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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공백의 발견> 학교 급식 조리원으로 일하는 M님
경력단절이라는 꼬리표는 왜 여성에게만 붙을까? 여성들은 왜 노동시장으로부터 단절을 겪게 된 것일까? 출산과 양육만이 경력단절의 이유일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여성들의 공백(경력 단절)의 문제와 현실을 알아내기 위해 ‘일하는 여성’들과 만나, 여성노동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짚어보는 인터뷰를 일다와 공동 연재합니다. www.ildaro.com
학교 급식조리원으로 만4년째 일하는 파견노동자
흔쾌히 <‘공백’의 발견> 인터뷰에 응해주신 M님(43세)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에서 나왔을 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약속을 잡으려 전화 드렸을 때 목소리가 참 야무지게 느껴졌는데 이야기를 나눌 장소도 미리 알아두신 덕분에 만나자마자 바로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학을 다니던 중 선배의 소개로 학습지 교사를 1년 반 정도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게” 하시다 결혼하면서 그만뒀다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학습지 교사는 4대 보험을 포함해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다. 그럼에도 ‘신나게’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워낙 M님이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기 때문이리라.
M님은 외국인학교의 급식 조리원으로 일한 지 4년이 되었다. 학교 소속이 아닌, 급식업체의 파견 노동자이다. 처음 들어갈 때는 파트타임으로 하루 4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요. 2년 정도 시간제로 일하다가, 지금은 오전 7시 반까지 나가서 오후 4시 반까지 일해요. 말로는 ‘정직원’이라는데 이것도 1년에 한 번씩 계약 갱신하니까 비정규직이죠.”
지난 인터뷰 기사 “20년을 일했지만 이력서에 쓸 게 없어요”의 주인공인 D님도 급식조리원으로 잠깐 일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났다. 몇 십 명이 아닌 천 명 단위의 끼니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거의 ‘삽’과 맞먹는 주걱과 국자가 필요하고, 그것으로 계속 음식을 볶거나 저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노동 강도가 상당할 것 같은데, 어떻게 M님은 6년 동안 급식 일을 해올 수 있었을까?
“저희는 학생이 400명 정도에요. 일하는 인원은 열명 정도 되니까 일반 한국학교들에 비해 조금 여유 있는 편이에요. 일의 강도는 어차피 비슷비슷한데, 오래 일하다 보니까 능숙해지더라고요. 다른 데는 학생 1천명 기준으로 일하는 사람 열명인데, 우리 학교는 4백명에 열명이니까. 그래서 제가 좀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민우회가 성산동으로 이전하기 전 사무실 위치는 서울시교육청 앞이었다.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을 먹기도 했지만 일반 음식점보다 값이 싼 교육청 식당을 종종 이용했다. 별 생각 없이 배고픈 마음에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아먹기만 했지, 이 식사를 만드는 분들이 어떤 과정으로 밥과 반찬을 만들어 주시는 지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 M님은 급식업체에서 파견되어 한 외국인학교 급식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 일다
M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야 궁금해진 것, 급식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4년 동안 일하고 있는 M님의 역할이 무엇인지 여쭤보았다.
“그날 들어오는 식자재를 분리하고 다른 조리원들에게 어떻게 준비하라고 지시도 하죠. 검수도 영양사와 같이하고, 그날 메뉴 나갈 것에 대해서 아침에 회의해요. 음식 메뉴에 따라서 저는 더 바쁜 곳에 투입되는 거에요. 업무 분담이 딱 되어있어요. 세팅하시는 분, 음식 손질하시는 분, 다 자기 맡은 분야가 있으니까. 음식량을 조절하는 게 저의 주 업무에요. 이 학교에는 유치원부터 고3까지 다 있는데, 한창 먹을 때니까 막 퍼주면 나중에 감당이 안돼요. 시간대별로 오는 학생들이 다르니까, 이것도 스트레스에요. 부족하면 금방 해서 내놓아야 하니까. 배식하는 것도 그렇고, 노하우가 있어야 하죠. 전문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려요.”
그날 그날 받는 식자재를 검수하고 조리에 따라 분리해놓고 조리를 시작한다. 지금 일하는 곳의 급식 조리원들 중에서 제일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영양사 다음으로 실질적인 ‘지시’를 하며 비어있는 곳에 자율적으로 들어가 일한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다 전일제로 일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적응 하고 경력을 쌓고 있다. 음식량을 조절하거나 배식을 하는 데에도 노하우가 필요한 일인 만큼, 시간을 들여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방학 땐 무임금, 경력도 인정되지 않는 일자리
학교 급식은 급식을 먹는 학생들과 학교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교직원과와 달리 조리원은 학생들이 없는 방학 기간 동안 계속 일하고 싶어도 쉴 수밖에 없다.
“여기 일이 급여가 별로 많지가 않아요. 세금 떼고 나면 130만 원 정도. 월급제가 아니라 시간제 개념이에요. 외국인이 경영하는 회사라 그런지 철저하게 ‘무노동 무임금’을 지켜요. 방학 때는 월급이 아예 없는 거에요. 이 때문에 많이들 그만두세요. 생계 때문에 일을 했으면 아마 그만 뒀을 것 같아요. 저도 그만둘까 생각해봤는데 재취업하는 것도 겁이 나고. 요즘 같은 시기에 일자리가 거의 비정규직이잖아요.”
올해 학교 방학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여쭤봤더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방학 때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거든요. 이곳 경력이 있으니까, 국공립 중학교 쪽이나 어린이집에서 일할 수 있으면 준공무원으로 호봉도 올라가니까. 그런데 그런 곳은 자리가 잘 안 나요. 급식을 직영으로 하는 데가 있고 위탁 주는 데도 있는데, 지금 있는 곳처럼 위탁으로 나가는 데는 아무래도 힘들어요.”
노동에 비해 적은 급여와 낮은 처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노동 조건을 가진 국공립학교 급식 쪽으로 취업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고 한다. 일하는 지금 회사와 달리, 경력이 인정 되어서 ‘호봉’도 오르고 노동 강도도 적당한 일자리를 원하는 건 노동자로서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뭔가를 하려고 알아봐도 시간이 안 맞았어요”
급식 일을 처음 시작한 건 30대 후반 때였다. “어디 취업하기 애매한 나이고, 전문성 있는 경험도 없고, 당시만 해도 시시한데 들어가기도 그랬어요. 그런데 일자리가 너무 제한적인 거에요. 그 동안에 제가 너무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잘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벼룩시장이랑 지인들한테 물어서 이력서를 막 넣어 봐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더라고요.”
M님은 결혼 후 아이를 키우다가 첫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무료한 일상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우연히 동네 도서대여점을 인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재취업을 하려고 일반 회사에 경리직으로 지원했더니 면접 때 돌아오는 질문은 “아이 데리고 어떻게 출근하실 수 있겠어요?”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영업을 택하는 것이 빠르고 속 편했을 터. “뭔가를 하려고 알아봐도 시간이 안 맞았어요. 애 맡기려면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퇴근해야 하는데,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영업 쪽으로 생각했죠.”
2년 정도 도서대여점을 하다가 둘째가 생기는 바람에 다시 ‘경력 단절’의 시간이자 육아의 시기를 거쳤다. 그리고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길 수 있었을 때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게 되었다. 이 일도 도서대여점처럼 동네에서 우연찮게 지인의 권유를 받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 아이가 심리적인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어머니로서 역할을 해야 했다고. 그렇게 2년 간 해온 음식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M님이 “이것저것”이라고 말한 일은 학습지 교사, 도서대여점, 그리고 음식점 운영 일이다. 일의 경험에 ‘일관성’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아이 양육과 어머니 노릇에 대한 가족의 필요가 꽤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집 근처에서 자영업을 했던 것이나, 지금의 학교 급식 일을 하게 된 배경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지금 일하는 학교가 집하고 가까워요. 걸어 다녀도 되는 거리인데 아침에 애들 케어(care) 때문에 차를 가지고 다녀요. 5분이면 출근하죠. 이 일을 하는 제일 큰 이유는 거리가 가까운 것 때문이에요. 차라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괜찮은데 고학년이 되면 케어를 많이 해줘야 하더라고요. 학교 갔다 오면 먹을 것 챙겨줘야 하고. 제가 일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에 애들도 딱 와요.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하고. 한창 먹을 시기잖아요. 애들 위주로 생활하다 보니까 전문적으로 나가지 못했죠. 애들 크고 나니까 좀 후회는 되요.”
‘시간제 일자리’가 대안일 수 없는 이유
남편도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긴 했지만, M님의 표현으로는 “조금 조금씩”이라서 크게 힘이 되진 않았던 모양이다. 거의 M님이 집안일과 아이 돌봄을 도맡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간제 일자리가 적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M님은 이런 바람을 이야기했다.
“파트타임도 많이들 그만둬요. 한 달 만에 그만두는 분도 계시고. 어떤 경우냐 하면 애들 유치원 보내놓고 일하러 왔는데, 갑자기 아이를 돌보러 가야 하는 거에요. 파트타임이면 4시간인데, 그 사이에도 아이들 때문에 중간중간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나마 M님이 일하고 있는 학교는 급한 경우 시간을 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했다.
“여기선 빠져도 빠진 만큼 ‘무임금’이라 눈치 안보고 빠질 수 있긴 해요. 저도 사실은 작은아이 학교가 바로 뒤라서 급하면 뛰어가면 되니까. 대신 다른 조리원 분한테 양해를 구하면 되고. 우리 회사는 약간 융통성은 있어요. 영양사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지만, 맨 위에 있는 사람이 좀 도와주면 나아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애가 열이 나서 병원 가야 해서 한두 시간 늦게 출근하는 게 허용되죠. 그래서 제가 이 학교에서 더 장기간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집도 가깝고.”
M님의 이야기는 아이 돌봄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노동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조직적인 방안을 마련해줄 경우에,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들이 얼마든지 일을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급한 일이 생긴 경우 좀 늦게 출근할 수 있다거나, 잠깐 자리를 비워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M님도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었다.
파트타임이든, 전일제노동이든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서로 다른 상황과 여건을 충분히 고려한 정교한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일 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방식은 단순히 시간제 일자리만 많이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늦게까지 운영하는 보육시설만 있었어도…
그렇다면 과연, M님의 경우에 어떤 조건이 받쳐줬더라면 애초에 일의 ‘단절’이 생기지 않았을까?
“회계 쪽이 저한테 좀 맞았어요. 동생이 회계사사무소에서 일하는데, 부러운 것이 아이가 없어요. 사무장까지 올라갔는데 일에 매진을 했어요. 급할 때 연락이 와서 한 달 정도 도와줬어요. 바쁠 때는 밤 10시에 끝나서 집안이 엉망진창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시기를 이겨내서 계속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당시에 작은 아이도 어렸고. 작은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면 항상 데려와야 했고, 큰아이가 스트레스 받았죠. 잠깐 동안이었는데도. 아마 그때 그 쪽으로 나갔으면 동생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올랐겠죠. 그게 제일 아쉽기는 해요.”
무엇보다 M님은 아이를 믿고 맡길만한 보육시설이 부족한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만약 늦게까지 운영하는 보육시설만 있었어도, 그때 조금 더 버텼을지도 모르겠네요. 10년이 지났는데도 왜 이렇게 변함이 없는지 몰라요. 보육시설은 많이 생겼다고 하는데도. 일하는 엄마들은 어쩌라는 건지.”
사회가 안정적인 보육정책을 펴고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예산’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괜찮은 보육시설이 있었다면, 아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었다면, M님의 일 경력은 지금과는 다른 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들에게 ‘내가 아기 봐줄 테니 일해라’ 하죠
결혼과 임신, 출산, 양육으로 인해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의 역사는 동서양을 통틀어 매우 깊다. 루이스 A.틸리와 조앤W .스콧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유럽에서도 여성들이 집안일과 양육을 전담했고, 이로 인해 생기는 ‘공백’ 때문에 고용주에게 선호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혼여성은 임금소득에 대한 헌신이 낮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조건과 부합하는 임시적이고 간헐적인 일거리들에 몰리게 되었”다. “노동시장을 오래 떠나 있다가 다시 노동시장으로 되돌아온 나이든 여성들은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낮은 숙련 수준과 불연속적인 취업 경험이 그들을 저임금, 미숙련, 비정규적인 일자리에 한정시켰다.”
아이 돌봄과 시장노동을 원활하게 병행하기 위해 선택한 일-도서대여점과 음식점 운영 그리고 지금의 급식 조리원-에 대한 M님의 선택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본인의 경험 상 M님은 ‘경력 단절’이 자신의 여동생들에게까지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제 막내 동생이 작은아이를 임신 중인데, 큰 아이가 다섯 살인데도 엄두를 못 내요. 젊은데도 아이 때문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하고. 그래서 내가 봐줄 테니까 일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해요. 내가 경험해봤기 때문에 동생들이 아기 낳으면 내가 키워준다고 얘기하죠. 저처럼 이것저것 전전하지 않게.”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서는 단시적인 정책이 아닌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여성들의 다양한 현실을 반영한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 M님이 동생의 아이를 대신 맡아주면서까지 동생들에게 ‘경력 단절’을 대물림 시키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는 만남이었다. ▣ 강선미
※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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