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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잡은 백수, 세컨드 잡은 목수”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목공을 가르치고 작업하며 

 

 

※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데 함께할 필자를 찾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간올 씨는 무슨 일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퍼스트 잡은 백수고, 세컨드 잡은 목수에요.”

 

사람들은 직업에 무슨 퍼스트, 세컨드가 있냐며 깔깔거리기 일쑤. 그리고 이내 진지하게 목수, 목수라고요? 와, 멋있다.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멋있긴요. 자기가 안 해본 일은 다 멋있지 뭐.’ 라고 생각하지만, 허허롭게 웃으며 “맞아요. 납품도 하고, 강의도 하고…” 하면서 약을 판다. 정확히 말하면 모두 사실이기 때문에 약을 파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목공이라는 이른바 ‘마초 아저씨’들이 익히는 기술에 대한 환상이나 선망, 그리고 기술자에 대한 낭만들이 더해져 만든 ‘목수’의 이미지. 하지만 이 일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지도, 엄청난 공학적 기술을 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두뇌 자체를 굴리는 데에 있어서도, 아주 자극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목공은 무엇을 만드냐, 왜 만드냐,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다양하고 넓은 영역에 적용된다. 일용직 아저씨들의 노가다판, 야리끼리(할당 양을 정해진 시간까지 맞춰 작업하는 것)에서부터, 파워블로거들의 DIY가구 만들기, 강남의 고급주택에 놓여질 수공예 작품까지 망라한다. 어떤 목공을 하느냐에 따라 생활도, 급여도, 라이프 스타일도 매우 달라진다.

 

오랜 우울증과 무기력, 내 목공 일의 시작

 

내가 일하게 된 공방은 모 센터의 소속으로 있는 목공방인데, 공방장과 연이 닿아 조모임 삼아 참여했던 워크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계속 얹혀가며 가구 작업을 하는 시기를 지나, 아예 둥지를 틀고 일을 배우기까지 이르렀다.

 

처음 ‘진짜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꽤 우울한 인간이었다.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나누지 않고 그저 도제처럼 일만 했다.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인간관계는 어떠한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 따위 일절 없었다.

 

그 해 나는 생활 전반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자신에 대한 모든 애착을 버렸고, 집은 밀린 빨래와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로 엉망이 되었고, 어제 입은 옷 그대로 학교에 가서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외진 건물 6층에서 머리를 감고 손드라이어로 말린 후 수업을 듣는 등 어딘가 망가진 생활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은 없어 보였다. 반쯤 포기한 채로 학교도, 집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부유하며 지냈다.
 

▲  빠레트(pallet: 목재, 철제의 대형화물 운반대)   © 간올 
 

공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곳에는 나이를 쉬이 가늠하기 어려운,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목수로 환승(?)한 이방 수염의 공방장과, 막 스무 살이 된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카페를 운영하다 목공을 배운 젊은 여자 스텝이 있었다. 각기 다른 나이와 성별을 가진 우리는 한 팀이 되었다. 학교라는 안온한 공간에서 나이와 성별, 정치적 지향이 유사한 공동체 안에 주로 있었던 나에게, 이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사용하는 언어, 제스추어, 철학, 세계관 등이 아주 달랐으며,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그러니까 묵묵히 일하는 법을 배웠다.

 

우선은 빠레트(pallet: 목재, 철제의 대형화물 운반대) 자재 부속을 엮어 나르고, 빠레트를 사냥해오는 허드렛일을 맡았다. ‘일’에 대한 나의 절실함은 돈을 벌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는 자체’에서 우러났기 때문에 이 막노동은 아주 적당했다. 몸을 쓰는 일에 시간은 조금의 지체 없이 흘러갔다.

 

우리는 늘 같은 시간대에 출근하여 커피타임을 가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일을 시작했다. 정오에 영등포의 칼국수 집에 가서 칼국수 한 그릇씩 먹고 느긋하게 겨울의 볕을 쬐며 걸어왔다. 돌아와 또 커피를 내려 마시며 티타임을 가졌고, 4시에 간식을 먹었고, 7시가 되면 “목수는 일곱 시에 시마이(마감을 일컫는 외래어. ‘마감’보다 훨씬 카타르시스적인 리듬감을 준다)하지!” 하고 일을 끝냈다.

 

착실히 정해진 작업 단계는 무기력에 헤매 시간 감각을 상실한 내게 생활에 복귀하는데 좋은 발판이었다. 충실하게 자재 수집, 도안, 설계, 재단, 조립, 마감의 단계를 배워나갔다. 각각의 단계에는 그에 해당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처음으로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경험은 아주 즐거웠다.

 

기술을 다루는 영역은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한 번 습득하면 어지간해선 잃지 않는다. 습득이라는 것 자체가 몸에 새겨지는 일이기에. 육체를 통해 경험과 감각을 쌓아가는 것은 단조로운 시각 생활(활자, 컴퓨터 등)으로만 생활을 채워왔던 내게 다른 방식으로 축적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이런 것들이 비단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충분히 가능하며 계속해나가도 좋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여러 가구를 만들면서 그것들로는 방을 채워갔다. 이전까지는 나의 방에서 ‘내가 이 공간을 통제하고 있다’, ‘공간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이 아니라 이 원룸에 매여 꼼짝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지치곤 했는데, 자신이 만든 것들로 채우고 배치하는 디자인을 배우며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다. 물리적인 변화, 동선의 재배치를 통해서 자신의 공간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나간다는 측면에서, 오랜 우울증으로 자존감과 능력치가 저하된 상태의 나에게 목공은 맡은 일, 성과, 성취, 명확한 존재감을 주는 일이었다. 어느 큰 납품을 끝내고 우리 팀은 훌쩍 제주도로 떠났다. “큰 일을 끝내면 여행을 다녀와야지.” 하고 웃는 사람들. 긴장과 몰입, 완화와 휴식이 명확한 작업이었다.

 

마초들의 세계… ‘너 목수 맞니?’
 

▲  “간올은 목수야?” 이 문장에는 뼈가 있었다.  © 간올 
 

목공, 수작업에 대한 낭만과 환상! 사실, 목공방에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지 않고 대충 조모임이라든지 워크숍 같은 것을 통해 목공을 입문했을 때에는 나도 그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수많은 문과대, 사회과학대 친구들 안에서 넘쳐나는 말들 속에서 유영하며 보내왔다. 우리가 가진 공통점들 중 하나는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스스로 굉장히 무용하다는 죄책감이었다. 아무런 기술도, 쓸모도, 재주도 없고 할 줄 아는 것은 (잘 쓰지 못하는) 글과 말뿐이었다.

 

간혹 기타를 칠 줄 안다든지, 그림을 잘 그린다든지, 컴퓨터에 능하다든지 하는 친구들은 은연중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목공에도 그런 선망의 눈길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서, 특히 기계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낭만들이 정말 부질없는, 일종의 ‘먹물병’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일이 무르익자 슬슬 목수 아저씨들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간올은 목수야~?” 이 문장에는 굉장한 뼈가 있었다. 혹은 “졸업하면 뭐 할거야?” 하는 질문.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목수 할 거에요’, ‘당연히 목공방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라고 하기엔, 직업으로 ‘목수’가 위해 충분한 고등 기술을 갖추지 못했고, 체력적으로도 열세였으며, 여하간 딸리는 게 많았으니까 전체적으로 부적격이었다. 이런 짓궂은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예쁜 가구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거나 목공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혔다기보다는, 여기에서의 일은 좀더 종합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팀워크이면서(노사 관계라기 보다는) 생활의 일부 측면(모험적인)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단순히 제작-조립 등 목공을 배우고 그 일을 했다기보다는 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작업하는 법을 배웠다.

 

이들은 모두 풀타임 목공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놀며 쉬며 일했다. 9-6으로 매 시간 같은 자세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더우면 쉬고, 추우면 쉬고, 간식을 먹고, 티타임을 꼬박꼬박 갖고, 오후 6시에 시마이하고 맥주 한잔하고, 때로는 오전에 일 끝내고 2시에 수영장 가서 수영하고 오거나, 오후에만 일을 하는 식으로 시간을 굉장히 유동적으로 보낸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몹시 효율적인 작업을 돕는다는 신기함이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다들 컴퓨터 앞에서 페이퍼워크(서류 작업)를 하고 있을 시간에, 한강에 나가서 겨울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온다든지, 영등포 철물 시장에 나갔다가 설렁탕을 먹고 온다든지 하는, 작업자와 작업 환경에 맞춘 유연한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탐험. 그리고 영등포 시장
 

▲  영등포 골목을 넘나들며 목공용품을 사오는 일은 아주 즐거웠다.  © 간올 
 

때때로 우리는 시마이하고, 술을 먹기 적합한 거점을 탐색하며 영등포 곳곳을 순회했다. 영등포라는 지역은 아주 특색이 넘치는 곳이다. 시장 구역마다 장갑, 천막 파는 데, 베어링, 용수철 파는 곳. 피스못, 철물 전문점, 안전장비만 구비한 곳, 톱, 타카를 파는 곳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을 자전거로 요리조리 골목을 넘나들면서 목공용품들을 사오는 일은 아주 즐거웠다.

 

처음에는 아저씨들이 ‘아가씨들이 왔다’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무시당한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지만, 무시로 드나들다 보니 이제는 낯이 익어서 먼저 주스를 내주면서 “오늘은 그래 뭘 사러 왔어?” “휴일에도 일하네, 사장님이 휴가 안 줘?” 하고 농을 걸기도 한다. 그러면 나도 뻔뻔하게 “그러길래 말여요, 돈 더 받아야 쓰겄어” 하고 웃는다.

 

영등포 아저씨들이 공구의 이름들을 숱하게 가르쳐주었다. ‘이런 거 살 때는 뭐라고 하면 되요?’ 하고 물으면 ‘아, 이런 건 사라기리(이중 드릴 날)라고 하면 되야, 철에다 쓸 건지 나무에다 쓸 건지 먼저 말하고…’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씩 습득해나간 명칭들, 명세표 쓰는 법, 헤아릴 때 쓰는 단위들은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비록 그 안에 영등포의 마초 아저씨들과 스며들듯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그 경험들은 내게 넘어갈 수 없는 벽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장르처럼 다가왔다.

 

영등포에 M브랜드 판매처에는 유독 왕마초 아저씨가 있었는데, 왜소한 체격의 공방장도 한 수 아래로 대하고, 나처럼 여자가 가면 거의 말도 섞지 않고 불퉁한 표정으로 무시했다. 매번 그 집에 다녀올 적마다 함께 간 스텝 친구는 거의 성을 내면서 아저씨를 욕했다. 이 아저씨에게는 우리가 1년을 영등포 시장을 오가면서 익힌 스킬(우리는 초보가 아니다, 알 건 안다, 라는 태도)이 하나도 먹히지 않았는데, 그것도 웃긴 일이었다.

 

분명 나의 외양으로는 영등포 시장의 마초 아저씨들의 장벽을 넘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의복은 거지 옷으로, 머리는 산발로,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페인트를 슥슥 닦은 차림새에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보러 나오는 내 모습에 이 아저씨들도 상호 적응했다. 물론, 우리는 차림새만이 아니라 말씨도, 제스추어도 공유했다. 영등포에서 생활하는 나의 자세, 의복 등은 분명히 마초 아저씨들의 그것과 유사하고 또 모방한 지점도 있었지만, 분명히 달랐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내가 한 일들은 정식 ‘목수’라기보다는 목공 강사에 가까웠다. 혹은 목공을 매개로 청소년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든지, 대안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목공 수업을 보조했고, 직업 체험을 강의했다. 이것은 목공 제작에만 몰두한 일이 아닌, 목공이라는 것을 커리큘럼화하여 참여자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수업을 꾸리고 진행하고 결과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초기에는 ‘왜 아저씨들이 나를 목수라고 안 부르지, 나도 체력 좋은데’ 하며 시무룩했지만 매주 수십 명의 다종다양한 청소년들을 대하면서, 그들 앞에서 목공에 대한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며 두 명의 젊은 여자목수들이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시범을 보였을 때 달라지는 눈빛들을 보면서, 목공의 다양한 영역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해야 하는 일들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단순히 나에게 필요한 가구를 만든다, 기술을 쌓는다, 자기 손으로 만든다는 낭만성만으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일 또한 마찬가지로 개인의 소유를 위한 작업이 아니라 사회적 파장, 혹은 다른 세대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책임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었다. 나의 능력은 아저씨들 못지않은 목수가 되는 것으로 증명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기록벽과 관찰벽을 유용하게 쓰는 방식으로 뻗어나가는 것임을 이해해야 했다.

 

갈등. 말하기. 장기적인 관계 맺기
 

▲   목공의 세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내게 준 것들.  © 간올 
 

물론 목수 아저씨들과 갈등이 하나도 없을 수는 없었다. 내가 되고 싶은 목수상과 목공 영역에서 ‘잘’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차치하고서라도. 특히 임금에 관해서는 서로 입장이 달랐다. 아니, 주고자(그리고 받고자) 하는 것이 달랐다는 설명이 옳다.

 

나는 ‘정해진 시간-정해진 임금’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고, 이 아저씨들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실험적으로, 혹은 놀이의 일환으로 변주해가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에 관해 마찰이 없을 수가 없었다.

 

온전히 대화로 풀 수 없는 갈등이었다. 생각하는 기본적 세계관이 상당히 달랐고, 돈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도 매우 달랐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라는 제안에 짜증이 나기 일쑤, 절단기로 천 번씩 자르면서 보냈다. 골똘한 작업들이 지나면 하루를 충분히 마쳤고,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되었겠다’ 라고 말을 고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자전거를 탔고. 가끔 배가 고팠고.

 

나중에는 ‘그래, 내가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하냐’ 하면서 불만에 가득 찬 상태로 자재를 세 개씩 내리 자르다 각도 절단기를 고장 냈을 때도, 시멘트 열두 포대를 치대면서 ‘미친, 뭐하고 있는 거냐’ 하면서 일부러 얼굴도 쳐다보기 싫은 양 묵묵히 일만 했을 때도, 말을 고르며 가졌던 그 묵묵함. 그 묵묵함이 임계점을 넘어서야 비로소 대화를 하긴 했다.

 

불만을 끝끝내 미루고 있었다면 관계는 파탄이 났을 것이다. 내가 불만을 표출하게 된 것은 ‘그래, 이 관계가 어떻게 끝나든 상관 없다, 개의치 않겠다’ 라고 마음이 끝까지 발산한 결과였지만, 일을 계속하다 보니 그 기분은 누그러졌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했던 자신의 방식이 조금 우스웠다.

 

눈치를 보면서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가? 하지만 어떤 부당함에 대해 충분히 고려해보고 함께 토론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무지함, 자신의 처지나 위치에 대해 눈치가 없음, 이런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말을 했어야 하니까.

 

그 이후로 큰 작업을 하면서 나는 짓궂은 농담이 늘었다. 아저씨들의 농담의 세계에서 나는 이례적인 존재였다. 성별도 다르고, 성적 지향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니까.

 

뭐랄까. 결국에는 나는 그 안에서 권력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한다. 다만 여기에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이 마초 아저씨들도 아니고, 목공 기술을 최고로 갖는 것도 아니고, 누가 더 많이 아는가에 대한 것도 아니요(아저씨들 다 학벌 좋다), 결국엔 얼마나 제대로 모험하며 살고 있는가가 평가의 기준으로 점해진다.

 

산길을 갈 때 옆길로 새는 치기를 부리는 것, 노숙을 하는 것, 수영을 배우는 것, 도움을 구하거나 호의를 받아들일 때 당황하지 말 것, 호의도 화도 뻔뻔하게 받아들이고 표출할 것, 그러나 실수를 한다든가 선을 넘었을 때는 물러나지 않고 화를 낼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을 시도해보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옆에 둔다는 것도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목공의 세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 여기서의 일과 관계들은 나를 뻔뻔하고 저속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결과적으로 매우 기쁘다.  간올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일다 트위터 twitter.com/ildaro   영문 사이트 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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