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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여기 사람이 있다' 용산의 외침 기억하라  

 
2013년 1월 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꼭 4년이 되는 날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다>에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를 연재한 필자 너울님이 용산참사 4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용산참사의 의미와 우리가 잊지 말아야 진실을 되새기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www.ildaro.com
 
추운 겨울 이 때쯤이 되면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낀다. 온전히 아파할 수도 소리 내어 고통을 호소할 수도 없는 죄의식. 4년 전부터 시작된 나의 증세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어느 날, 나는 그 곳에서 죄스런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해자는 그 누구도 아닌 나였음을, 타인의 고통과 잔인한 폭력을 방관한 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시간.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가?
 
6명의 죽음, 국가 폭력의 실체를 목도하다 

▲ 용산참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두개의 문> 중에서     © 두개의 문 
 
2009년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뉴스를 보면서 ‘설마 어떻게 저런 일이’ 하면서 내 눈을 의심했고, 내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 뉴스 화면에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자행된 국가와 자본에 의한 폭력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용산참사’라고 불리게 된 사건이었다.
 
용산 4구역 재개발 정책과 보상대책에 반발해 온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0여 명의 사람들이 대책을 요구하며, 1월 19일 새벽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다.
 
그 날의 사건은 대규모 자본에 의해서 소수자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게 침해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득을 위해서는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손쉽게 무너지는지를 알게 해준 사건이었다.
 
국민들은 갑작스런 참사를 믿을 수가 없었고, 여론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고 검찰은 3주 만에 화재의 원인을 ‘철거민이 사용한 화염병’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을 무시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적법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청와대가 연쇄살인사건(강호순 사건)을 이용하여 용산참사 여론을 무마하라는 메일을 하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2008년 촛불집회를 거쳐서 ‘소통’하겠다던 청와대가 이득을 위하여 빨리 철거를 감행하는 자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재판과정이 ‘위법’했다고 밝혀졌음에도…
 
3월 용산참사 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기각이 되고, 10월 28일 망루 생존철거민 전원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또한 검찰은 용산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요구마저 거부했다.
 
2010년 6월, 헌법재판소는 철거민들의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검찰이 철거민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내용의 ‘위헌’ 결정을 내렸다.
 
2010년 2월, 이충연 용산4구역 철대위 위원장 등 구속된 철거민들이 ‘검찰이 수사기록을 내놓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당해, 많은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었다’며, 국가를 상대(법무장관 이귀남)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원심에서 ‘피고(대한민국)는 철거민들에 각각 3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어 국가의 항소가 이어졌으며, 2012년 11월 15일 대법원(박병대 대법관)은 검찰이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한 것과 관련하여 “검찰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고, “국가가 철거민에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철거민에 대한 재판 과정이 ‘위법’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참사생존 철거민 6명 중 누군가는 형량을 마치고 출소했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4년째 감옥에 갇혀있다.
 
“테러리스트” 오명도 그대로인 채 진행 중인 용산
 
2013년 1월 20일. “여기 사람이 있다”던 외침이 여전히 생생한데 4년이 흘렀다. 여전히 철거민들은 차가운 감옥에서 “용산참사”를 보내고 있다.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만 잔인하게 사건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1월 20일 아침 6시 서울 도심 용산 4철거구역 남일당 건물, 살아 보려고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이 산채로 철거당했다. 소각로에 집어 던져진 폐품처럼 소각 당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나?> (용산참사 4주기 추모시 중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용산.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질문을 다시 던져보아야 한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위험한 진압작전을 펴면서 어느 문이 망루로 올라가는 문인지, 어느 것이 창고로 가는 문인지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지 못했다. 왜 경찰은 그토록 성급히 진압에 나섰던 것일까? 그리고 왜 세입자들은 망루에 올라갔던 것일까?
 
철거업체에 조기 철거와 철거 지연에 따른 벌금을 하달하며 관리했던 시공사 ‘삼성물산’, 그리고 강제진압을 지시했던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철거민에게 유죄판결과 강제진압을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했던 천성관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고 용산참사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갔다.
 
2013년 1월 20일 용산 4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참사 직후, 폭력적인 철거와 용역을 동원하는 행위를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제철거금지법 제정, 경비업법 개정, 현실적 보상제도 도입 등 대책 마련이 활발히 논의되었다. 그러나 변한 건 도시정비법상 영업 손실 보상비를 석 달 치에서 넉 달 치로 늘인 것뿐이다. 용산 유가족에게 덧씌워진 “테러리스트”라는 오명도 그대로인 채 용산은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용산’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함께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 불타는 망루에 나의 이웃, 그리고 또 누군가가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쓴 채 서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주기 추모제 때 보았던 “함께 살자”라는 구호가 절실하다. (너울)

   *성주의 저널 <일다> 창간 10주년을 축하하는 독자들의 응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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