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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귀농자의 자녀 교육 
 

※ 경북 상주시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님은 <빈집에 깃들다>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귀농을 했지만 귀농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다. 카페를 하는 지금은 더욱 그렇지만, 아직도 ‘귀농자의 자녀 교육’이라든가 ‘귀농, 농사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주제로 강의 요청을 받곤 한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과 두 살 더 많은 딸을 도시에 두고 우리만 귀농을 했다는 것이, 자녀 교육 문제로 귀농을 망설이는 분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 중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 둘은 정말 사이가 좋다. 우린 가족사진이 별로 없다.    © 박계해 
 

열세 살과 열다섯 살, 도시에 남겨두고 떠나기에는 확실히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골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설득하는데 실패했고, 아이들은 자취를 하겠다며 우리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서 내린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 우리는 일단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히 안 되겠다며 따라올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고, 그 때 또 이사를 하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억지로 강요해서 원망을 듣는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5층짜리 원룸의 4층을 얻어 아이들의 이사를 먼저 했다. 나는 창가 쪽의 옷장을 정리하다가 문득 열린 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4층이 14층이라도 되는 냥 아득했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 몸을 창틀에 딱 붙이면 안 돼. 아니, 이 문을 열지도 마라.”

 

딸은 말이 되는 소리냐는 듯 눈이 둥그레지더니 그만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우리 안 죽어!”

연극배우가 꿈인 아들은 창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진저리를 치는 시늉을 했다.

“엄마, 살려줘~, 누나의 콧바람이 나를 밀어요~. 아이, 무서워~”

 

둘은 까르륵대며 야단이 났지만 나는 정말로 웃음이 나오지 않을 만큼 심각했다.

 

“아니, 선풍기를 켜놓고 창문을 꼭 닫고 자면 안 되는 거 알지? 자기 전에 창문을 꼭 닫으면 큰일 나.”

 

개수대 구멍을 막은 채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외출하면 안 된다, 물 묻은 손으로 전기를 만지지 마라, 목욕탕에서 나올 때 미끄러지지 않게 물기를 잘 닦아라, 계단에서 허겁지겁 뛰지 마라….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되어 집에 와서도 잔소리가 이어졌다. 자기들만의 새 공간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그러면 아이들의 성적은 걱정되지 않았냐고.

 

성적은, 어디까지나 아이 자신이 걱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스스로 걱정하고 보살필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걱정한 것은 불가항력으로 생길지도 모를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끔찍한 사고들이 쉴 새 없이 일어나는 문명의 한가운데 아이들이 살아야 한다는 것, 우리가 보호해 줄 수 없는 상황들.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아이들을 믿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도 믿기로 했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고, 긍정의 힘과 행복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물리적인 거리가 멀다고 해서 아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고 필요한 상황에는 허락을 구하고 이용하게 했으며, 우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청소년 유해정보 차단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을 설치하지 않았다.

 

자주 만나지 못한 대신 만나면 좋은 추억만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의 좁은 자취방에서 몸을 포개고 누워 만화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고나와 군것질을 하며 밤거리를 쏘다니기도 했다. 얼굴 맞대고 하면 더 좋은 이야기를 전화로 한다든지, 맛있는 것이 충분한데도 함께 먹을 수 없어서 아쉬웠던 건 사실이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나 그리움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같이 살지 않았던 덕에 상처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간직할 수 있었다고 확신하니까.

 

그 당시 우리는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해서 귀농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아이들을 믿었다. 믿으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걱정하고 돌볼 수 있는 한 인격체임을 그냥 믿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맑은 영혼으로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찾아서 가리란 것을 아니까.

 

확실한 것은,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그 존재만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이란 사실이다.

  

생태 귀농을 꿈꾸는 자들이라면 반드시 귀 기울여야할 소로우의 명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귀농자의 자녀 교육’에 대한 답을 제시해 본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 박계해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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