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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아동성폭력 후유증은 ‘사회의 몫’입니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3. 1. 31. 08:3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성폭력을 둘러싼 ‘시선’이 변해야 해요”

생존자 수기 <꽃을 던지고 싶다>의 필자 너울 인터뷰 
 
작년 봄부터 <일다>에 개제된 성폭력 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많은 독자들의 응원 속에 연재를 마무리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 차례 성폭행을 겪은 필자의 경험 글을 보며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고, 함께 가슴 아파하고 분노했으며, 기록과 회복의 과정을 격려했다.
 
너울 님으로부터 수기를 기고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은 지 약 1년이 흘렀다. 무시무시한 성적 폭력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오랜 세월 트라우마를 겪어온 한 여성의 경험을 공개한다는 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필자와 독자 사이를 소통해가야 하는 기자로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연재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 글의 구성과 방향을 재조정했고, 중단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울 님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연재를 마무리했고, 이 기록은 곧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힘겨운 여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며, 너울 님과 만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너울 님은 처음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한 기록이었지만, 그 글이 매체를 통해 독자를 갖게 되면서 사회적 의미를 띨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동 성폭력의 특성은 무엇이며 그 후유증은 무엇인지, 또 회복이란 무얼 뜻하는지.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어떠하며, 그 시선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젊은 여성이 자립적으로 살아가고자 했을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낸 생존자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 [생존자말하기]     © 일다- 정은의 빨강그림판 
 
-2012년 봄부터 <일다>에 연재를 시작해서 30회로 마감했다.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4년전에 컴퓨터에 <꽃을 던지고 싶다>라는 폴더를 만들어 글을 썼다. A4 20장 분량이었는데 그때의 글에는 사건은 없다. 몇 살에 사건을 겪었고, 성폭력이 무엇인지 개념만 있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작은 말하기>에 나가면서, 나도 내 경험을 말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런데 말을 못하겠더라. 말보다는 글이 나으니까, 경험을 구체적으로 기록해보고 싶어서 다시 쓰게 된 것이다.”
 
-<꽃을 던지고 싶다>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정하게 되었나?
 
“그런 제목의 소설이 있는데 내용은 기억 안 난다. 성폭력을 기록할 때 적절한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으로 꽃은 여자, 그리고 여자의 성기를 상징할 때가 많다. 여성성을 던지고 싶다는 의미, 여성성을 요구하는 사회에 꽃을 던지고 싶다는 의미로 제목을 붙였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과,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다>에 수기를 싣고 싶다고 제안해온 계기가 있다면.
 
“글을 쓰면서 책을 내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책을 많이 봤는데, 성폭력 생존자의 수기만큼 힘이 된 것이 없다. 그런데 외국 수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는 왜 없을까?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써보면 좋지 않나 싶었다. 여성단체 두 곳에서 소식지에 수기를 내볼 생각이 있냐는 문의도 왔는데, 그보다는 객관적인 매체에 글을 싣고 싶었다.”
 
-첫 글은 어느 날 꿈에서 어린 시절의 성폭력 장면이 떠오른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꿈 이전에는 잊고 살았던 것인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공포를 몰랐었다. 그 때의 경험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몰랐다. 통증으로 병원에 많이 다녔다. 섭식장애도 있고 가끔 우울했다. 의사는 이상이 없다 하고, 나도 왜 그런지 몰랐다. 2007년 12월, 꿈을 꾸면서 어릴 적 공포가 재현되었다. 당장 죽을 것만 같았다. 호흡곤란이 오고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아마 이제는 그 사건들을 이겨낼 힘이 생겼기 때문에 해결하라고, 내 무의식이 끌어올린 것 같다.”
 
-원래 아동 성폭력 경험을 중심으로 16회 정도 분량을 기획했는데, <일다>에 연재하는 과정에서 글의 구성도 바뀌고 내용이 많이 추가되었다.
 
“처음엔 성폭력 생존자를 대상으로 썼다. 생존자 자조모임에 나가면 힘이 되는데, 나의 불안정함이나 내가 봐도 심하다, 미친 거 아냐? 라고 느끼는 것들을 다른 이도 겪는다는 걸 아는 순간 위로가 되고 편해진다. 연재를 하면서 내가 겪은 사건을 구체적으로 써보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고 방향을 바꿨다. 독자들과 소통하겠다는 느낌을 가졌다. 내 경험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동기에 겪는 성폭력은 특수성이 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겪은 것과 어린 시절 경험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공포심이 너무 다르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다. 어릴 적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내 삶을 내가 기획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언제든 누군가에 의해 내 삶이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타고난 재능은 많은 것 같지만 올바르게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아동 성폭력은 환경과 관련이 많다. 가족이 가해자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그러나 방치되는 아이들은 더 표적이 되기 쉽다. 가난한 걸 창피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아이들이 받아야 할 보호와 사랑이 있는데, 보호받지 못했던 경험은 자아존중감을 떨어뜨렸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유년기의 성폭력 경험이 성장하면서 어떤 영향을 미쳤나.
 
“어릴 적 반복된 경험 때문에 모든 남자가 내 몸을 원하는 구나, 이렇게 받아들인 것 같다. 20대에 연애도 많이 했는데,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요구하면 너무 싫어졌다. 그때 관계를 끊는 법 중 하나가,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나면 미안한 마음이 없으니까, 그런 후에 헤어질 수 있었다.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그러면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그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쁜 사람과 더 맞았던 것 같다. 아동기 때 그런 경험이 없었으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게, 아동 성폭력의 경험이 없었으면 지금쯤 이런 삶을 살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 현재 삶을 자꾸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아동 성폭력 문제에 대해 사회가 고려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한 시점에서만 이뤄진다는 게 문제다. 평생 안고 간다면? 삶의 맥락에서 필요한 때에 회복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곳에 예산이 들어간다면 좋겠다. 사회적 자원을 만들어야 좀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드러낼 수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주위에서 잊으라고 강요한다. 사람이 장애를 갖게 되면 그걸 인식하고 불편함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다리가 불편해졌는데 정상인 것처럼 걸으라고 하면 안 된다. 반드시 주변에서도 인식해야 피해자가 잘 살아갈 수 있다.”
 
-성인이 되어 겪은 사건들은 독자들에게 좀 다르게 읽혔다. 왜 그렇게 위험한 상황 속에 자꾸 놓이게 되는지, 벗어날 순 없었는지 안타까워하는 반응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연애와 관계, 성폭력 사이에 애매한 것이 많았다. 어른이 되어 겪은 경험들은 내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글을 쓰기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어떤 상황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을 내가 원하거나 즐긴 건 아니므로, 폭력의 경험인 것이다.
 
성인 때의 경험이 비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기록한 건, 한 사건이 구성되는 건 그 사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어릴 적 제대로 된 책이라도 한 권 읽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 시절엔 입밖에 꺼낼 수도 없었다. 성적 사기건 폭력이건 간에 사건을 해결해나갈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런 상황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데, 그 사람이 자라난 환경을 보지 않고서 ‘당신은 왜 힘이 없었어?’ ‘성인인데 판단 못했어?’ 라고만 물을 수 없다.”
 
-기록의 과정이 힘들지 않았는지.
 
“글을 쓰는 작업 자체보다는 내용 때문에 힘들었다. 그 때로 돌아가서 써야 하니까, 그 공포를 다시 느끼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강간당한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연재기사 10회. 학교 도서관에서 위인전과 소설, 철학 책을 뒤져보았지만, 강간당한 여자가 훌륭한 삶을 살아낸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는 내용) 쓰면서 한달 간 울었다. 여전히 그 글이 제일 아프다.
 
그 글을 쓰면서 사건 자체보다는 성폭력을 둘러싼 문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의 고통이) 사건이 아프고 힘들어서가 아니란 걸 알았던 것 같다. 그 이후 글이 바뀌었다. 글 쓰는 작업에 큰 의미를 두게 되었다. ‘사회적 기록’의 의미를 몰랐는데, 그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쓰기 과정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성폭력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이 폭력적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피해자에게 수치를 준다. 요즘도 ‘자기가 꼬셨겠지?’ ‘짧은 옷을 입었으니까’, ‘걔는 앞으로 어떻게 산대?’ 이런 말들을 한다.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조차 자기한테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고, ‘노는 여자’들만 당하는 줄 알았다고들 한다.
 
작년 발생한 피자집 알바 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지원한 적이 있다. 스무 살인데, 경찰은 성폭행을 당하고 다시 일하러 나간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다시 당한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많은 성폭력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아직도 성폭력은 (가해자가) 흉기를 들고 (피해자가) 죽기로 저항해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남자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성폭력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창녀가 될 운명”이라고 여긴 것에 대해 더 깊은 설명을 해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그 스님 기록(연재기사 22회 <내가 너의 힘든 삶을 바꿔줄 수 있다>에서 승복 입은 남자가 계속되는 성폭력이 전생의 업 때문이라며 자기에게 몸 보시를 하라고 한 사건)을 보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다른 삶을 생각할 수 없었다. 영화 <그 후로 오랫동안>에서 강간을 당한 주인공이 낮엔 외국어를 가르치고 밤엔 타락한 생활을 한다. 소설 <헬로우 미미>, <은마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강간당한 여자는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창녀가 되었다. 게다가 성폭력에 대한 편견 중 하나가 예쁜 사람이 당한다는 것이다. 난 아무리 봐도 안 예쁜데 왜 내게 이런 일이 반복되나? 나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체념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결정적으로 내게 다른 삶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성매매를 하는 사람은 대학 나온 사람이 별로 없어서, 대학에 가면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님 건으로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만약 다른 삶의 가능성을 누군가 열어줬다면, 그 스님 경험이 그렇게 영향력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성인의 경험이 어린 시절 영향을 받았다.”
 
-성판매 경험에 대해 글 쓰는 것을 많이 주저했는데, 결국 기록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성 산업 종사자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누굴 대표하게 될까 봐 부담스러웠다. 나는 오래 있지도 않았고, 띄엄띄엄 6개월 정도 경험인데 이렇다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서 폭력이 많이 일어나지만 내겐 그런 경험은 별로 없다. 어릴 적 성폭력의 경험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다. 4월이면 우울이 심해져서 자살 시도도 많이 했다. 그 때 살아나면, 나를 죽이지 않고서 죽이는 방법이 성 판매였다. 그런 맥락만 드러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삶의 선택이었다. 당시는. 선택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주부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성매매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일류대학 나온 여자가 아빠의 성폭력에 시달리다 성매매를 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다른 삶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매매를 하는 게 더 나은 삶이었던 거다. 자기 경험 안에서는. 그게 안타까운 것이다. 네 잘못이라고 말할 순 없다. 성매매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은 다른 힘이 있고, 다른 가능성을 알 때 가능하다. 개인 탓으로 돌리면 해결이 안 된다.”
 
-최근 성폭력 관련 법이 개정되었다. 드디어 친고죄가 폐지되었지만, 화학적 거세나 형량이 높아진 것은 여성운동가들이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면?
 
“나는 가해자들을 죽이고 싶다. 그러나 죽이고 싶다고 죽일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폭력은 인권 감수성이 낮은 것에서 나오는 건데, 나까지 감수성을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다. 화학적 거세 방안은, 성기 삽입은 안 하더라도 도구를 쓸 수도 있고, 성폭력 예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형량이 높아지는 것도 아동들이 더 위험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발설할까 봐 죽일 수도 있다. 지금도 형량은 높다. (가해자는) 더 안전한 상대를 찾을 것이다.
 
시선이 바뀌지 않는다면, 형량을 높인다고 해서 절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피해자가 삶을 회복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오랜 노력과 공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하고자 하는 노력을 안 한다. 성폭력이 이슈화되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복된다.”
 
-연재된 수기가 곧 책으로 출판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인생에서 어떤 매듭을 짓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상태이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가끔 힘들고 가끔 우울하다. 그리고 자주 잠을 못 잔다. 글을 쓰고 나서 가장 달라진 건, 삶을 포기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힘이 생긴 것 같다. 나에게 관대해졌다. 나는 완벽해야 했다. 그런 과거가 있으니까. 낮에 하늘 보는 게 부끄러웠다. 나만 보는 것 같고,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서. 지금은 그렇진 않다. 나한테 많은 장점이 있으니까. 모든 이가 그리 완벽하지 않다. 좀 이기적이면 어때, 좀 힘들면 어때. 열심히 안 하면 어때. 그게 힘인 것 같다.
 
기록을 마치며 내 삶의 과제 하나를 해결한 듯하다. 과거는 지울 수 없고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후유증이 사라지건 않건 간에, 그것을 인정하는 것. 그런 삶을 가진 채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내게 낳을 것이다. 상담도 받고 5년간 치유의 길을 왔다. 불면이 똑같이 와도, 내 삶을 흔들어도, 통째로 뽑히지 않을 힘이 생겼다. 내일은 좀더 평온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는다.”
 
-다른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성폭력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까요?’ 질문한다. 우울이 반복되면서 직장생활도 어려워진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술 한 잔 먹고 잊을 수 있다면 상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힘들면 누가 얘기하는 게 싫을 수 있다. 불안정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힘들고, 괜찮지가 않은 게 당연한 건데, 나도 그게 제일 힘들었다. 이젠 인정하려고 한다.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강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성폭력 경험은 나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많은 걸 상실하게 한다. 가족관계, 직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다른 삶은 있을 수 있다! 난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자기 창조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나, 자기만의 방식을 찾았으면 좋겠다.”   (조이여울 기자)

    * 여성주의 저널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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