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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푸른들의 사진 에세이] 어디에 살까 
 

궁핍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남과 살기에는 다소 모난 성격 탓에 서울에서 산 2년 동안 이사만 네 번째이다. 시간은 가고 짐은 늘어 거듭되는 이사가 부담스럽지만 여전히 더 안락한 집을 꿈꾼다. 요즘은 바깥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무섭지 않고 집 주인과 부딪칠 일이 적은 아파트가 부럽다. 하지만 살고 싶은 집과 마을은 따로 있다.

 

▲  논들은 동생 푸른산과 푸른내에게 초여름이면 수영장이 되고,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넓게 이어진 논들 사이에 덜렁 있던 두 집 중 한 집이던 그 집은 아빠가 어릴 적 논을 메우고 지었다는데, 메운 흙이 내려앉아서 논들과 높이가 같아져버렸다. 그래서 논에 물을 댈 때면 개구리 소리가 집을 크게 감돌았다. 그 논들은 동생 푸른산과 푸른내에게 초여름이면 수영장이 되고,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 집은 평생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에게 꼭 어울리던 곳이었다.

 

마당과 광은 곡식을 말리고 보관해두기에 충분했고, 일을 마치고 흙을 털고 가볍게 씻을만한 수돗가가 있고, 걸터앉아 참을 먹을 대청마루는 시원하게 트여있었다. 담장 밖에 있던 외양간, 닭장, 돼지우리, 염소집은 작은 동물농장이었다. 먹이를 주고, 똥오줌을 긁어모아 거름으로 만들어 집 주변 논밭에 뿌리기도 편했을 것이다.

 

넓은 마루와 마당은 잔치도 거뜬했다. 부엌에는 뒤뜰로 가는 문이 있었는데 뒤뜰에는 요리 할 때 자주 쓰는 된장, 고추장, 간장 항아리가 빼곡했다.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는 과일나무도 넘실댔다. 마루 끝에 나 있는 쪽문을 열면 통통한 앵두가 탐스럽게 열리고, 그 사이로 우리 가족이 농사짓는 논들이 펼쳐졌다.

 

여름이면 할머니가 좋아하던 꽃과 나무들이 집을 에워쌌다. 꽃을 좋아하던 할머니는 온갖 씨와 구근을 심어두었고 그것들은 집만이 아니라 앞길에도 풍성하게 피어올랐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 삭고 있을 그 집에 가고 싶다. 긴 안목을 갖고 오랜 뒤 그늘이 되어줄 나무 묘목을 심고, 이듬해 꽃필 구근을 심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www.ildaro.com  

 

▲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 삭고 있을, 논들 사이에 있던 그 집에 가고 싶다.   © 박푸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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