의기양양하게 그리고 좀은 주눅이 들어 했다. 그녀는 아이가 남편한테 맞을 때 한 번, 남편이 자기를 짓밟을 때 두 번을 참았다.

 

“지금이 세 번째예요. 제가 요즘 집에서 문을 잠그고 방 밖을 안 나가요. 사람들 만나고 싶지도 않고…. 옛날에 시댁에서 들었던 말이나 남편이 나한테 해댄 소리가 떠올라 무슨 소리를 들어도 다 나를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들려서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더 살 수 없어서 서울을 떠났던 거예요.”

 

그녀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 삶에서 버티는 힘이 소진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집을 떠났다가 그녀는 다시 남편과 살아보려 서울로 되돌아가고 있는 참이었다. 살기 위해 점집을 다녔고 그곳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넌 원래 명이 짧다, 혼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다 좋은 건 세상에 없어. 혼자가 아닌 게 니 명을 늘려주고 있으니까 함께 살아, 무조건.”

 

그녀는 서울로 다시 가고 있다. 사람이 바뀔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를 때리는 사람이 바뀔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얼마나 피나게 목숨을 태워가며 노력할 것인가.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자리에서 미련 없이 떠나기 위해서 그녀는 얼마나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바쳐야 하는 것인가.

 

나는 엄마뻘인 그녀가 안쓰럽다. 그런데 그녀는 나한테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고 했다.

 

“시간은 어떻게든 간답니다. 돈을 악착같이 모으든, 남에게 베풀고 살든 시간은 마찬가지로 흘러요. 사는 게 벼랑 같아도 주위를 살피면서 살아도 돼요. 그러면 그게 나에게 돌아와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남에게 베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여자, 자신은 그 무엇도 해코지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동물들이 미물들이 자신을 도와주었다고 믿는 여자. 그리고 자신이 터득한 것을 자기보다 어린 나에게 전달해주려고 애쓰는 여자다.

 

“…바뀔까요?”

나는 밑도 끝도 없이 문득 물었다. 그녀는 분명히 대답한다.

“바뀝니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고, 보리밭에도 길이 난답니다. 왜 안 바뀌겠어요?”

그녀는 웃고 있었다.

 

버스가 멈추고 불이 켜졌다. 그녀가 일어나며 내게 인사했다.

“잘 가세요.”

나도 인사했다.

“잘 가세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한 그녀는 성큼성큼 문 쪽으로 나갔다. 나는 의자에 좀더 앉아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창 밖에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가로등을 품고 있어서 가지가 희부옇게 빛나는 나무였다. 마른 잎이 바람에 떨어졌다. 남아 있는 두 번의 기회, 그것을 믿고 두려워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여자가 저기 걸어가고 있다. 내가 창문 밖에 있는 그녀를 손가락으로 짚었을 때,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 유리창에 찍힌 내 지문에서 벗어났고 곧 인파 속에 묻혀버렸다.

 

이야기는 우리 곁에 언제나 있다. 여자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소문으로 수다로 비밀 이야기로 신세타령으로 언제나 곁에 있다. 그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것이고, 이 세상이 자아낸 실타래이고, 결국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보아야 할지 틀 짓는 사회를 보여준다는 것은 간과된다.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놀랍도록 경이로운 또다른 목소리마저 그 이야기에 녹아 있다는 것도 간과된다. 여자가 왜 그 일을 하게 되었으며 그녀의 고통의 진원지는 어디이며 가족과 집은 어떻게 그녀의 시간과 공간을 구획 지었는지, 만들어내었는지 가려진다.

 

공식적인 일터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익숙하면서 여전히 낯선 이야기까지 아울러, 한 여성이 고군분투하며 몸뚱이로 밀고 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바로 보아야 한다. 그 속에서 비로소 생생히 떠오르는 이 사회의 자화상에 그 누가 짐짓 고개를 돌릴 수 있을까. 나는 저이를 모른다고 시치미 뗄 수 있을까. ▣ 안미선 

 

※ 함께 읽는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최현숙 지음. 이매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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