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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를 시작하며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연재를 시작합니다. - 일다 www.ildaro.com  

 

▲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서른 무렵에 기타를 시작했다. 몇 년 흐르면서 내 노래가 생기고 소담하게 모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래, 한 번 나를 음악가라고 쑥스럽지만 불러보자. 이왕 많이 돌아다니는 역마가 가득하니 궁금한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여행자의 공연을 꾸려보자. 이렇게 생각했더니 신기하게도 나는 이곳저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진짜 노래여행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또한 기록하자. 자연스러운 다음 생각이었다.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라고 이름도 지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두근두근,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언제나 두근두근. 누군가가 자신을 ‘길 위의 철학자’라고 표현해서 맘에 쏙 들었는데, 나는 이제 ‘길 위의 음악가’라고 스스로를 불러보자, 하니 또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렇게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만 같던 봄이었다.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기울어졌다. 이렇게 쓰고 나니 한참을 뭐라고 말을 이어나갈지 모르겠고 모니터 위에 커서만 깜박거린다.

 

세월호 침몰, 나는 공연을 취소하지 않았다

 

4월엔 미리 계획해둔 공연이 꽤 있었다. 몇몇 뮤지션들이 공연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분노와 슬픔이(혹은 분노로 표출된 슬픔이) 온 나라에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나는 공연을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이제 막 공연을 다니기 시작한 내 욕심인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과 일단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고 그 불편함을 안고 작은 공연들을 이어갔다.  

 

사고 며칠 후 공연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생각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길을 걸으며 문득 횡단보도에서 어린이들 위해 교통 지도를 하는 노란 조끼의 자원봉사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들을 보았다. 저 분들이 자신의 일을 놓지 않았듯, 이제 막 나를 음악가라고 부르기 시작한 나도 나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먹어보았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마음의 고민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노래를 불렀다. 잔잔한 나의 노래들 속 어떤 가사들은 평소보다 몇 배로 슬퍼져서 전혀 다르게 들리기도 했고, 그걸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였으니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지만, 우리는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사실 매일같이 새로 드러나는 말도 안 되는 대처 상황을 보면서, 물 속에 사람들이 여전히 갇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모두의 머릿속에 생각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을 것이다.

 

“행동은 절망의 해독제다.” -존 바에즈

 

나름의 규칙을 정해 보았다.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뭐라도 하자’에서 출발한다. 의례나 형식을 피하려 하는 편이지만, 공연 때마다 초를 켜 둔다. 노래를 부를 때는 진심을 담는다. 관제엽서를 사서 공연 마지막에 단원고등학교에 엽서를 쓰는 시간을 가진다. 남겨진 이들의 마음이라도 생각해보자는 것 정도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작은 변화들을 이야기해 준다. 누군가는 보던 신문을 그만 받아보기로 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미디어에 후원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 운동에 자원 활동을 한다.

 

홍대 거리 ‘작은 음악가’들의 버스킹 시위

 

서울 노래여행들을 마치고 지인의 빈집에서 쉬고 있던 중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사이, 정민아씨가 이벤트를 만들었다.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홍대 앞 여러 거리들에서 버스킹(거리공연) 시위를 제안했다.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무엇보다 ‘작은 음악가’라는 말에 함께하고 싶어졌다.  

 

▲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버스킹 시위   © 이내 
 

낯선 홍대 거리에서 생전 처음 버스킹이라니, 일단 어디서 할지 주소를 정해서 신청서에 남겨야 했는데 그것부터 막막하던 차였다. 최근 노래여행 중 알게 된 피터아저씨라는 밴드 멤버로부터 연락이 왔다. 장비를 들고 자기들도 나가는데 함께하지 않겠냐고 해서 주소를 받아 신청서를 완성했다.

 

그렇게 5월 10일 토요일에 홍대 상상마당 근처 주차장 골목에서 몇몇 음악가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돈보다 사람’, ‘나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세요’, ‘내 일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내일은 없습니다.’ 이틀 동안 100여개의 팀이 이곳저곳에서 손팻말을 들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많은 음악가들의 참여에도 주위는 너무 조용했다. 주말에 재밌는 것들을 찾아 나온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에게 뭔가를 팔아야만 하는 수많은 상점들 사이에서 우리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뭐라도’ 하자는 말에 숨어 스스로에게만 떳떳할 빌미를 주며 실상 별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되었다.

 

누군가는 음악가들이 연대하여 함께 청와대로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기획을 했던 분들은 다음 단계로 시위의 효과가 더 큰 일을 그리는 것 같았다. 내가 느낀 어떤 허무함이 그들에게는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렇다면 나의 다음 걸음은 무엇이어야 할까. 처음 먹은 마음처럼 ‘뭐라도’ 시작하는 것, 또는 쏟아지는 생각들을 멈추지 않으며 행동하는 것, 그것으로 정말 괜찮을까? 어느 술자리에서 대학생 친구에게 물었다.

‘어이, 미래 세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답을 해 줘.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저의 다음 세대를 믿고 있습니다.’

다 같이 웃어넘기는 대화가 되었지만 나는 그의 대답에서 ‘믿음’이라는 것을 붙잡고 싶어졌다. 매우 오래 걸린다 해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싶어졌다.  

 

▲   5월 10일 홍대 골목에서     ©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페이스북 
 

주위를 돌아보니 그렇게 믿을 만한 이유들이 가까이에 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과 주변의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친구들이 가까이에 있다. 스스로 잡지를 만들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는 J와 H,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고양이가면을 쓰고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1인 시위를 한다는 B, 늘 마음에 담아두었던 밀양을 드디어 찾아가 지킴이를 하고 온 H, 문인잡지에만 글을 싣던 문학평론가 D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글을 출력하여 친구들에게 나누기로 했다.

 

경계를 허물고 반복을 뒤엎는 작은 변화를 일상에서 시도하는 것, 그것은 나에게는 그 어떤 혁명보다 더 혁명적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쉽게 믿어지지도 쉽게 변하지도 않겠지만, 생각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발목을 잡겠지만, ‘뭐라도’ 자꾸 하다보면 다음 걸음 정도는 내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는 것. 이것이 지금 나의 결론이다.

 

2014년의 나는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다음 걸음이 되고 다음 노래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함께 걷는 걸음,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어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계속 이어지면 그토록 의심스럽던 믿음이 조금씩 더 단단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전을 찾아보다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전적으로 두근거림이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불안과 놀람을 말하는데, 우리는 ‘두근두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에는 믿음(바람)이 실려 있었나보다.  ▣ 이내 www.ildaro.com 

 

*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bombbaram.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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