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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강렬한 록사운드
재일한국인과 일본인 혼합밴드, SALA13(사라트레이즈)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가시와라 토키코(인터뷰), 구리하라 준코(정리) 씨가 기록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작년 11월 3일 일본에서 열린 ‘헌법 집회’(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한 이 집회의 실행위원회로 <페민>도 참여하였다)에서 라이브 연주를 한 ‘SALA13’(사라트레이즈).
▲ SALA13 보컬 임정호(30)와 드러머 병헌(26) © 촬영:우이 마키코
보컬과 기타를 맡은 임정호, 기타와 코러스 연주를 한 가와모토 료가 만들어내는 소울풀한 연주와 가사의 세계관에 매료당한 참가자가 많지 않았을까.
“SALA13의 의미요? 아무 것도 없어요”라고 말하며 웃는 정호 씨.
SALA13는 보컬과 기타에 임정호(30), 베이스에 강수행(29), 기타리스트 가와모토 료(28), 드러머 병헌(26. 본명은 무라나카 토시유키, 이병헌과 닮아 붙인 예명) 등 재일한국인 두 사람과 일본인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록 밴드이다.
원래는 어릴 적 친구인 정호 씨와 수행 씨가 다른 친구 한 명과 2004년에 결성한 ‘재일한국인 3세 밴드’였다.
피스보트 위에서 처음으로 ‘생각’을 노래하다
조선중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해왔던 정호 씨와 수행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03년, ‘피스보트’(peace boat)를 탔다. ‘피스보트’는 전쟁과 식민지배 역사를 반성하고 평화를 지향하며, 아시아 각국의 현장을 방문하는 시민단체로, 1983년에 창설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수행 씨가 필리핀에 입국하려 했을 때, ‘조선 국적자’라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한 것이다.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어요. 그 때 ‘재일한국인’이나 ‘남북 분단’에 대해 강력하게 의식하게 됐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수행 씨.
두 사람은 그때까지는 ‘적당한 노래’를 불렀지만, 피스보트 배 위에서 처음으로 자기의 생각을 담아 노래로 불렀다.
“내 감정을 노래에 싣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어요. 바로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라고 정호 씨는 계기가 되었던 그날을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수행 씨는 그 후, 고민 끝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둘은 분단의 슬픔, 일본이나 미국 정부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 등을 음악으로 발산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자신들의 생각을 반드시 ‘한국어’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5년, 이들은 열정과 에너지만으로 서울의 록음악 행사에서 약 2천 명의 관객을 모두 기립시켰다. 같은 해 한국어로 노래하는 록밴드로서, 중견음반사인 도쿠마재팬에서 CD를 발매하며 염원했던 메이저 데뷔를 이뤘다.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지만, 2007년 드러머가 갑자기 밴드를 탈퇴하는 바람에 2년 정도 활동을 쉴 수밖에 없었다. 팀원의 결여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재일한국인 드러머를 찾을 수 없는 까닭에 여파는 더욱 컸다. “일본인이어도 괜찮겠다” 라고 생각할 무렵, 공개 모집을 통해 합류한 멤버가 바로 일본인 가와모토 료 씨와 병헌 씨다.
멤버들의 인종, 문화 차이를 뛰어넘는 ‘신뢰’
▲ 기타리스트 가와모토 료(28), 베이스 강수행(29) ©촬영: 우이 마키코
서로의 음악성에 끌려 멤버가 되었지만, 두 일본인 멤버와 접하며 정호 씨와 수행 씨는 일본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한다. 일본의 젊은이 중에도 식민지 역사나 차별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한편, 가와모토 료 씨 역시 정호 씨나 수행 씨에 대한 신뢰감이 ‘인종이나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호 씨는 “지금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일본어 가사로 노래합니다. 모든 노래가 우리 넷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곡들이에요. 지금의 멤버는 정말 최고입니다.” 라고 강조했다. 정호 씨가 기본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면, 네 사람이 각각 편곡을 해 곡을 완성시킨다.
“모두 서로의 재능을 신뢰하기 때문인지, 다툼은 전혀 없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서로 양보하며 의견을 맞춰갑니다.” (가와모토 료)
상업 음악계에서 ‘잘 팔리지 않는’ 그들은 다른 일을 하면서 월 1-2회의 라이브 무대를 갖고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니 팔리질 않아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노래를 모를지언정 기 죽지 않아요. 사회가 우리 노래를 쫓아오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정호)
교과서에도, 언론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
“저는 소수자여서 오히려 덕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 아시아의 정세를 바라볼 수 있는 건, 재일한국인 1세대인 할아버지 덕이에요. 할아버지에게서 관동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학살이나 1세대가 겪은 고통, 동포 간에 싸워야 했던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 등, 교과서에도 일본의 언론에도 없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걸 5세대, 6세대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정호)
가와모토 료의 친할아버지는 히로시마 피폭자이고, 외할머니는 도쿄 대공습(1945년 진주만 기습을 당한 미국은 두 차례 원자폭탄 투하 후, 폭격기를 동원해 도쿄 대공습을 감행하여 시가지를 불태웠고, 이 과정에서 약 2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을 겪었다. 어린 시절부터 원자폭탄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었다. 20년 후에는 피폭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젊은 세대가 그 체험을 들을 수 없다는 데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고 싶다.’
한편, 병헌 씨는 “제 생일은 9.11. 운명을 느껴요.” 라고 슬쩍 이야기했다.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 없다. 사람과의 만남도 어떤 의미에서는 운명적이다. 그 만남 속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피폭 2세대인 아버지는 전력회사 직원이었습니다. 3.11(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날짜) 이후 탈원전 분위기 속에서도 저는 생각이 복잡했어요. 그래서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최근 작인 “Dark side of my mind”는 원전 앞에서 모두가 피해자이고 가해자라는 가사에요. 원전에 위협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탈원전 분위기’보다 우선은 주의를 환기하려고 만든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와모토 료)
▲ SALA13 멤버들이 도쿄 합주실에서 연습하는 광경. © 촬영: 우이 마키코
“effective control”(아래 가사)은 일본 아베 정권이 촉발한 다케시마(독도), 센가쿠열도의 한심한 영토 쟁탈전을 노래한다. 지금은,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일본 헌법 9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나인”을 편곡 중이다.
SALA13의 격렬한 음악 에너지는 ‘젊음’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 불안과 무관심을 불식하고 연대를 외치는 그들의 열정이 듣는 이의 영혼을 흔들고 있다.
[effective control]
거친 목소리로 다투는 사람들 / 선을 그으면 ‘당신과 나’는 /
이미 ‘이 편과 저 편’ 원수 간 / 우뚝 솟은 벽 어쩔 방법이 없어
이 땅은 대체 누구의 것 / 다들 제 것인 양 / Oh effective control / 내버려둬 Obsession
언제든 똑같아 그 녀석들은 / 정의의 가면을 쓰고 / 가치 있는 것은 송두리째 빼앗아가
제국주의, 공존할 수 없는 적 / 짓밟히는 조국의 꽃이여
붉은 피는 그래, 나의 피 / 빼앗을 수 없지 / Oh effective control / 나가버려 Aggressor
비 오는 밤도 눈 내리는 아침도 / 소중히 물을 주며 / 피워낸 꽃은 선명한 붉은 색
총이나 칼로는 빼앗을 수 없어 / 붉은 꽃은 나의 아이덴티티
이 별은 대체 누구의 것 / 다들 제 것인 양 / Oh effective control
다시 빼앗아 My pride / 뛰어넘어 Border line
* SALA13 공식사이트 www.strikingly.com/sala13
* 음원사이트 (Audioleaf) www.audioleaf.com/sala13
* 레코초크 www.recochoku.jp/artist/30150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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