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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기록되지 않은 노동> 시각장애 안마사 희정의 노동과 삶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최성미 씨는 여성노동자 글쓰기 모임 회원이며, 중증장애 여성의 입장에서 시각장애 여성의 노동과 삶을 기록하였습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30대 중반, 뒤늦게 시력을 잃다
 
희정(가명) 언니는 1급 시각장애를 가진 중년 여성이다. 언니와 난 지난해 봄 즈음에 보건복지부가 제공하는 방문안마서비스 제도를 통해서 만났다. 기초생활수급권이 있는 1∼2급의 중증장애인과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서비스인데, 희정 언니는 1급 시각장애여성 안마사이다.
 
다양한 사회 정보를 접하기 힘든 중증장애인과 노령의 사람들은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그래서 서비스를 받고 그러한 노동자를 만나는 일도 사실 쉽지 않다. 희정 언니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6개월을 만나면서 장애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서로에게 큰 거부반응 없이 가까워졌고, 사소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친해졌다.
 
희정 언니는 30대 중반까지는 비장애인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다고 했다. 평범하게 학창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냈고, 결혼생활도 행복했고, 직장생활도 즐겁게 했다.
 
그런 언니에게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시력에 적신호가 왔다. 녹내장과 포도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뒤 청천병력 같은 시각장애를 맞으며 언니는 긴 시간 동안 자기 자신과 힘겹고 처절하게 싸워야만 했다. 희정 언니는 그 힘든 시간을 고스란히 맨몸으로 맞섰다. 그 힘든 시간을 거치며 이혼을 선택 했고, 아들과 헤어지는 시련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중도장애라는 끔찍하고 무서운 장벽을 홀로 넘어서야 했다.
 
중도 장애인으로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되어보니…
 
언젠가 언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언니는 자신의 장애를 처음 받아들일 때 어땠어요? 물론 말도 못하게 힘드셨겠지만, 저처럼 비장애였던 기억이나 좀처럼 자신의 뜻대로 내 몸과 의사표현을 마음껏 해본 경험이 없는 중증장애인은 언니와 같은 중도장애인을 이해하기가 다른 비장애인들보다 오히려 더 힘들다 들었어요. 그래도 중도장애인은 맘껏 움직여봤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이 봤을 테고, 뭐 그런 막연한 타인에 대한 부러움 같은 거 있잖아요? 저는 언니를 이해하고 언니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알고 싶지만 저 역시 언니를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이해한다는 건 조금은 어불성설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언니는 어떠셨어요?”

“물론 성미 씨의 말에 충분히 공감해요. 나 역시 중증장애인인데 가끔은 다른 유형의 중증장애인에게 이유모를 시샘과 역차별 같은 느낌을 받아본 경험이 적지 않아요. 그 사람이나 나나 같은 중증장애인인데 내가 장애인에게 쉽지 않은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조금은 불편한 태도로 나를 대하죠. 하지만 그 사람들은 시각장애 1급의 여성이 일을 한다는 건 목숨과 맞바꾸는 위험을 직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같은 장애인이면서 내가 아닌 다른 장애인의 입장을 보듬으려 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으로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나 스스로도 내 일에 대한 자긍심도 없었고 부끄럽고 힘든 일이 싫어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컸어요. 참, 뭐가 뭔지도 모르고 철도 없었던 것 같아요. 무작정 예고 없이 내게 다가와 버린 장애가 두렵고 싫었어요. 그래서 평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이혼이라는 선택도 했던 것 같고요.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그때는 그런 선택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고 믿어요.”
 
내 질문에 담담하게 답변을 해주는 언니를 마주하며 새삼 나와 다른 유형의 장애여성의 삶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기쁘고 감사했다.
 
희정 언니는 자신에게 불어 닥친 시각장애라는 엄청난 변화와 더불어 이혼과 함께 맞닥뜨린 생활고라는 현실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2년간 직업학교를 다니며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경제활동인 안마사로 일하게 되었다. 여성이면서 나이도 많은 언니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다른 남성이나 젊은 동료들에 비해 힘들고 어려웠다고 한다.
 
어느 집단이나 그러하듯 기득권 위치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중도 장애인인 희정 언니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침술이나 안마를 배워서 학교를 졸업하면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다시 사회에 나온 희정 언니는, 어릴 적부터 장애를 갖고 맹아학교를 졸업한 사람들한테서 보이지 않는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그네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줄곧 함께해 온 학교 동창이거나 같은 단체에서 맺는 인연이 있었다. 언니는 그들의 은근한 따돌림을 견뎌야 했다.
 
희정 언니는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런 얘기를 했다.
 
“성미 씨, 난 멀쩡히 내 눈으로 보고 내 다리로 걸어 다닐 때도 잘 넘어졌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잘 다니던 길에서 턱을 못보고 걸려 넘어지고. 그랬던 내가 완전한 시각장애인이 된 다음에 기술을 배우러 다니고 일을 하러 다니며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한 발짝 바로 앞이 살얼음판이었고, 천 길 낭떠러지 같았어요.”
 
고단한 육체보다 힘든 건 ‘안마업’ 천시하는 사회적 편견
 
이렇게 힘들고 긴 터널 같은 어두운 시간을 통해 얻어낸 자격증을 토대로 희정 언니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니가 시작한 중증장애 여성으로서의 제2의 인생은 참으로 수난의 길이었다. 하루 종일 가냘픈 손목과 허약한 몸으로 여러 사람의 몸을 마사지하고 나면 밤엔 그야말로 녹초가 되어버리기 일쑤였지만, 이튿날 아침이면 부어오른 팔과 다리를 무시하고 다시 일터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언니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육체적 고단함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편견이 더욱 희정 언니를 힘들게 했다. 안마나 마사지를 생업으로 하는 시각장애 여성들을 향해 당연하게 행해지는 무시, 안마업을 퇴폐적으로만 보고 안마업 자체를 천시하는 사회적 편견 등이 언니를 더욱 힘들게 했다. 희정 언니는 정당한 사업허가를 낸 안마원에서 일을 하지만 사회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퇴폐업소에서 일하는 시각장애를 가진 장애여성’에 불과했고, 가끔은 언니에게 윤락행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또 수많은 동정의 시선도 견뎌내기가 힘겹다.
 
희정 언니가 일하는 노동현장에서도 차별과 편견은 만연해 있다. 엄연한 서비스직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은 비장애인들과 차별되어 있고, 안마나 침술을 받으러 내원한 손님들의 태도는 가끔 언니를 기막히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난 너무 피곤해서 몸을 풀러 왔는데 장애인이 내 몸을 여기저기 만지는 것이 불쾌하다. 다른 멀쩡한 서비스원을 배치해 달라!”며 억지를 부리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언니가 정말 시각장애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에 얼굴 바로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거나 약간의 폭력적 손짓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안마실에 들어오면서 완전한 알몸으로 가운 한 장만 걸치고 들어와 언니를 당혹하게 하고, 시술과정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언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살짝 치워버려 언니가 당황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나쁜 손님도 있다.
 
또 100kg에 육박하는 운동선수와 같은 근육질의 손님을 손목이 시큰거릴 만큼 최선을 다해 안마서비스를 하고 나왔는데 자신의 신체 조건은 전혀 생각지 않고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항의해 언니의 몸과 감정을 처참하게 만드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만 언니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은 결코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희정 언니는 아르바이트 삼아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방문안마서비스 일을 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시련들이 있다.
 
방문 서비스인 만큼 시간을 조율하는 문제부터 이동의 제약과 두려움, 서비스를 받는 빈곤층 약자들과의 소통(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당사자가 얼마의 서비스 이용료를 내야 하는데 서비스 이용자들은 안마사는 왠지 자신들보다 형편은 좀 나을 것 아니냐며 은근히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 등등. 게다가 언니가 이동할 때마다 100% 이용해야만 하는 택시비도 무시할 수 없는 고충이다.
 
더구나 이용자 모집까지 희정 언니 스스로 해야 한다. 정부나 시·구 차원에서 널리 홍보하고 이용자를 모집하면 시각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 면에서도 이롭고 소외된 노령의 어르신이나 중증장애인들의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될 충분히 좋은 제도인데도 서비스 홍보와 이용자 모집을 시각장애인 노동자 개인에게 떠맡긴다는 현실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분노가 인다.
 
“일은 나를 ‘나’이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희정 언니는 몇 년 동안 힘들게 노동한 것을 기반으로 얼마 뒤면 새 집으로 이사하고 그동안 떨어져 지내온 아들과 친정어머니도 모셔와 함께 살 계획이다. 언니는 바쁘게 일하는 틈틈이 시각장애인협회에서 동료들을 상대로 상담일을 맡아 하는 등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희정 언니와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 언니가 문득 이런 말을 건넸다.
 
“성미 씨 난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하고 싶지 않아요. 난 일을 하면서 힘겹고 아픈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난 장애를 갖게 되면서 일상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고, 이혼을 통해서 내가 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내게 있어서 이 일은 나를 나이게 하고, 엄마이게 하고, 또 사람이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난 내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해요. 성미 씨가 장애인들의 인권과 장애인들의 현실을 세상에 좀 더 알리기 위해 펜을 들었듯이, 난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할게요. 우리 지금처럼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서로의 삶에서 열심히 지내요!”
 
자신이 처한 현실과 노동 강도는 누구 못지않게 힘겹고 팍팍하지만 항상 긍정적이고 상대를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언니의 모습과 마음이 나는 참 좋다. 희정 언니와 만난 것처럼, 나와 다른 유형의 장애여성의 삶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도 많이 만들고 싶다.  (최성미 /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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