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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 에코 “행복한 나를” 
 
음악칼럼 ‘블럭의 한 곡 들여다보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블럭(bluc)’님은 음악웹진 스캐터브레인의 편집자이자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의 운영진입니다.   www.ildaro.com  

 

▲ <응답하라 1994> OST  김예림의 "행복한 나를"
 
요즘 “응답하라 1994”라는 케이블 드라마가 유행이다. 사실 나는 드라마의 내용을 잘 모르지만, 이 드라마와 함께 1994년 즈음의 것들이 함께 유행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당시의 음악, 옷, 삐삐 등 그 때 존재했던 모습들이 많은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젊은 층은 드라마를 보며 ‘풋풋함’이라는 과거의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한다. 극 자체가 지닌 흡입력도 분명하게 있지만 ‘순수함’과 같이 요즘은 느끼기 힘든 감정들이 떠오르게 해준다.

 

오늘 고른 곡은 이 드라마 OST 중 하나인 “행복한 나를”이라는 곡이다. 원곡을 부른 에코는 1996년 데뷔하였으며, 이 곡은 두 번째 앨범 타이틀 곡이었다. 이후 두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 나갔으나 멤버 교체 및 인기 부진으로 2000년 활동을 중단하였다. 이번 “응답하라 1994”의 OST로 수록된 곡은 신인 김예림이 리메이크한 버전이다.

 

다시 이 곡을 들으며 느낀 점이 있다. 곡의 가사는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많은 이들의 로망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만나는 사람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상대방에게 느끼는 것이다. 가사를 쓴 사람도 여성이고 노래를 부른 사람도 여성이지만, 누군가는 이 곡의 가사를 두고 ‘모든 남성의 로망을 잘 투영한 곡’이라고 하였다. 실제 이 곡은 허각, 홍경민과 같은 남성 아티스트들을 통해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그들이 똑같이 불러도 어떤 부자연스러움이나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반대로 남성 아티스트가 부르면 ‘여성의 로망을 잘 투영한 곡’이 된다. 실제로 이 곡에서 ‘너’와 ‘나’의 성별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 가요 속에서 신파적인 요소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그녀’라는 단어가 곡에서 빈번하거나(이럴 때는 대부분 그녀가 ‘획득’의 대상이다.) 성별에 따른 역할 모델에 충실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행복한 나를”과 같은 곡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편하게 들을 수 있다.

 

 

내가 연애를 권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다>에서 “커플 권하는 사회”라는 기사가 보도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회는 커플을 권유한다. 아니, 강요한다. 정확하게는 젊은 이성애 커플 중심의 사고가 만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젊은 이성애 커플들의 문화가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들의 데이트는 표준화된 몇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수가 사용하는 10진법에 맞춰 기념일을 챙기고, 더불어 둘 간의 만족을 위한 것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애 방식에 익숙하다. 그러한 커플 문화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들도 엄청 많다.

 

글 하나에 담기 어려울 만큼 ‘강요되고 권력화되는 연애’ 문화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연애가 범죄는 아니지 않은가. 다만 좀더 스스로에게 기쁨이 되는, 그리고 건강한 연애를 만드는 것 역시 과제가 아닐까 싶다. 

 

▲ 원곡이 수록된 에코의 앨범 <voice of eco> 표지 
 
이번 겨울은 유난히 커플들의 고민 상담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느낀 건, 과연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 상대를 만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물론 감정 소모를 하거나 두 사람 간의 만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정신적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밀고 당기기’ 식의 과정이 고통이라면, 솔직히 나는 가학/피학 성애자가 아닌 이상 그런 것들을 왜 계속하는지 모르겠다. 특히 서로의 동의가 없이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관계를 주도하여 갈등이 생길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남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연애를 하며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좀 더 많다는 걸 새삼 느낀 요즘이었다. 실제 모든 이들이 바라는 관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나를” 곡의 가사에서 나타나는 관계라면 다들 노래처럼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이상적이고, 순수하고, 계산이 반영되지 않은 듯하다. 특히 “넌 가끔은 자신이 없는 미래를 미안해 하지만”과 같은 부분이 그렇게 느껴진다. 여기서 미래가 둘 간의 관계의 미래인지, 혹은 좀더 해석해서 현실적인 미래를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너와 함께라면 언제나 행복하다’는 내용이 진솔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관계의 행복함은 연애에 있어서 가장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상적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연애에서 사람, 혹은 사랑은 쏙 빠진 관계와 섹스만 남았다고들 하는 시점에서, 다들 좀더 스스로와 상대방의 행복을 생각하고, 관계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말인데, 솔로는 솔로대로 커플은 커플대로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특히 요즘같이 사회적으로 분노하고 싸울 일이 많은 시점에서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 블럭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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