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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인권헌장’은 선포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혐오와 인권을 맞바꿀 작정인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에서 의결한 ‘서울시민 인권헌장’(이하 인권헌장)을 서울시가 거부하고 공포하지 않자, 지난 6일부터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지지단체들이 서울 시청 로비에서 항의 농성을 시작했다. 

 

▲  12월 8일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지지단체들이 서울 시청 로비에서 항의 농성을 하고 있다.   © 일다 
  

농성 3일차. 주말을 맨땅에서 보내고 월요일(8일) 아침을 맞은 농성단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출근하는 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며, 시장을 만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전 9시가 넘어서도 박 시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평소 출근하던 문이 아닌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근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전 11시경 서울시는 경찰을 동원해 농성장 주위에 붙어있는 대자보를 철거하려다가 농성단의 거센 항의에 부딪치기도 했다.

 

농성단은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한편,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예정대로 인권헌장을 선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 측은 일정이 바빠 17일이나 되어야 면담을 할 수 있겠다며, 농성단에게 퇴거 명령만 전할 뿐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의 뜻을 반영해 인권헌장을 만들겠다’

 

인권헌장은 다름 아닌 서울시의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6월~7월 인권헌장을 제정할 시민 대표를 모집했다. 여기에 응모한 1천570명의 시민 중에서 자치구, 성별과 연령을 고려해 무작위 추첨으로 150명의 시민위원이 선발되었다. 여기에 전문가 30명이 추가되었다. 이렇게 지난 8월, 총 180명으로 구성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가 꾸려졌다.

 

시민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서울 시민들의 뜻을 적극 반영해 인권헌장을 제정하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로 읽혔다. 그리고 시민위원들은 서울을 인권친화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에 임했다.

 

지난 11월 28일에 열린 6차 회의에서는 인권헌장 최종안이 논의되었다. 50개 조에 달하는 최종안 중 45개 조항은 참석자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나머지 5개 조항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것이냐’가 쟁점이 되었다.

 

찬반 논쟁이 거듭되자 시민위원들은 의결 방식을 정했다. 표결로 정할 것인지, 만장일치 합의로 할 것인지, 합의되지 않은 조항을 제외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표결을 했다. 표결에 의해 결정하자는 안이 우세했다. 최종에는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차별금지 조항을 명시하는 안이 압도적인 표차(60:17)로 통과되었다. 

 

▲   11월 28일 저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촛불문화제.   ©일다 
  

인권헌장 만들었더니 거부? 들러리 세운 거였나

 

그러나 서울시는 이틀 후 ‘합의가 아닌 투표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어렵다’며 인권헌장을 발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시민위원들이 여러 차례 논의를 통해 만든 인권헌장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회의 장소를 떠났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는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시민위원회 측은 처음 구성될 당시 180명으로 출발했지만 자진사퇴 등으로 164명이 재적 인원이며,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인원은 110명이었고, 위원장과 투표 진행 위원 등을 제외하면 77인의 투표는 의결 정족수를 채우는 유효한 결과라고 반박하였다.

 

오히려 서울시가 그전까지 의결방식에 대해 아무 얘기도 없다가, 6차 회의가 되어서야 ‘만장일치가 아니면 인권헌장을 선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시할 의지가 애초에 없었던 것이 아니냐고 항의하고 있다.

 

당시 시민위원들은 이를 두고 서울시 입장을 따를 것인지, 자체 의사결정 방법으로 정할 것인지도 표결했고, 결국 ‘표결’로 인권헌장을 제정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절차를 문제 삼아 인권헌장 제정을 물거품으로 돌려버렸지만, 이러한 태도는 애초에 시민위원들을 모집해 인권헌장을 제정하겠다는 취지에서 한참 어긋난다. 시민위원들은 오랜 기간 논의 끝에 민주적으로 절차를 밟아 인권헌장을 의결했는데, 서울시에서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시민위원회를 ‘들러리’로 취급한 것이나 다름 없다.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혐오와 인권을 맞바꿀 수는 없다

 

서울시가 이렇게 급작스런 태도를 보인 것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시민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위축된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11월 20일 인권헌장 공청회에 몰려든 사람들이 보여준 폭력성은 도를 넘었다.

 

회의장에 난입해 마이크를 빼앗고 ‘동성애 반대, 에이즈 싫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사회자의 멱살을 잡고 밀치기도 했다. 동성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을 둘러싸고 위협해서 공청회 장소 바깥으로 쫓아내기까지 했다. “하느님께 영광을, 할렐루야”를 광적으로 외치며 공식 회의석상을 망가뜨리고 있는데도, 회의장 바깥에 있는 경찰들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   11월 20일 인권헌장 공청회에 몰려든 사람들이 보여준 폭력성은 도를 넘었다.  © 케이  

 

당일 공청회 장소에 있었던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케이(27세)씨는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쟤 카메라 막아!’하면서 사람들이 다가오더니 나를 밀쳐서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진 나를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카메라를 찍었다. 밀폐된 강당 안이어서 위협감이 더 컸다. 이러다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말했다.

 

시민위원회 측은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기획한 서울시가,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공청회 자리가 난장판이 되었음에도 방치한 것에 대해서 항의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길

 

박원순 시장은 “사회갈등이 커지면 (인권헌장 제정을)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금일(8일) 열린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인권헌장이 시민위원회에 의해 민주적으로 의결되고 확정되었음을 인정하고, 조속히 선포할 것’을 박 시장에게 권고했다. 또한 시민사회 각계각층에서 서울시를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으며, 농성장에는 지지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서울시청 로비에서 인권헌장을 선포하라고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성소수자의 인권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고 수개월 간 토론과 협의를 통해 다져온 시민위원들의 뜻을 따르라는 절박하고도 엄숙한 경고이다.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선포되어야 한다. ▣ 나랑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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