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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 ‘음식’에 얽히고설킨 나의 이야기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함께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www.ildaro.com

‘이상한 나라의 여연’ 글을 쓰다
 
공상밥상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산골에 있는 집을 나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떨어져 ‘이상한 나라의 여연’이라도 된 것처럼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서울 생활은 이동 거리는 넓은데도 움직임은 적고, 눈 돌릴 일들은 많은데 이상하게도 하루하루는 허망하게 흘러갔어요. 아마도 그때 저에게는 ‘집을 벗어난다’는 것 외에 주변의 분주함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별다른 목표와 꿈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상을 허무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어떤 ‘일’이 간절히 필요했던 찰나에, ‘공상밥상’ 연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맨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에다가 옮기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적으면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사실이 마냥 기뻤어요. 하지만 한 편 한 편을 쓰면서 자의식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네가 쓸 수 있는 전부니? 더 잘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는 글 쓰는 일이 더 이상 기쁨이 아니라 고통으로 변했습니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주제를 정하고, 정보를 찾고, 음식을 하고, 그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건 사소하게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요령도 경험도 부족한 저는 여유를 가지고 그 과정을 즐기지 못했어요. 글을 쓰는 동안 제 생활은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무너졌는데, 말하자면 밤을 꼴딱 세고, 주변을 어지르고,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거죠. 다 쓰고 나서도 ‘해냈어!’ 하면서 잠깐 동안 방방 뛰다가, 다시 ‘아, 또 시작이구나. 다음엔 또 뭘 쓰지?’하고 한숨을 내쉬기 일쑤였습니다.
 
마음이 부담스럽고 힘들면 저녁에 괜히 뭔가를 요리한답시고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면 밤에 혼자 난장판을 치우고,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끙끙거려서 다음날 아침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글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죠. 아침 일찍 해가 뜨자마자 비몽사몽 해롱거리며 낡은 디지털 카메라로 전날 만들어놓은 음식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지쳐 나가떨어졌고요.
 
몸과 마음에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음식을 만드는 그 공간이 ‘내 부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자기 공간이 없는 청년이 요리칼럼을 쓰기란 쉽지 않았어요. 뭘 만들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시간을 잘 맞춰야 했고, 조리도구도 부족했던 데다가, 여유롭게 재료나 조리도구를 사서 쓸 만 한 돈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가지고 핑계를 대는 건 그만둘게요. 결정적으로 저에게는 이 칼럼을 쓰는 일에 온 마음을 다 바칠 수 있을 만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온갖 강좌나 모임들을 찾아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도서관에 처박혀서 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책들을 읽었죠. 전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공허해지고 그 공허함과 멍함을 참을 수 없어서 계속 움직여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하도 정신 없이 돌아다니니 주변에선 ‘칼럼은 그냥 여유시간에 글 쓰는 연습하는 거 아니니?’라는 반응을 보였고, 그런 반응들은 부메랑처럼 다시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주변에선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써라’고들 했는데, 제가 쓰고 싶은 글은 그런 게 아니었거든요. 저는 진지한 글, 삶에 시사점을 던져주는 글, 내용이 알찬 글을 쓰고 싶었어요. 턱없이 부족한 내공과 빈틈투성이인 스스로의 글 솜씨에 절망하기는 했지만 말이에요.
 
참 이상하죠. 이렇게나 끙끙댈 거였으면서 애초에 왜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일 년 동안이나 연재를 하겠다고 성급하게 자원한 걸까요? 그건 ‘음식’에 얽히고설킨 제 이야기들을 글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십대에서 이십 대 사이의 과도기를 겪던 저는 겉으로는 꽤나 윤리적인 시선을 가진 청년으로, 자신감이 넘치고 단단해 보였을지 몰라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갖가지 불안감과 분노가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맙소사,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선택할 권리를 다 빼앗기고 통제만 당하면서 살았어.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야 한다.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그런 가치관들을 잔뜩 주입 받았으니까, 앞으로 뭘 하건 언제나 이것들이 내 발목을 잡을 거야.” 그렇게 말도 안 되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상징했던 것이 바로 음식입니다.
 
먹거리를 돈으로 사는, 도시의 방식 

▲ 산 속 집을 나와 도시공간에 섰을 때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 여연 
 
집에 있을 때 ‘먹는 것’은 단순히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고, 그걸 요리해서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었어요. 일 년 농사를 위해서 밭에 거름을 내고, 모종이나 씨앗을 심고, 풀을 뽑고, 거둬서 저장하는 것까지. ‘먹는 것’이 곧 ‘사는 것’이었다는 편이 맞는 말이겠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는데, 그 일은 결코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정신노동이 아니었습니다. 몸을 움직여서 이랑을 만들고, 풀을 매고, 채소를 따오는 일들이었던 거죠.
 
일을 한만큼 집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신선한. 살아있는. 갓 따온. 직접 요리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그런 음식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바깥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무작정 동경했어요. 하지만 자라면서 점점 더 집에서 먹는 매 끼니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낡은 부엌에서 몇 없는 조리도구를 가지고, 흙 묻은 채소를 씻고 썰어 천천히 만든 음식들. 저 역시 집에서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면서 그런 식으로 요리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몸에 익혔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까지 좋은 먹거리를 접하면서 건강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가족 덕분이에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적인 부분들에서 지나치게 통제를 많이 당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다 보면 먹을 수도 있지’란 마음으로 라면이나 과자나 빵 같은 것들을 조금만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더라면, 음식은 되도록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 머릿속에 이렇게나 뿌리 깊게 박히지 않았더라면. 집에서 나와 갑작스러운 행동의 자유를 얻었을 때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겠죠.
 
산 속 작은 마을에 숨어있는 깊숙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 때는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의 방식과 거리를 둘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집을 나와서 제 발로 도시공간에 발을 딛고 섰을 때는 사소한 것들부터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도시는,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공간으로 보였어요. 골목마다 흘러 넘치던 마트, 편의점, 온갖 음식점, 카페, 빵집 등등.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일하면서도 먹고, 공부하면서도 먹고, 놀면서도 먹고, 서로 만나 이야기하면서도 먹고 마셨어요. 일요일이면 골목골목을 가득 메운 쓰레기 봉지들. 산더미처럼 쌓인, 빈 피자와 치킨 상자들. 그걸 보면서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돈만 있으면 가장 손쉽게 사먹고, 남은 쓰레기는 버려서 어디론가 치워버리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식처럼 느껴졌거든요.
 
세상 속에서 바쁘게 살아온 이들에게는 음식을 해먹을 시간에 ‘더 중요한 일’, 그러니까 공부라든지, 일이라든지,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방식일지는 몰라요. 하지만 처음에 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먹거리를 돈으로 사는 것이 세상의 방식이라면, 제가 집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은 뭐였을까요? 일하고 요리하기 싫어서 엄마와 부딪히고, 땀과 흙투성이가 됐던 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쓰레기를 내놓지 않고, 재활용하고, 자급자족하고, 가능하면 기계를 쓰지 않고 ‘먹고 사는 일을 하는’ 그 방식은. 결국 모든 일상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허무해져 버리는 거잖아요.
 
엄마의 방식이 ‘옳은 방식’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옳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제 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매 순간 옳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대다수는 그렇게 살지 않아. 이제 그만 벗어나. 너도 평범해지려고 노력해 봐.” 정말이지 전 과도기를 거치고 있었나 봐요. 남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면서 사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자신의 방식’을 만들지도 못했던 거죠.
 
마음을 탐색하며 나만의 방식을 찾아서
 
세상을 헤쳐나가는 저의 방식을 찾아가게 된 건,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채 스무 편이 되지 않는 이 글들을 쓰면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들을 실컷 읽었습니다. 밥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부터, 농업과 먹거리의 역사에 대해서, 채식에 대한 온갖 새로운 논쟁들에 대해서, 사라지는 벌들에 대해서.
 
글로 쓰지는 못했지만, 식량부족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어떤 세계와, 비만에 시달리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서. 설탕과 밀가루와 기름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에 대해서. 새로이 공부한 것들을 근거 삼아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마음속에서 잣대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때로 스무 살의 저를 지독하게 괴롭히기도 하는 기다랗고 단단한 잣대에요. 이 잣대는 시시각각 ‘올바른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 네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제대로 소비하고 있는 걸까. 제대로 먹고 있는 걸까. 아직 저는 흔들립니다. 여전히 혼란에 빠지고, 거창한 마음을 먹었다가도 현실과 충돌해서 다시 절충을 해요. 하지만 잣대는 여전히 거기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그 잣대가 제게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기쁘게도 말이에요.
 
마지막 순간까지 ‘멘붕’에 덜 빠지고, 차분하고 꾸준하게 더 많은 글을 써서 연재를 마치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아직 뭔가를 써서 내보일 때가 아니라,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읽을 때’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쯤에서 글을 끝낼 수 있어서 기뻐요. 뭐든지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기는 이제 끝을 내고, 조용히 시간에 쫓기지 않고 공부를 해나가려고 합니다. 제 방식을 찾기 위해서요.
 
지금 돌이켜 보니, 서울에 처음 올라와 살게 된 시골 청년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온갖 삽질들을 하면서도 1년 동안이나 글을 연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10개월 동안이나 자신들의 공간 한 칸에 저를 머무르게 해주고, 글 쓸 기회를 만들어 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서 그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공상밥상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이, 맛있고 행복하게 밥을 먹으면서 음식에 담긴 이야기들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음식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걸 아까워하지 않기를. 가까운 곳에서 자란,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기를. 덜 정제된 자연스런 음식을 먹으면서, 일상을 즐길 수 있기를. 먼 곳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잊지 않기를. 다이어트 때문에 스스로에게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를. 음식다운 음식을 먹기를.
 
제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여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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