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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성(性)스러운 백수생활을 만끽하며 

※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일주일에 한 번, 마우스를 잡은 손에 긴장감이 감돈다. 핸드폰 바탕화면에 ‘바로가기’를 해놓고 수시로 들어가는 게시판을 이날만큼은 침을 꼴깍 삼키며 클릭한다. 저런, 어제는 보지 못했던 새 글이 있다. 올린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작성자 ID를 눌러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해당 글을 보물찾기하듯 자음 모음 행간의 틈까지 찬찬히 뜯어본다.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그래도 서둘러서는 안 된다. 눈을 감는다. 마치 내가 경험한 일인 듯 작성자의 감정을 내 안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그리곤 컴퓨터 화면에 깜박거리는 커서에 대고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답장을 써 내려간다. 섣부른 충고나 조언은 안 된다. 선택 가능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함께 찾는 것, 거기까지가 내 역할이다.

 

한참을 써 내려간 글을 여러 번 읽고 또 읽다가 마지막으로 올리기 전 내 글이 작성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이것이 작성자를 위하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검토하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그리고 ‘작성’ 버튼을 클릭! 이 일을 어언 3년째 하고 있다.

 

젊은 여자가 무슨 상담을 한다고?

 

나는 청소년 기관에서 청소년과 청소년을 양육하고 지도하는 성인을 대상으로 사이버 상담을 하고 있다. 청소년 상담을 한다고 나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성적이나 진로 문제로 고민하거나 학교폭력, 가출 등 흔히 ‘문제 청소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을 만날 거라 상상하며 힘들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내담자와 주로 나누는 이야기는 “가슴이 너무 작아요”, “자위하면 키 안 크나요?” “질 외 사정을 했는데 임신 가능성 있나요?” “친구 오빠가 나를 만졌어요”, “아이가 음란물을 본 것 같아요”, “남자인데 남자가 좋아요”, “애인이 계속 성관계를 요구해요” 같은 것들이다.

 

그렇다. 나는 ‘성(性)상담사’다. 이제 막 20대 중반이 된 젊은 여자가 성상담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주변 사람들은 내가 상담하는 주제가 성(性)이라고 말하면 어색한 듯 후다닥 화제를 돌리거나, 자신을 상담해 달라며 장난스럽게 조르는 것이 흔한 반응이다.

 

성교육이라고는 학창 시절 칠판에 그려진 난자와 정자의 운명적 만남에 대해 듣거나, 학급별로 성폭력 상황과 인공임신중절수술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비디오를 봤던 것이 전부인 나 역시 이런 반응이 마냥 멋쩍거나 불쾌하지만은 않다.
 

            ▲  자원상담원으로 활동하다가 모 기관 상담팀에 입사해, 정규직으로 일하던 때의 나의 책상.  © 완두 

 

나의 역할은, 기관 홈페이지 내 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고 내담자가 준비되지 않는 임신이나 성폭력, 성병 등과 같은 성적인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성적인 경험의 차이에 있어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서로에게 유익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나아가 이후 내담자가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긍정적인 실천을 공유하면서, 우리 사회가 보다 주체적이고, 안전하고, 평등한 성문화를 누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내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모임

 

20대에서 50대까지 여러 세대가 모인 상담원들은 상담뿐만 아니라 한 달에 두 번 정기 모임을 갖는다. 모임 안에서는 성폭력, 성매매, 성 지식, 성관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사춘기 등의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상담원은 성에 대해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 감정과 마주하면서 관점과 해석의 틀을 넓혀간다.

 

이렇게 상담자가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성찰하는 작업은 상담 이론과 기법을 아는 것보다 우선시된다. 모두가 그렇듯 상담원 역시 성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통념을 내면화하고 있어, 이를 내담자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 모임 안에서만큼은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종교, 직업, 경험의 차이가 상담원간 친분을 쌓고 교류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내가 우리 모임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상담을 할 때는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일회 상담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 답변이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심지어 내담자가 나의 글을 읽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내담자가 지나친 성적 묘사를 하거나 사진을 첨부하는 경우도 있어 한바탕 난리를 겪기도 한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게 내담자로부터 감사의 글을 받으면 이보다 더 힘이 될 수가 없다. 때때로 주변 친구나 지인을 돕게 되는 것 역시 큰 보람이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

 

사실 내가 상담을 하면서 가장 두근거림을 느끼는 때는 따로 있다. 바로 동성 친구를 향한 감정이나 경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또는 생물학적 성별과 스스로 느끼는 성별과의 괴리로 혼란을 겪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의 고백이었다. 친구의 문자에 ‘흔하진 않지만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답장을 보내고 몇 년 후, 거짓말처럼 친구의 물음이 나의 것이 돼버렸다.

 

성격 탓인지 나는 생각보다 내 정체성을 큰 갈등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 감정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외로웠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수시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침 그 시기 여성주의를 만났다. 당시 난 ‘세상에는 왜 두 가지 성별만 있는 걸까?’ ‘왜 이성간의 사랑만이 인정되는 걸까’, ‘여자다움을 요구하는 말이 나에겐 왜 이렇게 불편할까’ 라는 평범치 않은 고민으로 남모르게 앓고 있었다.

 

여성주의는 이런 내게, 내가 가진 질문이 바보 같은 질문이 아님을, 나와 비슷한 생각을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것을 알려주며, 커다란 위안과 함께 ‘차이’를 보는 새로운 눈을 주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성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때였다.

 

처음으로 내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낸 것은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10대여성 이반(異般. 이성애자를 ‘일반인’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 역설적인 의미로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 거리상담 활동을 자원할 때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곳에서 내 나이보다 일찍 자신을 발견하고 친구를 사귀는 아이들을 보며 참 많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겐 또 다른 공포였다.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내가 겁이 났다.  현재 내 친구들뿐만 아니라 내가 살면서 주로 마주해야 하는 사람은 성소수자가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이들이 성소수자 집단이 아닌 어떤 곳에서도 안전하게 어울리며, 상담을 받고 지지를 받는 상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신의 직장과도 같은 곳에 사표를 내고

 

그렇게 10대 이반 친구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성상담 전문가 워크숍을 통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기관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사이버 자원상담원으로 활동하던 중 대학 졸업과 동시에 운 좋게 상담팀에 입사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또한 여러 명의 자원상담원 중 한 사람이었던 내가 모임의 책임자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기존에 알고 지낸 상담원들과는 나의 위치 변화에 따른 어려움을 겪을 일이 크게 없었지만, 새로운 기수를 모집하는 워크숍을 통해 모인 30대 이상의 신규 상담원들에게 나는 한 눈에 봐도 ‘출산과 육아 경험이 없는 어린 여자’였다.

 

나는 이들에게 ‘어린 여자여도 자녀의 성에 대해 말하고, 부모가 성을 다루는데 느끼는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이 문제는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신규상담원 트레이닝 모임을 기회로 삼아, 여러 날 잠을 포기하며 모임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시간만큼은 성을 이야기함에 있어 나이, 학력 등의 수준을 떠나, 나 자신의 생각과 서로의 경험 차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단히 애썼다.

 

상담원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어느 날, 큰맘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에게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내가 우리 모임에 얼마나 애정을 쏟고 있는지, 그리고 상담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격려하는 내용의 글을 구구절절 썼다. 스무 번은 읽었을 메일을 상담원들에게 보내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몇 시간 후 반복되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깬 나는, 그것이 이제까지 받지 못했던 상담원들의 답신이라는 것을 알고 두근거림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실무자가 되고 처음으로 느낀 보람과 감동이었다.

 

사이버 상담의 내용은 내담자만 아니라, 기관 홈페이지에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고, 지울 수 없는 기관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 보이지 않는 부담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던 탓일까, 우리 모두는 배움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 모임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확장되는 질문과 혼란의 뒤엉킴 속에서 느끼는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된 일상에서도 그런 짜릿함으로 하루하루가 설레고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넘쳤다.

 

퇴근 후와 주말에는 장애, 여성, 성소수자, 상담 등 관심 있는 주제의 토론회나 강의를 찾아 다녔다. 그 안에서 난, 다양한 사람들의 연대와 실천력에 자극을 받았고 새로운 관점과 언어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뇌에 오르가즘을 느끼곤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소수성이 더 이상 버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 많이 배우고 싶었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과로로 나빠진 건강과, 컴퓨터 앞에만 있기엔 부족함과 아쉬움이 절정에 달았을 즈음, 내게 있어선 찾기 어려울 신의 직장과도 같은 곳에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나에게 노동은, 살아가고 나누는 모든 것
 

▲  너와 나의 '안전한 공간'을 위하여   © 완두 
 

사표를 던진 지 7개월째 접어든 현재, 나는 백수다. 여전히 기관에선 자원상담원으로 사이버 상담을 하고 있고, 주1회 여성인권단체에서 성폭력상담원 스터디 모임을 하는 백수다. 데이트폭력 예방과 성 평등한 연애문화 확산을 위한 20대 모임 안에서 캠페인을 기획하고 첫 소식지 발간을 앞둔 백수이기도 하다. 성폭력 피해생존자 수기를 읽고 무작정 시를 휘갈기거나 친구에게 10년 안에 다큐멘터리를 만들자는 말을 툭 던지기도 하는 백수다.

 

그리고, 1년 동안 번 돈으로 생활하고 배우느라 수입이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적금을 깰까 말까 고민하는 백수다. 길을 걷다가 10만원을 줍는 상상도 해봤다.

 

한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든, 이렇다 할 직장이 없는 사람을 모두 ‘백수’라고 하지만, 난 내 25년 인생에서 백수인 지금만큼 바쁘고 행복했던 때가 없다. 이 모든 것이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말에 코웃음 칠 여력조차 없고 ‘자긍심’이란 말이 처절하게 들리는 그런 때, 우울우울 열매 먹은 브레인스토밍으로 내 존재 자체를 뿌리 채 흔들기도 했던 지난날에 비하면 지금의 결핍은 애교랄까.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살기 좋은 안전한 공간을 늘리고 싶은 마음에 디딘 한 걸음은, 이름 없는 당사자들의 호흡에 힘을 실어주는 일에 마음을 쏟는 지금처럼 앞으로의 선택에 큰 기준이 될 거라고 예상할 뿐이다.

 

나에게 있어 ‘노동’은 내 걸음 걸음에 마른 장작이 되는 일이다. 내가 꿈꾸는 것과 현실, 그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다. 어떠한 것이든 살아가고 나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마음속에 쌓이던, 목구멍 속을 굴러다니던 것들이 하나하나씩 문장이 되고 소리가 되어 만나는 것이면 무엇이든. 어쨌든 이런 내 노동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입 있는 노동 역시 소홀하지 말아야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누가 정답이라고 박음질한 삶 위에 냅다 물음표를 던진다. 잉크냄새 나는 감수성이 아닌, 내가 사용하는 언어 밖에 있을 보다 많은 경험과 세계들과의 만남을 상상하고 내 삶과 내 글이 그런 건강한 상상력의 증거가 되길 바란다. 요즘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이 일들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 지가 화두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같이 꾸면 현실’이라고 하니, 난 내 사람들과 내 시계를 한번 믿어볼란다. ▣ 완두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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