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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 지역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 ‘사할린 희망캠페인’ 10년의 연대 
 

75년전, 일제에 의해 강제이주 당하고 사할린에 억류된 한인의 역사와 삶,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를 짚는다. 필자 최상구님은 지구촌동포연대(KIN) 회원으로 사할린 한인 묘지조사 후속작업, 영주귀국자 인터뷰 등 ‘사할린 희망캠페인을 펴오고 있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자리에요”

 

지난 달 17일 서울 홍제동, 국내 조선족 자치모임인 재한조선족연합회의 문화공간 ‘문화활동 중심’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해방되지 못한 사할린 한인 문제”를 주제로 열리는 2차 <KIN 네트워크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  사할린 한인 1세 이희팔 선생님(우측)과 박창규 선생님   
 

이 자리에는 일본에서 오신 한인 1세 이희팔 선생님과, 함께 일본에서 귀환운동을 해온 고 박노학 회장의 아들 박창규님이 참석했다.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들도 많이 모였다. KIN(지구촌 동포연대)에 사할린 한인 문제를 알리고 호소했던 사할린주 한인 이산가족협회 이수진 명예회장을 비롯하여 부산, 오산, 파주, 김포 등 여러 지역에서 십여 분이 오셨다.

 

이날 세월호 침몰의 안타까운 희생 소식에, 묵념으로 시작한 포럼은 노영돈 인천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노 교수는 2005년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 제정운동을 펼쳐온 분이다.

 

필자는 10여년에 걸친 KIN의 ‘사할린 희망캠페인’ 활동에 대해 발표했다. 유튜브를 통해 포럼 내용을 생중계하고 있는 가운데 발제를 하려니 긴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희팔 선생님, 안해준 선생님 같이 평생 사할린 한인들을 위해 노력해온 분들과 동석하여, KIN의 10년 활동을 이야기한다는 게 민망하기도 하였다.

 

KIN(지구촌 동포연대) 활동에 대한 두 개의 발제가 끝나고, 이희팔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나로서는 내 평소에 먹고 있던 마음, 어떻게 화태(사할린)에 계시는 우리 동포들을 구할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러한데 대해서 심계섭이와 박노학씨와 나, 이 세 사람이 주로 되어서 (…) 우리 동포의 구조를 안 하면은 어느 누가 할 것인가? 미국사람이 해주나? 일본사람이 해주나? 우리가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구해줄 사람은 없다. 이런 토의로서 ‘화태귀환억류한국인회’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아흔하나 연세에 얼마나 하실 말씀이 많았을까. 끝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서둘러 마무리하시면서 이렇게 덧붙인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는 것은 아주 걸출하게 생겼어요. 도저히 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거에요. 이러한 신식으로(인터넷 화상 회의, 동영상 실시간 중계 등) 사할린하고 일본하고 연결하고, 강의를 한다든지 회의를 한다든지, 나는 꿈에도 보지 못한 거에요. 오늘날 처음이에요. 이러한 것을 보니 참 눈물이 나요. 참 반갑습니다.”

 

지난날 일본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편지를 한국으로 전하고, 다시 사할린으로 두 달에 걸쳐 편지를 보내 연결해왔던 분이 인터넷을 통해 한국, 사할린, 일본에서 동시에 접속하여 함께 포럼을 하는 걸 보신 소감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 사할린에 관심을!

 

“한국에도 보통사람은 관심 안 둡니다. 정부도 그렇지만.”

 

이어 안해준 선생님(전 브이코프 한인회장)이 말씀을 이어갔다. 사할린 브이코프 탄광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다 부산으로 영주 귀국하신 분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 사할린 한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더라는 것이었다. 

 

▲  발언하는 안해준 전 브이코프 한인회장 (부산으로 영주귀국)    © 최상구  

 

“여기 나와서(한국에 오니) 방송국에서도 찾아옵니다. 얼마 전엔 젊은이들도 찾아왔어요. 내 서투른 말로 다 해줬습니다. 젊은이들이 관심 두는 거 보니깐 참 좋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사할린 사람들이 누군지 모릅니다. 알아야지요. 정부도 그렇지만. (…) 우는 아이한테 젖도 준다고. 그러니 울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울지 않은 아이에게는 젖도 안 줍니다.”

 

한국의 인식에 대한 서운함은 사할린 현지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부도 우리 동포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한국에서 사할린 특별법안을 여러 번 발의했는데, 문제가 해결 안 되었고, 2009년도에 고려인 동포 위해서 법(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는데, 사할린 동포를 위해서는 아직도 하나도 법이 없습니다.” (김홍지/ 사할린주 한인 노인회장)

 

“사할린 사회단체가 요구하는 것은 사할린에 남은 1세들이 똑같은 입장에서 영주귀국자와 같은 혜택은 못 받겠지만, 남편이 강제로 끌려왔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 분들도 영주귀국자처럼 위로금 받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며, 600명의 1세들에게 1년에 한 번씩이라도 (건강)검진이라도 해드리고, 고국의 따뜻함을 전달해주었으면 합니다.” (김춘자/ 사할린 우리말방송국장)

 

사할린 한인 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사할린 한인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나온다. 현재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을 위한 위로금 지급 소송을 맡고 있는 손영실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소송 과정에서 사할린 한인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확인시키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조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수요집회, 영상자료, 생존자의 육성이 있는데 비해 사할린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는 아픔에 대한 공감을 (재판부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어려움을 많이 느낍니다. (…) 조금 더 사할린을 피부로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소송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습니다”

 

충청남도에서 사할린 한인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에 힘써온 우복남 연구원(충남여성정책개발원)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미미하다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충남 지역에 정착한 약 3백여명의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제 주변 사람 모두 연구자, 대졸자이지만, 사할린이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를 정도로 사할린과 거기에 계신 분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생각보다 무지했고, 도청에서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 그분들이 누군지, 얼마나 와 있는지에 대해 겨우 관심을 가지는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지자체 연구기관에서 이주민, 그 중에서도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에 대한 연구는 진행해왔지만, 사할린 한인 귀국자들에 대한 조사는 몇 년 간 허용이 안되었다고 한다.

 

“지역에서 이분들에 어디서 오셨고, 왜 오셨는지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고, 우리 지역은 수도 얼마 안돼서 우선 순위에서 밀렸던 것 같습니다. (…) (이번에) 조사하면서 조금 더 관심이 가게 됐고, 이분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조금 더 공감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복남 연구원은 사할린 한인 문제와, 충남 지역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지원 방안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침 충남도의회 의원들과 다문화 국제결혼가족 관련 연구회를 했던 인연이 있어서, 도의원들과 이 문제를 상의하여 조례 제정의 초안을 만들게 되었다고.

 

“특별법 제정 전에라도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분명 있습니다. 지방정부 공무원은 예산 문제를 말하는데, 다른 쪽에서 하고 있는 자원들을 모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필요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죠. 생활상 어려움, 건강, 그리움 등, 이를 지역 사회에서 너무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충남 지역에 정착한 사할린 한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어르신들의 요구를 정리하고, 다른 지역 조례들도 참고하여 조례안을 만들었고,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조례는 8월에 시행될 예정이다.

 

“주요 내용은 첫 번째로 넣었던 것이 영주귀국 주민들의 역사와 아픔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고, 너무 모른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고(영주귀국 주민에 대한 관심 제고 및 인권보호 교육과 홍보), 의료 관련 부분, 방학마다 손자녀가 오는데 후세대 관련된 부분, 국내 친척이나 사할린 가족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하고, 지역별로 한인회를 구성했지만 단체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고 해서 단체 지원 관련 쪽으로도 내용을 담았습니다.”

 

영주귀국을 시작한지 20여년만에 처음으로 영주귀국자들에 대한 지원의 제도적 틀이 생긴 것이다. 전체 영주귀국자 중 10%에 해당하는 충남에서 살고 계신 분들만 누릴 수 있는 지원이지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에만 매달려 오히려 지역 차원에 할 수 있는 측면들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의 자국민 영주귀국 3단계 프로그램

 

그동안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사업에 대해 이런 저런 비판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제한적인 대상 선정으로 자녀들과 떨어져 이산가족이 된다는 사실과, 2인 1가구 조건으로 황혼에 급작스러운 결혼을 하거나, 동성 간에 함께 왔다가 살면서 동거가 불편해진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 화상으로 일본에서 발언 중인 현무암 홋카이도 대학 준교수 ©최상구 
 

더불어 정착 이후에는 정부 차원에서 손을 놓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현실도 문제이다. 적십자사는 이들이 정착을 위해 편의를 제공하였지만, 이번 포럼에서 일본의 사례를 듣고서는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깨달았다.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현무암 교수는 중국과 사할린에서 귀국한 일본인들에 대해 일본 사회가 어떤 정책을 펴고 지원해왔는지 소개했다.

 

귀국자들은 3단계 정착 지원 프로그램을 밟아 일본 현지에 적응해간다. 먼저 언어, 생활습관 등을 지원하는 정착지원센터에서 6개월간 연수를 받고 국적을 회복하는 등 각종 수속을 마친다. 이후 각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 자립연수센터에서 8개월간 해당 지역에서 일본어 교육과 취직 상담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귀국자가 지역에 정착한 후에는 지원교류센터를 통해 귀국자 간에,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00년 이후로는 대부분이 영주 귀국해, 지원 방향도 ‘귀국 및 정착’에서 지금은 ‘경제적 자립 및 노후생활 안정’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지원교류센터에는 중국어나 러시아어가 가능한 상담원이 있어 이들이 각각 해당 언어로 생활, 취업 상담에 응하고 있습니다. 또한 필요하면 이들을 파견하는 제도도 시행 중에 있습니다. 지원교류센터의 교류 프로그램도 중요한 사업입니다. 귀국자들이 지역 주민 활동에 참가하여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문화 활동,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계몽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번 온천여행을 하거나 중국, 사할린 귀국자 따로 나눠 ‘귀국자 파티’로 당사자 간의 교류활동 등도 있고요.”

 

현무암 교수는 이런 처우가 일본 정부에서 처음부터 스스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켰다. 대중적인 관심과 운동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영주귀국자에 대한 지원 사례를 들으면서, 자국민들에 대해서는 저렇게 자식까지 포함하여 귀국시키면서도 왜 일제시대에 징용된 사할린 한인들의 일본 귀국에 대해서는 차별하는지 답답했다. 한편으로 귀국과 정착, 정착 이후 적응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단계별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참고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포럼 참여자들은 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 10년간 진행해 온 ‘사할린 희망캠페인’과, 사할린 한인 문제의 현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0년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 사람들은 사할린에 대해 잘 모른다는 평가는 여전했다. ‘사할린 한인 지원 특별법’ 제정운동에 주력해 온 KIN에서도, 사할린 한인 문제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도록 여론을 모으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려본 자리였다. ▣ 최상구  www.ildaro.com 

 

* 포럼 생중계 다시보기: www.youtube.com/watch?v=bhxZ0sTg3Q8&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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