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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청의 LGBT 현수막 게시 불허에 부쳐 
 
“LGBT,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 (L:레즈비언 G:게이 B:바이섹슈얼 T:트랜스젠더)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지난해 12월 초, 마포구에 거주하는 성소수자 모임인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이하 마레연. maporainbow.net)는 이와 같은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마포구로부터 게시를 금지당했다.

▲  마포구에 거주하는 성소수자 모임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 에서 제작한 현수막 2개 이미지  
 
마포구 측은 ‘조건부 게시’ 의견을 내놓았다. 마포구청 내 광고물 관리 및 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일부 내용을 수정해야 현수막을 허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레연의 현수막이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5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 ‘청소년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구에 게이, 레즈비언이 많은 건 안 된다?
 
지난해 5월 이모씨(27)가 서울시내 11개 자치구에 성소수자에 관한 현수막 게재를 요청했을 때, 마포구는 협의 끝에 이를 허가한 바 있다. 당시 현수막의 문구는 다음과 같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서울시민 중 누군가는 성소수자입니다. 모든 국민은 성적지향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습니다.”
 
비슷하게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현수막임에도, 마레연의 현수막이 미풍양속을 해치고 청소년 보호와 선도에 방해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마포구 측의 설명에 따르면 성소수자가 ‘열 명 중 한 명’이라는 것은 “과장”된 내용이고, 게이 레즈비언 등의 단어 사용이 “직설적”이어서 문제가 된다고 한다.
 
“직설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되도록 입에 담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내뱉을 때 쓰는 말이다. 듣기 민망한 말을 함부로 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마포구청 측의 입장은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단어를 공적인 장소에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얘기로,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가 ‘열 명 중 한 명’이라는 것이 “과장”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아무리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심해도, 한 사회구성원의 6~10% 정도는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포구청이야말로 마포구민의 열 명 중 한 명이 성소수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마포구의 억지스러운 태도는 마레연의 현수막이 ‘서울시민’이 아닌 ‘지금 이곳’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모호한 덩어리로 있던 ‘성소수자’가 구체적인 마포구 지역의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로 나타나자 당황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현수막의 문구에서 말하고 있는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성소수자 자신이다. 혐오감을 적당히 위장할 수 있는 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열에 하나라니, 많기도 하다!
 
지난 대선 직후 김소연 무소속 후보가 마포구청의 처사에 항의하며, 마레연의 현수막을 대통령 낙선인사 현수막에 함께 넣어 걸었다. 그러자 마포구청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강제철거를 해버렸다. 통상적으로 낙선인사 현수막은 해당 선본에서 자진 회수하는 것이 관례이다. 김 후보의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한 것에 대해, 마포구청은 마레연의 현수막이 ‘불법’이기에 정당한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마레연의 현수막이 ‘불법’이 되려면,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미풍양속을 해치고 청소년에 해가 된다고 인정해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주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행위임이 명백하다.
 
‘인권’이란, 인류가 스스로를 위해 고안한 안전장치
 
마레연 회원들과 성소수자 차별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1월 14일부터 마포구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마포구청은 아직도 변화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오바마 미 대통령 연설에도 등장하고 있듯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은 타협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권을 천부적인 것이라 말한다. 한편으로 인권은 인간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인간의 품위와 위엄을 잃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골몰한 끝에 고안된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했다.
 
근대 이전의 제도화된 계급 차별을 겪으며 ‘인간은 평등한 존재여야 한다’는 깨달음이,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인권은 시민혁명 과정을 거쳐 근대 입헌국가의 헌법에 ‘기본권’으로 명시되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인권 개념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두 차례의 참혹한 전쟁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 잔혹한 학살극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휴지조각만도 못한 것이 되고, 인류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할 만큼 끔찍한 상황이 경쟁적으로 펼쳐졌다. 인간의, 혹은 한 사회의 욕망이 적절한 제어장치 없이 질주하기 시작했을 때 결국 어떤 상황에 도달하게 되는지 인류는 목격한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와 존엄성이, 이를 훼손하려는 것들에 대한 부단한 경계 속에 얻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라는 걸 철저히 깨달았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한 안전장치로서 ‘인권’을 고안한 것이다.
 
마포구의 ‘현수막 불허’는 공권력의 소수자 차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권’은 지극히 관념적으로만 이해되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혐오감을 표출하는 것을 마치 ‘권리’인양 착각하는 이들도 종종 보인다. 인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거나 낯선 사람을 보며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혐오감을 표출해 타인을 모욕할 ‘권리’는 없다. 내가 싫다는 이유로 타인의 행동이나 의사표현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권리’도 없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며 인간다운 삶을 해치기에 ‘권리’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성소수자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것과, 그걸 밖으로 표출하거나 성소수자에 대해 실제적인 차별 행위를 하는 것을 우리 사회가 용인하는 문제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오히려 사회는 인권교육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는 행위가 공권력의 이름을 가지고 행해진다면,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할 권리가 있다. 공권력은 인권을 보장하라고 준 것이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라고 부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가 보장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을 명시한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성소수자를 부정한 존재로 취급하며 표현의 자유마저 빼앗은 마포구청의 처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마레연 측은 오는 18일 오전 10시 마포구청 앞에서, 마포구의 성소수자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마레연에 따르면, 마포구청에 신청했던 동일한 시안의 현수막을 은평구와 성북구에선 받아들여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인근과 국민대학교 앞에 게시하였다고 한다. 마포구는 이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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