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저 위엔 아무것도 없어!
<모퉁이에서 책읽기>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경쟁을 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 Trina Paulus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 
 

처음 이 책을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친구 집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노란 표지에 나비가 그려진 그림우화책을 보았다. 참 신기한 책이었다. 글자가 빽빽하지 않고 그림도 독특한데다 이전에 보아온 동화책과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때 나는 회색 치마에 검은 재킷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침 일곱시에 집을 나서서 밤 열두시에 학교에서 돌아올 때였다. 책의 메시지는 색달랐다. ‘경쟁을 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야간자율학습 때 모르는 걸 옆 친구에게 물어보면 지켜보던 선생님이 득달같이 달려와선, 남이 공부할 시간을 뺏는 놈이라고 야단을 쳤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려다가, 공부하는 짝만 보면 안절부절 못하며 불편해졌다. 그런 일상이었다. 한 친구가 문득 한 말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나중에 슬플 거 같아. 서로 경쟁하고 미워하고 이렇게 지내다가, 인생은 사실 긴데 나중에 지금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슬플 거 같아.”

 

구름 위까지 뚫고 올라가 있는 애벌레들, 꿈틀거리는 탑, 서로 조금이라고 우위에 서려고 뭉개고 짓밟는 아우성의 기둥들, 그 그림이 그 애의 말처럼 ‘슬퍼’ 보였다. 이 책을 읽은 것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이야기 같았고,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이 지독히 쓸쓸하고 무의미하니, 지금 돌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은밀히 귓속말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십대 때 내 일기장에는 글러브를 끼고 친구들을 때려눕히는 그림이 있었다. 나보다 성적을 더 잘 받은 아이들이었다. 부모님은 내게 말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일등이 될 수 있다. 지금 만족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봐라.” 나는 오직 일등을 해서 부모님 칭찬을 받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그러나 끝내 그 친구들을 앞서지는 못했다. 그 친구들은 공부를 아주 잘했고 개중엔 대도시 고등학교에 입학하러 떠나는 친구도 있었다.

 

성적이 더 떨어지자 아버지는 “이런 성적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냐!”고 방문 밖으로 통지표를 던져 버렸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도 일등이 되지 못했다는 열패감을 느꼈다.

 

도시로 고등학교 학업을 하러 떠난 친구가 했다는 말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과학기술고등학교에는 공부를 아주아주 잘하는 학생들이 전국에서 모여서, 안간힘을 써서 공부해도 겨우겨우 등수를 유지하는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버티지 못하는 친구들은, 일등을 하다가 갑자기 등수에서 밀린 친구들은, ‘자살’한다고 했다. 사라지는 친구들의 빈 자리가 무섭다고 했다. “또 죽었어?” 그렇게 주변에서 말한다고 했다.

 

꿈틀거리는 벌레 탑 속의 풍경

 

내가 다시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글 그림)을 펴든 것은 이십 년이 지나서였다. 아홉 살 된 아이가 다니는 작은 도서관에 따라갔다가 그 노란 그림책을 다시 만났다. 구석에 앉아 책장을 넘기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울었다.

 

애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숨도 쉬지 못하고 서로의 발로 서로의 머리를 밟으며 뭉그적대다가, 밀려나 떨어져 죽는 애벌레의 비명에도 아랑곳없이 그렇게 있다가, 자리를 지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침묵하고 있다가 터지는 한마디. “저 위에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자 곁에서 일침한다. “조용히 해! 우린 위에 있는 거라고. 저 아래에 있는 애벌레들이 얼마나 여기에 올라오고 싶어하는데, 우린 그래도 그들보다 위에 있는 거라구.”

 

나는 그 컴컴하게 채색된 꿈틀거리는 벌레 탑 속의 풍경이, 은밀한 대화가 고등학생 때보다 더 무서웠고 실감이 났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숨차게 달려왔는지.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이 모양으로 있는지, 슬픈 줄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왜 이렇게 줄줄 눈물을 흘리는지. 뭐 다르게 살 용기는 있는 것인지.

 

경쟁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았다. 취직도 당연히 경쟁이고, 집을 구하는 것도 경쟁이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경쟁을 했다. 이웃을 사귈 때도 경쟁했고, 물건을 살 때도 경쟁했다. 경쟁해서 더 가진 사람이 미웠고, 덜 가진 사람은 만만해서 또 미웠다.

 

학교에서 안 가르쳐줘도 이젠 알았다.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면 돌아오는 것은 배제이거나 경멸이라는 것을. 똑같은 척 하고 사는 게 넌덜머리가 날 법도 했지만 산다는 건 똑같이 보이기 위해 기를 쓰고 입증하는 것이 되었다. 다른 인간은, 금 밖의 인간이 되고, 어쩌면 국민이 아니고, 비국민이 되면 그 사람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공포가 우리에게 있었다.

 

편견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았다. 안전한 곳은 금 안이었지만, 금 밖은 낭떠러지였다. 많은 말을 하지만 서로 쉬쉬하고 있고, 아무 불평이나 터뜨리는 양 자유로워 보이지만 어떤 비판은 절대 금기어였다.

 

'난 그 시스템에서 특A급 볼트다'

 

그즈음 친구의 메일을 받았다. 엘리트라는 부추김 속에 어른들이 정한 학교를 다닌 친구, 내가 십대 때 이길 수 없는 경쟁자로 여기고 속으로 몹시 질시했던 그 친구. 그 친구는 학창 시절에 변변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나를 떠올리고 오랜만에 메일을 보냈다.

 

그 친구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이미지가 환상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그 친구 또한 공부를 그지없이 잘 하던 친구라고 나 혼자 간직한 그의 이미지가 환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우린 서로 아무것도 사실 모르니까. 서로가 가지 못한 길을 상대가 가는 양하여 어쩐지 부러울 뿐이었으니까. 메일에는 이런 글귀가 마지막에 있었다.

 

“선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하다. 단 한 번도 믿은 적 없는 언론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이제 또 우리를 어떤 식으로 몰아갈 것이냐? 눈 부릅뜨고 지켜보지만, 그것밖에는 할 것이 없구나. 우리나라 학교 시스템은 1% 정도의 지배 계층이 이 사회를 굴리기 위하여 써먹기 좋은 일벌레들, 말 잘 듣는 볼트와 너트를 길러내는 곳이다. 난 그 시스템에서 특A급 볼트다. ……잘 지내자. 오늘이 내가 살아갈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고, 오늘이 내가 살아갈 날 중 가장 좋은 날이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어쩌면 그때에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곁에 있던 동무들이 줄줄이 목숨을 끊는 속에서 갈 곳 없이, 만날 사람 없이 책만 파고들며 그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나는 옥상에 누워, 떨어질까 말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다시 책을 파고들며 끝내 떨어지지 못한 나를 부끄럽게 여겼다.

 

우린 서로 다른 길을 가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부속품이 아닌 뭔가 대단한 꿈을 상대가 이루었을 거라고 상상했지만, 우린 둘 다 작은 부속품이었다. ‘특A급 볼트’라는 어구를 읽으며, 그 우스꽝스러우면서 쓰디쓴 자조에 나는 다시 울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지 않고, 성적만으로 다 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고 단정 지어서 미안하다고.

 

우리가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스스로에게 확인할 수 있을까, 확인받을 수 있을까. 깜깜한 어둠이 날개를 잉태하고 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네 눈빛에 내가 끌려서 벌레가 사람이 되고 사람이 서로에게 날개가 되어 또다시 그러한 믿음의 씨앗을 무성한 잎사귀에 심어놓으려면, 그렇게 기적처럼 우리가 만나려면 난 네 손을 잡고 지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 안미선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