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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그만하라고요? 우리가 연대해야죠!"

기륭전자 해고노동자가 말하는 세월호 참사  

 

“말도 안 되는 일이예요. 이거는.”

 

지난 7일 오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대를 지키고 있던 박행란 씨는 분을 감추지 못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박행란씨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 박희정  

 

박행란 씨는 기륭전자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10년째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이다. 그는 조합 활동에 매진하면서도, 벌써 한 달 가까이 광화문에 출퇴근하다시피 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농성을 바라보는 마음

 

“7월 14일 날 국회로 시민들 350만 명의 서명을 전달했잖아요. 그때서부터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가족들이 단식에 들어갔고요. 유족 분들이 그렇게 싸우시는 거 보니까 속상하더라고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 내몰린다는 게 이해가 안 갔죠. 그래서 그날부터 우리(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하는 노조원들) 일정이 끝나면 광화문으로 왔어요.”

 

기륭전자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장기투쟁 사업장 중의 하나이다. 간접 고용된 기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매일 12시간을 넘나드는 장시간 노동을 100만원 남짓한 저임금을 받으며 감내해야 했다. 당시 기륭전자는 1천6백억 원이 넘는 매출과 2백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던 알짜배기 회사였다. 살인적인 노동 조건에 더해, 일이 너무 힘들다고 한 마디 했다가 문자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 일이 있을 정도로 해고가 남발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을 했다. 수십일 씩 이어진 단식투쟁을 세 차례나 했고, 고공농성도 수 없이 했다. 박행란 씨도 2008년 단식을 하다 28일째 되는 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거리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단식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는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  박행란씨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는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 박희정 

 

“말을 조금만 하면 목이 아파요. 의사가 목에 혹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얼마나 소리를 질렀겠어요.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래도 오래 활동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싸우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애틋함이 더 있는 것 같아요. 기륭도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요. 하지만 여기는 사람이 없어졌잖아요. 그보다 더할까. 자식은 아파서 죽어도 항상 가슴에는 남아 있다고 하잖아요. 부모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그게 상처가 되는 자식도 있고. 그런데 하물며 살릴 수 있는 자식을, 또 누군가는 부모님을 잃었잖아요. 그렇다면, 이거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기 때문에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스물한 살 때는, 이런 세상인 줄 꿈에도 몰랐죠

 

“진짜 어디 연대 가서 못 올 상황이 되면 끝나고 와서 잠깐이라도 앉았다가 여기 있는 분들과 이야기 하고. 그러면은 좀 마음이 낫죠. 보고라도 가면…. 그게 엄마의 마음인가? 저는 제가 엄마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데…. 이게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안 왔다고 해서 도리가 아니라는 말은 아닌데, 제 마음이 그래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오고. 또 여기 있다 보니까 더 계속 있어야 될 것 같더라고요.”

 

사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1천895일간의 장기 투쟁을 끈질기게 버텨낸 조합원들은 2010년 11월 회사로부터 직접고용 약속을 받아냈다. 지켜보던 사람들뿐 아니라 조합원들도 이제 긴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국회에서 수많은 언론이 보는 자리에서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이 직접 합의문에 조인식까지 했기 때문이다. 


▲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박행란 씨(우) © 박희정
 

그러나 조합원들의 복귀를 차일피일 미루던 회사는 또다시 뒤통수를 쳤다. 기륭전자는 지난해 5월에야 출근하게 된 조합원들에게 대기발령을 내고 월급도 주지 않은 채 방치했다. 그리고 12월 30일 밤, 회사 집기를 몰래 빼돌려 ‘야반도주’를 해버린 것이다. 금속노조와 기륭전자분회를 포함해 교수, 예술인, 국회의원, 회사원 등 시민 107명은 지난 6월 11일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 최동열 회장을 업무상 배임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우리는 지금 공장도 없잖아요. 회사가 숨어버렸잖아요. 그 과정에서 다시 싸움을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최동렬 회장이 ‘사기’로 사회적 합의를 하고 깨버린 것을 최대한 알려내고 마무리를 해야 우리가 그동안 십년이라는 세월 동안 싸웠던 게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에요. 그렇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화가 날 것 같아요.”

 

10년 전 기륭전자에 입사한 박행란씨는 처음 자신이 간접 고용된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같은 일을 하면서 정규직과 다른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도, 자신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 도급회사가 월급에서 10만원을 떼어간다는 사실도 몰랐다.

 

“누가 나한테 좋았을 때가 언제냐고 물어봐요. 저는 스물한 살 때가 진짜 좋았어요. 그때 나는 내가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요. 항상 주위를 돌아보고 누가 다쳤을 때 같이 도와주고. 그런 세상인 줄 알았어요. 이런 세상인 줄 꿈에도 몰랐어요. 거기에 대한 배신감이 커요. 지금도.”

 

돈이 우선인 사회…‘전철도 열차도 위험해’

 

박행란씨는 세월호 참사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되풀이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이 사회 시스템에 지금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는데, 이런 일 있을 때 경기 좋다는 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요. 저는 처음 일 시작할 때 나이가 어려서 남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회사를 갔어요. 이것저것 다 보고 살았잖아요. 경기는 항상 안 좋았어요. 자기들 불리하면 경기가 안 좋다고 말하죠. ‘사람’이 먼저이기 전에 ‘돈’이 우선인 사고방식이랑 똑같은 거지요.

 

철도도 민영화 안한다면서 부분적으로 민영화했잖아요. 그러면서 직원들 다 잘라버리고. 제대로 정비를 못한다하더라고요. 영등포역에 갔더니 일하던 사람 반을 잘라버렸더라고요. 대신에 기계를 놔버렸고요. 표 끊어주는데, 직원들이 손이 완전히 날아 다녀요. 절 보고 ‘힘들어죽겠어요.’ 그러더라고요. ‘아니 왜 이렇게 직원이 없어요?’ 그랬더니 구조조정이 돼서 그렇다고.

 

그래서 간간이 사고가 나도 언론에 안 나오잖아요. 보도해도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마니까. 철도노동자들은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전철도, 열차도 위험합니다.’ 우리도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억울하게 죽을 수 있어요.”

 

“유가족들에게 그만하라고 하면 안 돼요” 


▲  박행란씨는 유가족들에게 그만하라는 얘길 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 박희정
 

세월호 참사 100일이 훌쩍 지나면서 사회 일각에서 ‘그만하라’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박행란 씨도 서명대를 지키며 간간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속이 상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싸워야 이 문제가 해결의 조짐을 보이겠냐고 조급히 묻는 사람도 있다. 서명을 하면서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겠냐고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다.

 

“저도 노동조합을 할 때 우리 싸움이 길게 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 짧게 가리라는 생각도 안했어요. 2007년도까지만 해도 ‘너 그만해라’ 제 주위에서도 그런 얘기했어요. 애 아빠도 그랬어요.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해야 돼?’ 저는 ‘그럼 어디가도 비정규직인데, 내가 열심히 안하면 누가 해.’ 라고 말해줬죠. 그만하라는 말은 좋은 게 아니에요. 왜 그만해요? 누가 잘못했는지 참사의 원인을 밝혀야 되고 사회악을 없애야 되는데.

 

물론 주위에서 안타까우니까 그만하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유가족들에게 그런 얘기하면 안 돼요. 그 당사자가 이걸 밝혀야 되겠다고 나섰는데. 귀하게 키워 놓은 자식이 살겠다고 손톱이 문드러지도록 유리창을 긁으면서 살려달라고 했는데 못해줬잖아요, 어른들이. 그럼 한 사람이라도 가서 연대를 하고 참여를 하고 그분들을 도와줘야지 ‘그만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단식할 때도 ‘그만하라’는 말 듣기 싫었어요. 잘못된 것이 있다면 끝까지 밝힌 건 밝혀야지요. 어느 회사 노동자들이 그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겠어요. 세월호 가족들이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겠어요? 사람들이 지나면서 나라가 망하네 어쩌네 하지만, 이거 한다고 나라 안 망하거든요.”

 

단식보다 힘든 건 ‘고립’

 

박행란 씨는 2008년에 28일 동안 단식을 하다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단식 초기, 그는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할 일을 찾아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도 기운이 달릴 판에 빨랫감을 찾아다 손으로 빨았다. 그는 음식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은 굶으면서도 현장을 찾는 연대자들을 위해 밥을 해주었다.

 

“가만히 앉아 고립감을 느끼는 게 너무나 싫기 때문에요. 고립된 게 싫어요. 십몇 년 동안 싸우면서 고립을 당한 게 우리 현장에서도 몇 번 있었고, 대추리 연대 가서도 경찰한테 고립되어가지고 굉장히 힘들었어요. 현장에 있으면 연대오는 분들이 안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가면 그 뒷모습을 보면서… 아… 가지 말지. 그런 게 커요.

 

우리 현장에 있을 때 초기에는 우리가 밥그릇 같은 걸 치면서 그동안 당한 설움을 풀었는데, 나중에 이층에 샷시문도 만들어 버리고, 이쪽에는 경비가, 이쪽에는 용역들이. 그때는 A급이었어요. 일당 30만원씩 받는. 갇혀서 밖으로 못나가니까 힘들었죠. 용역들이 조합원들한테 모욕적인 말도 많이 했어요.

 

대추리 갔을 때는 전쟁 때 포로 모아놓듯이 고립되어 있었죠. 나는 진짜 고통스러웠어요. 화장실 가려는 데도 못 가게 하고. 뒤에서 경찰이 나를 쳤어요. 비만 오면 한 몇 년 동안은 맞은 자리가 아팠어요. 십여 년 동안 수없이 소리 지르고, 경찰들하고 싸우고, 깡패들하고 싸우고……. 같은 사람끼리 싸운다는 게 서글퍼요. 진짜로.”

 

“8월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꼭 만나요”

 

오랜 시간 동안 투쟁하면서 수도 없이 고립을 경험했기에, 박행란 씨는 지금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이 시민들의 연대임을 절절히 공감하고 있다. 그렇기에 매일같이 광화문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서명하시는 분들이 어제(6일)는 생각 외로 진짜 많았어요. 유가족들이 비록 자식을 잃고 힘들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해주는 모습을 보면 힘을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많은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하시는 것 같아요. 서명해주는 분들이 한 마디라도 좋은 말 해주실 때 저도 힘이 나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우리가 나서야 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8월 15일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를 연다. © 박희정  

 

지난 7일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야합’ 소식이 전해지면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같은 날 새누리당의 안홍준 의원이 25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두고 “제대로 단식을 하면 벌써 실려 가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물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파문이 일었다.

 

분노한 김영오씨는 안홍준 의원이 사과를 하러 올 때까지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22일간 단식을 했던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유경근 대변인도 단식을 멈춘 지 3일 만인 7일 저녁부터 다시 단식에 나섰다. 이번에는 물이나 소금, 효소조차도 먹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버티고 있다.

 

유가족들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오는 8월 15일 금요일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시민들이 힘을 모아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박행란 씨는 서명을 하고 가는 이들에게 일일이 15일 집회에 함께 해줄 것을 호소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바뀌는 거잖아요. 유가족들이 마음도 몸도 지쳐있는데 단식하고 있잖아요. 15일에 예정된 집회에 많이 와줬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정치인들도 좀 압박을 받아서 이 문제가 빠른 시간 안에 해결되었으면 해요.”    ▣ 박희정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다른 기사 보기 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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