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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미니즘> “몸매불문 나 되기” 캠페이너 김민지

<일다>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대안담론을 만듭니다.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www.ildaro.com
 
“야식을 먹을까, 말까?” 하루살이가 짝짓기 하듯 정신 없이 바쁘게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나는 고민한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엔 빵집이 즐비해 있다.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온갖 종류의 빵들이 반지르르 하니 맛있어 보인다. 자꾸 눈길이 가지만 애써 피한다. 몸은 부서질 것 같이 피로하고, 배는 주리다.
 
 배고픈데 왜 안 먹지?
 그거야 뭐, “살 찔까 봐”.
 
‘몸매 관리’라는 이름의 새장
 
식욕은 죄이다. 많이 먹으면 안 된다. 먹더라도, 저지방이나 저칼로리의 건강식품만 골라먹어야 하고, 일정량을 넘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많이 먹었다 싶으면 운동으로 땀 흘려 죄를 보상해야 한다. 군살이 붙으면 패배다. 이 이상한 규율들은 ‘몸매 관리’라는 이름의 새장을 지탱하는 헌법 같은 것이다.
 
나는 기억할 수 없을 때부터 이 새장 안에서 살았다. 어릴 때부터 식욕이 왕성했던 나는 항상 통통한 편에 속했다. 중학교 땐 또래보다 훨씬 큰 가슴을 자랑했다. 살집이 있었어도 적당히 맞아 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내 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시선은 통통한 나의 몸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친척부터 시작해서 이웃이나 담임선생님까지 “민지는 갈수록 살이 찌는 것 같다?” 라던가, “그만 먹고 살 좀 빼야지?”라는 인사말들로 내 몸의 변화를 두 눈 부릅뜨고 감시했다.
 
가장 가까운 감시자는 친구들이었다. 여자애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서로의 팔뚝과 손목 가늘기를 비교했고, 옷을 잘 입는 순서로 인기 순위가 매겨졌다.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거울을 보며 “나 살 많이 쪘지?”라고 속상해하거나, 살 좀 빼라며 어떤 운동이 살이 많이 빠지고 어떤 음식이 살이 찌는지 조언해줬다.
 
어릴 땐 친구들이 하는 말이 이 세상의 전부고, 어머니의 기대는 곧 사명이기 마련. 가랑비에 옷 젖듯 나는 편안한 내 몸을 벗고 그들의 “날씬한” 몸을 입기를 욕망하기 시작했다. 새장이었다.
 
새장 속 ‘식이장애’ 기생충
 
중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식이장애라는 이름의 기생충이 알을 깠다. 그때 우리 가족은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는데, 나는 그 불편한 현실을 피해 홀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급격한 변화를 어떻게든 나 자신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했던 나는, 우리 가족이 겪던 어려움을 전부 내가 부족한 탓으로 돌려야 했다. 그런 내게 유학이라는 특권은 걸맞지 않아 보였다. 결국 나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죄책감을 달래는 길은 부족한 나를 개선해서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뿐이었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은 단연 살을 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중이 급격히 줄었다. 방학을 타 집으로 돌아오니, 가족과 사람들은 야윈 나의 모습을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게 여겼고, 부러워했고, 사랑해주었다. 결국 ‘체중 감량=사랑과 인정’이라는 잘못된 공식이 성립되어 버렸다.
 
식이장애 기생충은 내 귀에 대고 “너는 뚱뚱해, 더 살을 빼야 해” 라거나, “이걸 먹다니, 넌 의지박약에 구제불능이야” 라거나, “계속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세상이 널 버릴 거야” 같이 폭력적인 말들을 쉬지도 않고 퍼부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에 익숙해진 나는 목표 체중에 도달했는데도 살 빼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오히려 빼면 뺄수록 더 뚱뚱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요요 현상으로 다시 살이 찔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조금이라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내 생명을 지탱하는 양분이어야 할 음식은 경계의 대상이자, 자기 학대의 도구로 돌변해 버렸다.
 
결국,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해야 했다. 두 다리가 좁아 터질 것 같은 청바지에 얼마나 헐렁하게 들어맞는가가 그날 기분을 결정했고, 경직된 체중감량용 식이요법에 맞춰 하루 계획을 짜느라 하고 싶은 일이나 만나고 싶은 사람도 피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를 돌보기는커녕 공격했다.
 
배고파도 먹지 않고, 아파도 뛰었다. 호박엿처럼 늘어지는 시간을 견딜 수 없을 만큼 몸이 지쳤던 나는 그 시간들마저 저주해야 했다. 병은 또 다른 병-공황장애와 PTSD-을 불러와 영위하던 일상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죽음이 날 장난하듯 쥐고 흔들었다. 3년이 넘도록 무월경이었는데, 훗날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호르몬 주사를 맞고 겨우 피를 흘렸다.
 
결국, 식이장애가 불러온 온갖 가지 합병증에 못 이겨 나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회복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기생충 죽이기  

▲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은 식이장애로 이어져, 내 삶의 주인 되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김민지_“몸매불문 나 되기” 캠페인 
 
몸무게와 음식에 대한 집착은 얽히고설킨 마음 속 응어리가 단순히 표현된 상태일 뿐이다. 그래서 먹는 습관을 고치거나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식이장애를 치료할 수 없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한 맺힌 몸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고, 억눌려 썩어버렸던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고, 삶의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무엇보다 식이장애 기생충이 하는 말에 저항하여 나의 감정과 욕망을 표현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과 대화하고, 식이장애나 타인의 기대로부터 나의 욕망을 분리해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식욕은 죄’라는 새장의 규율을 하나씩 하나씩 깨뜨렸다.
 
그리고 먹었다. 먹을 때마다 몰려드는 죄책감을 관조하고 식욕에 숨겨진 감정과 욕망을 관찰했다. 그렇게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나를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낼 때마다 새장 문이 조금씩 열렸지만, 그와 함께 외로워졌다. 타인의 식욕과 나의 식욕을 분리하면서 생긴 틈에 외로운 피해의식이 자라났다. 나만의 이야기와 욕구에만 몰입하다 보니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겨를이 없었을 뿐 더러, 다들 아무렇지 않게 ‘정상적’으로 잘 사는데, 나만 ‘비정상적’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마치 내가 세상의 모든 고통을 아는 양 뒷짐을 지고 타인을 내려다보는 오만함으로 피해의식을 달래기도 했다.
 
식이장애 기생충을 죽이고 새장에서 탈출하는 것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탈옥하는 야윈 죄수를 근육질의 힘 센 경찰이 단번에 따라잡아 다시 집어넣는 것처럼, “식이장애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극복했다!”고 행복해하는 순간 식이장애 기생충이 나를 새장으로 다시 구속시켰다.
 
누가 만든 새장인가
 
이런 외로움과 반복되는 좌절에 지쳐갈 즈음, 여성학 수업에서 페미니즘을 만났다. 페미니즘은 식이장애 기생충을 죽이는 것에만 몰두하던 나를 새장 밖으로 잠시 물러나 ‘몸매 관리’의 새장이 왜 하필 그 모양으로 만들어져야 했는지, 그리고 과연 아름다움의 ‘정상적 기준’이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했다.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부당한 폭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에 들어가면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몸 이야기뿐이었다. “그녀가 8kg 감량에 성공했다, 다이어트 비법은? 여기를 클릭하세요!”라던가, “연예인 누구누구의 섹시한 뒷태와 가슴노출이 화제”라던가 하는. 여성을 보는 세상의 눈엔 그녀의 허벅지나 가슴 크기, 각선미와 V라인 밖에는 없었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특별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몸매 관리였던 것이다. 아무리 다방면으로 뛰어나고 의미 있는 정치적 활동을 하더라도 머리모양이 헝클어지거나 군살이 붙으면 그녀는 인정받지 못했다.
 
도시 전체가 다이어트와 성형 광고로 만들어진 레드카펫이 깔린 오스카 시상식 같았다. 그 피할 수 없는 레드카펫을 즈려 밟으며 삶을 걷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미란다 커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에 시달리게 된다. 수많은 광고들은 일제히 나에게 시선을 꽂고 “너도 미란다 커가 될 수 있어! 단, 우리 헬스장에 재물을 바치고 쳇바퀴를 돌아야 해!” 라거나, “그렇게 작은 눈과 각진 턱으로 시집이나 가겠어? 얼굴 예뻐지면 남편 능력도 좋아져. 내가 색종이 오려 붙이듯 예쁘게 만들어 줄게” 라거나, “네가 불행한 건 네가 뚱뚱해서야. 질병 같은 너의 본래 체질을 이 약 하나면 확 바꿀 수 있어” 라고 쉴새 없이 외친다.
 
아무리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어도 헬스장과 피부과와 성형외과에 정규회원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이 도시의 시민 자격을 잃을 것만 같은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레드카펫을 향한 이 외침들은 사실 여성의 몸과 식욕은 문제의 원인이자 질병이기 때문에, 관리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 속 여성이 (말 그대로) 뼈를 깎고, 살을 자르고, (수도승도 아닌데) 굶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이어트와 성형에 매달려 자기 가치와 존재의 당위성을 찾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많은 여성들이 화장 없인 ‘추하다’며 밖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다.  

▲ 도시 전체가 다이어트와 성형 광고로 도배된 레드카펫이 깔린 오스카 시상식 같다. ©김민지 
 
몸매 관리 새장의 규율에 따라 폭력에 버금가는 자기 학대를 감수하면서까지 나는, 그리고 우리는 굶었다. 그러면서 그것이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식욕을 절제하는 데 온 정신과 자원을 쏟다 자신의 숨겨진 재능과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면, 누구를 위해 굶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많은 여자들이 몸을 굶기고, 칼로 자르고, 다시 이어 붙인다. 그토록 갖고 싶은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인가? 식욕 절제와 몸매 조각에 성공하여 타인의 시선에 의해 욕망되어지는 여자다.
 
우리 사회는 사람의 가치를 판매용 고깃덩어리인 양 체중계로 측정하고, ‘정상 몸무게’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개인을 몹시 나무란다. 이러한 사회 환경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답지 않은 사람’을 날씬함 같은 외적 기준으로 이분화하여 차별의 근거를 만든다는 데 있다. 몸매 관리를 하지 않으면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되고, 직업을 구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생긴다.
 
특히 여자아이들과 여성에게 “살”은 임금, 직업, 사회적 지위, 결혼 등에 직결되는 요소로서, 끊임없는 감시의 대상이었다. 체중계 눈금의 고삐가 풀어지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패션잡지는 물론 일반 사람들의 증명자신에까지도 포토샵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보통 노력으론 달성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비현실적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하는 개인은 지치고 살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그러다 식이장애를 얻으면 인생의 게임에서 패배한 ‘루저’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대개 병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부끄럽고 무서워 전문적 도움을 받지 못해 혼자서 끙끙 앓는다. 식이장애 기생충이 몸과 영혼을 좀먹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런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새장 안 ‘우리’를 보다

 
‘나’를 가두던 새장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다시 보고 나니, 지금까지 미쳐 보지 못했던 ‘우리’가 있었다. 살과 식욕에 대한 걱정과 불안과 죄스러움, 그리고 타인의 시선은 나와 내 친구들, 동네 아이들, 어머니, 요즘 들어서는 남성까지 구속한다. 오죽하면 “너 살 좀 빠진 것 같다?”가 흔히 오고 가는 인사말로 정착되어 버렸을까. 나에게만 자기 학대를 부추기는 줄 알았던 식이장애 기생충의 목소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고, 외모로 인한 차별은 차별을 받는 개인 탓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페미니즘이 보여 준 세상은 한없이 불편했다. 새장에 갇혀 자기 학대를 하며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면, 식이장애 기생충이 갉아먹는 고통이 떠오르며 마음이 미어졌다. 그러면서도 새장에서 나가길 두려워하는 나 자신이 부정의를 방관하는 위선자로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현실로 나의 무기력감을 정당화하곤 했다.
 
그렇게 쇠우리가 휘두르는 폭력의 불편함을 어쩔 수 없는,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려 할 때, 페미니즘은 나를 다시 한번 더 눈뜨게 했다. 미국의 극작가 이브 엔슬러(Eve Ensler)를 테드(Ted.com)에서 화상으로 만났을 때였다. 그녀는 억압된 세상을 순회하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여성들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희곡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썼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묵살되어 지속되던 차별과 폭력이 그녀 덕에 사회 부정의로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억압되어있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위해 당당히 맞설 힘과 역량을 키웠고, 전 세계 곳곳에 동반자와 지지자가 생겨났다.
 
테드 강연 당시 암 투병 중이었던 이브 엔슬러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그리도 공허했는지 한 평생 기계처럼 바쁨으로 삶을 채워왔는데, 병상에 누워 몸을 뼈째 가는 듯한 아픔을 겪고 나니 나의 아픔이 세상 그 모든 억압된 사람의 아픔과 다를 바 없었다고. 순회 중 만난 버자이너들에 대한 온 갖가지 끔찍한 폭력, 어머니와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역할 모두를 완벽히 수행해야 하는 슈퍼우먼들의 고질적 피로, 가진 자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가지지 않은 자를 착취하는 광물전쟁, 인간만의 편의를 위해 고갈되는 자연자원과 생물다양성…. 그 모든 것들이 그녀 자신의 아픔과 다를 바 없다며, 그녀는 눈물 없이 울었다.
 
이브 엔슬러가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 온 메시지는 나의 아픔을 더 큰 누군가의 아픔으로 확장시켰다. 당연한 듯 행해지는 사회 속 온갖 폭력에 의문을 던지고 억압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힘을 싣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며, 나를 식욕과 식욕 사이에서 풀어주었다.
 
다양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 김민지_“몸매불문 나 되기” 캠페이너  hoperecov.blog.me 
 
페미니즘을 만난 후, 나는 새장 속에서 조용히 계속되는 폭력의 불편함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식이장애 회복 여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사회 구성원 모두는 제각기 다르며 있는 그대로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용의 문구를 작은 포스트잇에 적어 지하철과 학교 화장실 등 여기 저기 붙이기 시작했다. 큰 세상에 비하면 모래알같이 작은 포스트잇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지친 마음에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큰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처럼 새장에 갇혀 식욕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해 자기 학대를 하다 피 흘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의 아픔을 서로에 대한 위로로 바꾸어 다 함께 새장의 문을 열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회복 동그라미’라는 이름의 열린 공동체를 꾸려나가려고 한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자존감을 증진시키고 바디 이미지를 개선하는 워크숍을 열 계획이다.
 
이 활동들을 “몸매불문 나되기 프로젝트” 블로그(hoperecov.blog.me)에 기록하고 현황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상체중’이라는 기준으로는 보지 못했던 숨겨진 아름다움과 건강을 끄집어내어 그 지평을 넓혀 나아가기를, 아름다움의 ‘정상적 기준’이 휘두르는 폭력에 시달리지 않게 되기를 희망한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뉘첼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지 인식하지 못한 채 내뱉은 말들이 우리를 구성하게 내버려 두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를 더 아름다운 존재로 가꾸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아마도 세상은 계속 우릴 체중계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쩔 수 없다’며 계속 체중계 위에서 살기를 선택하다 보면 정말 판매용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사람은 판매용도, 상품도 아니다. 체중계에 올라갈 것인지, 내려올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는 한 삶의 주체이다. 체중계 위에서 불안에 떨기보다는, 숨은 아름다움을 꺼내어 세계라는 그릇에 담는다면, 체중계의 바늘은 우리를 더 이상 찌르지 못할 것이다.
 
무게를 재는 체중계에서 내려올 때, 비로소 삶을 담는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그곳엔 새장에 갇혀 있을 땐 볼 수 없었던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것을 인정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식욕과 식욕 사이에 있는 나를 만나게 해주고, 다른 종류의 수많은 고통으로도 시선을 열게 해줬다. 나아가 새장 속 폭력에 맞서고, 체중계에서 내려와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재정의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었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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