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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18) 로린 힐 “Doo Wop” 

‘블럭(bluc)’님은 음악웹진 스캐터브레인의 편집자이자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의 운영진입니다. www.ildaro.com 
 
힙합과 ‘남성성’
 
대부분의 힙합 음악은 남성성을 기반으로 삼는다. 남성우월주의, 여성혐오, 동성애 비하와 같은 면모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힙합 음악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Same Love”나 루다크리스의 “Runaway Love”, 루페 피아스코의 “Bitch Bad”처럼, 주류 분위기와는 다른 목소리를 지닌 곡들을 만날 수 있다.
 
지난 기사에서 “Same Love”를 소개하며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와 관련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곡은 이번 그래미 시상식 도중에 성별과 인종, 나이를 넘나드는 34쌍이 결혼식을 올리며 라이브로 선보였다.
 

▲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래퍼 로린 힐
 
시간을 과거로 한참 돌리면 좋은 의미를 지닌 힙합 곡들이 제법 나온다. 최초의 여성 랩 그룹인 ‘솔트 앤 페파’(Salt-N-Pepa)나 최초의 여성 솔로래퍼 ‘엠씨 라이트’(MC Lyte)의 경우에는, 흑인 커뮤니티의 남성성을 비판하는 가사들을 써오기도 했다. 전설적인 남성 랩 그룹 ‘어 트라이브 콜트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드 라 소울’(De La Soul) 등의 아티스트들도 사회 문제를 짚어내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지닌 문제점, 즉 래퍼들을 포함한 남성들의 지나친 과시와 공격적인 성격을 비판했다. 이들의 음악은 앞으로 천천히 소개할 예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힙합은 자기 과시의 면모가 더욱 심해졌다. 힙합의 필수 요소라고 부르던 엠씨(래퍼), 디제이, 비보이, 그래피티(벽에 하는 낙서)를 돈, 여자, 차, 총 등의 요소들로 바꿔 부르기까지 하였다. 특히 우리가 많이 접할 수 있는 빌보드 차트의 음악들이 더욱 유치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힙합 전체가 남성 우월주의로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보이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젊은 혹은 어린 사람들 사이에서 ‘일베’가 인기가 많은 이유와 비슷하다고도 생각한다.
 
저항의 음악은 거리의 음악으로, 거리의 음악은 클럽의 음악으로 변했다. 지금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쿨하고 세련되었으며, 의미보다는 매력을 먼저 찾는다.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아쉬운 점이 많다. 사유의 폭이나 시간적 여유가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 점점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뭐든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결론짓는다. 그러다 보니 가사의 내용도 비슷하다. 과거에는 힙합 가사들이 하나의 이야기 흐름과 주제의식을 담고 있었다면, 요즘은 단순한 자기 과시가 대부분이다. 예전에나 힙합 가사를 시에 비유했지, 지금은 그렇게 비유하기에는 민망한 가사들이 많다.
 
내부에서도 이런 경향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시대의 반영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힙합 음악이 빌보드 전체 차트에서, 미국 전역에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힙합은 ‘거리의 목소리’를 내는 음악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의 자랑 대회가 되었다. 돈을 잘 벌게 된 사람들은 더는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 갑자기 돈을 많이 벌게 된 경우기 때문에 ‘내가 거지 같은 생활에서부터 여기까지 왔어’라는 성공담이 주요 주제로 많이 등장했다.
 
바로 이전 시기, 그러니까 1990년대 전후에는 길거리에서 불법으로 돈을 버는 것이 주된 이야기였다. 이 흐름은 미국 사회의 흐름과 일치한다. 1984년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 대도시에서 마약 소비가 급증하면서 범죄가 늘어났던 시기이며, 아직도 많은 흑인들이 랩을 통해 비판하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재임기이다. 당시 미국은 감세 정책과 친기업 정책 등으로 빈부 격차가 더욱 커졌다. 이때 지하경제가 활성화된 셈이다. 그래서 힙합에서도 포주, 갱단, 마약상과 같은 주제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더불어 남성우월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게 구성되었다.
 
그런데 힙합의 주된 흐름을 비켜나서, ‘컨셔스 힙합’이라는 장르 아닌 장르가 있다. 특이하게도 음악적인 측면에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가사의 측면에서 나뉘는 힙합의 하위 분류다. 정치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메시지를 담는 음악들을 말하며, 주로 인디펜던트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에도 꾸준히 나오고 있고, 주류 음악들보다 메시지에 신경을 쓰는 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다. 작년에 많은 주목을 받은 이엘 피(EL- P)와 킬러 마이크(Killer Mike)의 [Run The Jewels]도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앨범이다. 그러나 남성우월주의적이고 공격적인 측면도 더러 보인다.
 
힙합 역사에서 전환점이 된 로린 힐의 음악

 

▲ 로린 힐의 앨범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지금 설명할 아티스트와 곡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은 이 정도로 배경 소개를 마칠까 한다. 이번에 들여다볼 곡은 로린 힐(Lauryn Hill)의 “Doo Wop (That Thing)”이다. 로린 힐은 ‘더 푸지스’(The Fugees)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성공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1998년 앨범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을 통해 솔로 활동을 해나갔다.
 
이 앨범은 미국 힙합 전체에 있어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었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힙합 역사상 손꼽히는 명반이라고 평가한다. 힙합뿐만 아니라 알앤비 음악에서도 분명한 전환점이 되었다. 알앤비에 있어서는 과거 소울 음악의 장점을, 그리고 힙합에서는 1980년대 올드 스쿨 음악의 장점을 가져오는 동시에, 레게 리듬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공고히 만들었다.
 
또한, 음악적인 면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의 힙합이 담은 주제 의식들을 뒤엎는 가사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첫 싱글 “Doo-Wop”이다. 이 곡은 듣기 편안한 악기들과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가볍거나 흥미 위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곡의 메시지는 굉장히 명료하게 전달된다. 물질적인 것에 치중하지 말 것, 그리고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질 것. 여기서 등장하는 사례는 하룻밤에 목 매며 자기 욕망을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센 척하고 겉멋에 치중하며 내면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로린 힐이 비판하고 있는 상황은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그래서 이 곡의 메시지는 현 시점에서도 유효하다.
 
로린 힐은 지금도 대단한 위치에 있지만, 이 앨범이 나오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당시엔 대적할 사람이 없는 최고의 여성 래퍼였다. 1990년대보다 더 이전으로 가면 아까 언급했던 ‘엠씨 라이트’나 ‘솔트 앤 페파’가 있다. 이들은 여성들의 권리와, 주체로서의 모습을 주장하였지만 흑인 남성 래퍼들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형제애 때문에, 혹은 같은 커뮤니티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격하고 싶지 않아 하였으며, 그들을 끌어안고 가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힙합 내 상황이나 분위기는 달라졌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생각 없는 가사를 쓰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것을 지적하며 다른 음악들을 하고 있다. 나의 견해로는, 내 사람이라고 생각할수록 잘못된 부분은 더욱 말을 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Doo-Wop”은 참 좋은 노래이다. 로린 힐의 노래는 앞으로 몇 곡 더 소개하고자 하며, 그때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 블럭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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