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화감성 충전

미야자키 하야오 '그다운 선택'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8. 12. 27. 12:51

할아버지가 된 거장이 들려주는 작은동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일흔을 바라보는 노감독이 내놓은 작품은 사람이 되고 싶은 물고기 ‘포뇨’와 다섯 살 소년 ‘소스케’의 이야기 <벼랑 위의 포뇨>다.
 
표면적으로는 ‘인어공주’식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줄거리 설명은 크게 의미가 없을 듯하다. 한쪽에서 스토리가 빈약하고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런 설정과 이야기의 디테일을 일부러 팽개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상상과 환상, 그리고 꿈의 세계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벼랑 위의 포뇨

감독의 전작들이 성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강한 영화들이었다면, <포뇨>는 아이들 관객을 가장 앞에 놓고 만들어진 동화이다. “다섯 살 어린이가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은 논리의 세계대신 뒤죽박죽 상상력으로 움직이는 괴상한 잔치 같은 꿈의 세계를 그려내었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 포뇨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물고기다. 극 중에서 포뇨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둘로 나뉜다. 포뇨를 ‘물고기’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인면어’라며 징그럽게 여기거나 재앙을 가져온다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포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꿈과 환상의 세계에 동참할 자격을 얻게 된다.
 
감독은 장황한 설교 대신,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할 상상의 세계를 통해 편견 없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눈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 모로 <이웃의 토토로>를 떠올리게 하는데 <토토로>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환상의 놀이터가 하늘과 숲이라는 공간이었다면, <포뇨>에서는 그 역할을 바다가 대신한다. ‘바다가 또 다른 주인공’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바다는 갖가지 모습으로 환상을 제공한다.
 
바다 속에 잠긴 마을 위로 눈처럼 빛나는 해파리 떼들과 멸종된 고생물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파도는 살아서 움직인다. 거대한 물고기들로 표현된 해일 위를 질주하는 포뇨의 모습에서는 여전히 죽지 않는 감독의 상상력을 느끼게 한다.
 
씩씩한 아이들과 강인한 여성들
 

그의 작품에는 강인하고 지혜로운 여성들이 등장한다

인터뷰에서도 ‘강인하고 지혜로운 여성들’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작품 속에서 독특한 여성캐릭터들을 그려내는 것으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이 특징은 <벼랑 위의 포뇨>에서도 이어진다.

 
소스케의 엄마 ‘리사’는 <이웃의 토토로>의 사츠키가 자라면 이렇게 되었을 것 같다 싶은 인물이다. (극 중에서 리사는 <토토로> 주제가의 한 구절을 흥얼거리기도 한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가 매력적인 리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해일이라도 뚫을’ 기개를 가졌다.
 
리사뿐 아니라 포뇨의 어머니 ‘그란만마레’, 소스케를 사랑해주는 양로원의 할머니들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와 용기의 소유자들로 그려진다.
 
코난과 <토토로>의 메이가 합쳐진듯한 물고기 소녀 포뇨는 시종일관 에너지로 흘러넘친다. 포뇨의 아버지는 사람이 되려는 포뇨를 억지로 힘으로 누르려다 실패한다. 포뇨와 소스케, 이 어린 주인공들은 “아이들은 혼자 내버려두어도 뭐든 해낸다”는 미야자키의 철학이 배어 나오는 인물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 ] 마녀는 열세살에 독립하는 거예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 ] 소녀의 도전에서 할머니의 용기로!

석양을 바라보는 거장의 뒷모습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중 가장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을 맡았다

<벼랑 위의 포뇨>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어린 아이들이 주인공 자리를 맡았다.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화려한 3D영상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거의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된 셀 애니메이션은 색연필로 그린 일러스트 느낌을 살린 배경과 함께 보는 이들에게 따뜻하고 순수한 느낌을 준다.
 
‘마스터피스’라고 칭해질 만한 <원령공주>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여러 번 은퇴 의사를 밝혀왔다. 차세대를 이어갈 인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명운을 걸고 진행한 <게드전기>의 작품적 실패로 지브리 스튜디오는 참담한 상황을 맞았다. 지브리의 찬란한 역사를 만들어왔던 미야자키의 고심이 어떠했을까.
 
또 다시 ‘미야자키 하야오 차기작’의 준비소식이 들리면서, 그가 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벼랑 위의 포뇨>를 보고 난 이후,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역시 ‘그다운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보고 있을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끝. 그 끝에서 그는 조용히 새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읊조리고 있다.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해 파생된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파괴되어 가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한 예술가다운 ‘나이듦’이다. 
[일다] 박희정 
일다의 다른 기사보기

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yoon-o.tistory.com/ BlogIcon YOON-O 깔끔하게 잘 정리된 글, 잘 봤습니다 ^^ 2008.12.27 15:59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ilverspoon.tistory.com BlogIcon 금드리댁 트랙백 보내주셔서 와 봤쎼요.. 저도 트랙백 날렸답니당..
    포뇨에 대한 글 잘 보았구요.. 즐건 주말 보내시길~^^
    2008.12.27 16:02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ddibo.com BlogIcon 띠보 트랙백 보고 왔어요.
    얼마전 인터넷 속 저항문화 분석 숙제를 언니네 대상으로 했었는데
    일다의 방문이 참 반갑네요
    2008.12.27 18:11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ildaro.com BlogIcon 일다 띠보님, 반가운 말씀이네요.
    종종 방문해주세요~
    2008.12.28 02:55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chomae.tistory.com BlogIcon 초매다루 트랙백 받고 왔습니다.
    저도 미야자기 하야오 감독의 전작을 기대했다가 조금은 실망했었는데, 정말 아이들을 위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왠지 영화를 보고 나면 나이가 들었다는 씁쓸한 생각도 들고 더 이상 순수하지 못한 내가 안타까웠습니다.
    2008.12.28 08:30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log.daum.net/song4him BlogIcon 짧은이야기 글 잘 읽었습니다. 꼭 모든 작품이 걸작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겠죠. 다섯 살 눈높이에 맞추려고 의도했다고 모든 애니메이터가 다섯 살에게 재미있고 '먹힐'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미야자키는 그런 점에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___^ 2008.12.29 10:39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blogs.ildaro.com BlogIcon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다섯 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다섯 살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관객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감탄스럽지요.^^ 2009.03.09 16:02 신고
  • 프로필사진 q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고 아이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거 쉽지 않죠.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캐릭터는 싱그럽고, 맘에 든다고 할밖에 다른 말이.....
    2009.02.04 02:51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integrals.tistory.com/36 BlogIcon 만솜 저도 트랙백 받고 왔어요 ^^
    정말 글을 잘 쓰시는 거 같아요.
    비슷한 생각을 하고도 전 잘 풀어내지 못하는거 같네요~
    무튼 포뇨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순수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2009.02.05 20:00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nowfire.tistory.com/127 BlogIcon 눈꽃 저도 트랙백 받고 왔습니다^^
    전 그저 주저리주저리 제 느낌만 풀어낼 뿐인데 글을 잘 쓰시네요.
    포뇨 보면서 좋은 느낌을 공유한 사람으로서 반갑네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009.03.09 15:17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blogs.ildaro.com BlogIcon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눈꽃님 방문 반갑습니다. 글을 쓴 박희정 기자님이 애니메이션 분야에 경력이 있는 분이라 더욱 섬세하게, 애정을 가지고 평을 쓰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9.03.09 16:0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youlovesj7.tistory.com/ BlogIcon minari_v 트랙백받고 왔어요=ㅁ=)/
    전 포뇨송을 너무 좋아해서 >ㅁ< ㅎㅎ
    오늘도 좋은하루보내시고, 멋진글 감사합니다 (*_ _)
    2009.03.10 08:20
  • 프로필사진 플레이어 영화관에 가서 보면서 느꼈던 생각들이 대부분 담겨있네요^^
    특히, 단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라는 것만 알고 본지라
    보고나서 미야자키 감독이 점점 어린이들을 타겟으로 하나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목표하고 (제 기준으로는) 목표대로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역시..' 라는 생각이 드네요.
    트랙백 덕분에 좋은 글 보고 갑니다~^^
    2009.03.11 11:16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dajungspace.com BlogIcon dajung 지브리 -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크게 반전,생태, 평화 메시지가 어우러진 작품들(원령공주,나우시카,라퓨타,하울.....), 그리고 상대적으로 주 관객 연령대를 낮추면서 아이들 스스로의 자아에 자신감을 갖게 되는 이야기(키키,포뇨 등) 이렇게 두 축으로 나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둘 다 좋아요^^ 트랙백 걸려서 와보고 갑니다 :) 하지만 제 개인의 베스트는 결국 하야오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고 긍정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네요^^:; 2009.03.13 13:46
  • 프로필사진 우루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음악이 무척 아름답죠..
    소피도 멋지고.^^
    2009.03.13 15:09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