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1) 어찌보면 별일 아닐, 밥해먹기에 대하여
 
제도교육에서 벗어나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갓 상경하여 대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무살 청년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그리고 그 좌충우돌 실험 속에서 터득한 ‘여연표’ 요리법을 소개합니다. www.ildaro.com
 
집을 나오며 밥그릇을 챙기다 

▲ 서울에 올라올 때 가지고 온 밥그릇.  이 그릇에 밥을 담아 먹을 때마다 음식을 먹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다시 생각하곤 한다. © 일다 
 
집에서 나와 서울에 올라올 때, 밥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도드라지는 조그맣고 알록달록한 그릇이다. 독일 여행을 할 때 어느 시골마을의 작은 벼룩시장에서 2유로를 주고 샀다. 이 그릇에 밥을 담아 먹을 때마다 음식을 먹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다시 생각하곤 한다. 밥이 탄수화물 덩어리로 보여서 먹는 걸 두려워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예쁜 그릇에 밥을 담아 먹으니 그럴 일이 없다.
 
밥그릇을 옷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고 짐을 싸면서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서울에 가면 집에서 가지고 온 현미에 콩이랑, 율무랑, 수수랑 잡곡들을 가득 넣어 밥을 짓자. 그렇게 밥을 지어 이 그릇에 담아서 천천히 행복하게 먹어야지. 내가 음식을 먹고 있다는 걸 의식하면서 먹자.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곱씹으면서 먹자.
 
“하루에 한 번씩은 집에서 밥을 해 먹으렴.” 집에 잠시 다니러 갔던 내가 서울에서 먹는 음식들에 대해 끝없이 불평을 늘어놓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응, 그러지 뭐.” 대충 대답하고 말았다. 하지만 겨울에 다가설수록 은근슬쩍 떡볶이나 빵을 사와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끼니가 해이해지자 일상도 점점 더 게으르고 둔해지는 한심한 나를 인정해야 했다.
 
‘빠르고 쉬운’ 먹거리의 도시에서 밥 해먹기
 
한국에서 1970년에 한 사람이 먹는 쌀의 양은 136.4kg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2012년에는 그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68.7kg이었다니, 반세기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식습관이 참 많이도 바뀌었다. 굳이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지 않아도 먹을 게 참 많다. 거리에 나가면 프랜차이즈 빵집 천지다. 빵집뿐만 아니라 패스트푸드점, 분식집, 카페가 편안하게 한 끼 때우고 가라고 유혹한다.
 
빠르고 쉽게 사와서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과 빵은 가공되고 정제돼서 도대체 원래 재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음식을 먹으면서 차분하고 만족스럽게 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음식에 대해서 지나치게 까다롭게 굴면서 타인과의 관계나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망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몸에 익히기 위해 처음 올라올 때 했던 밥을 해먹으면서 살겠다는 결심을 다시 되새겼다.  
 
어찌 보면 참 별일도 아니지만 밥을 해먹는다는 건 내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성격이 급했다. 기타도 공부도 독서도 뭐든지 빨리빨리 하려고만 했다. 잘 되지 않거나 막히는 일이 있으면 확 때려치워 버렸다. 그런 내가 조금 느릿하게, 하지만 꾸준히 지속하면서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삶에 매력을 느끼게 된 건 우습게도 서울이라는 정신없는 도시에 올라온 후다.
 
갓 시골에서 올라온 나는 올해 처음으로 여기서 혼자 밥을 해먹으며 지내보려고 한다. 찬장에는 엄마가 택배로 보내 준 현미와 잡곡들이 가득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든든하다. 이 곡식들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풀어야 할 숙제와 깊숙이 묻어두었던 소망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서 잘 살아봐야지.
 
거칠거칠한 현미밥과 잡곡밥의 ‘은은한 맛’ 

▲ 나는 보리나 율무, 붉은 수수의 은은한 단맛과 톡톡 씹히는 느낌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잡곡들을 그득그득 넣고 밥을 지어먹곤 한다.  © 일다 
 
현미밥을 지을 때는 무조건 물에 오래 불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건 단순히 취향의 문제다. 약간 꼬들꼬들하고 거칠한 밥을 좋아하는 나는 쌀을 잘 불리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쌀보다 훨씬 딱딱한 콩이나 팥은 밥을 짓기 전에 미리 몇 시간 정도 불려놓아야 한다.
 
묵은 쌀의 군내를 제거하려면 밥을 지을 때 식초를 한 방울 떨어트리면 된다. 어떤 책에서는 정제된 흰쌀로 만든 밥이 현미밥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흰쌀밥을 먹었을 때 혀가 맛을 빨리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미밥을 지을 때 비슷한 효과를 내고 풍미를 더하려면 소금을 약간 넣으면 된다.
 
찰진 맛을 내고 싶다면 다시마를 잘라 넣고 밥을 짓는다. 밥에 까만 다시마가 콕콕 박혀있는 게 싫다면 따로 다시마 국물을 내서 밥을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귀찮아서 나는 그렇게 잘 하지 않는다. 다시마를 넣은 밥은 약간 짭짤한 맛에 찹쌀밥처럼 쫄깃해서 아주 맛있다. 밥도 빨리 된다.
  
나는 보리나 율무, 붉은 수수의 은은한 단맛과 톡톡 씹히는 느낌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잡곡들을 그득그득 넣고 밥을 지어먹곤 한다.
 
슬픔을 달래는 밥 한 그릇
 
집에서는 수수를 많이 길렀다. 콩밭에 군데군데 키 큰 수수를 심어 놓고 태풍이 지나가 쓰러지면 끈으로 묶어주고, 가을에 윗부분을 낫으로 잘라 수확해서 창고 벽에 매달아 말렸다. 그리고 햇살 좋은 어느 겨울날에 빨래판에 문질러서 껍질을 벗기곤 했다.
 
그 일은 단순하고 지루한 노동이기에 대부분 내 차지였다. 하루를 꼬박 수수를 털고 나면 수수껍질 때문에 온 몸이 까슬까슬했지만 큰 통 속에 가득한 붉은빛에 마음만은 뿌듯했다. 그렇게 껍질을 벗긴 붉은 수수를 몇 컵씩 넣어 밥을 지으면, 수수에는 인이 많이 들어 있어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다.
 
그런 일상을 살았다. 수많은 잡다한 일들을 애써 손으로 해야 하는 힘들고 구질구질한 생활이 싫어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정작 집을 나온 지금 나는 그 일상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란 인간은 왜 늘 다른 삶을 힐끗힐끗 곁눈질하면서 지금 있는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 나에게 이 시를 가만히 들려준다.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는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는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밥, 천양희
 
황인숙 시인의 <슬픔이 나를 깨운다>라는 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
   슬픔이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슬픔이 찾아왔을 때, 밥만으로는 허전하다 싶으면 야채밥을 해먹기도 한다. ©여연 
 
내게도 때로 슬픔이 찾아오면 별 이유도 없이 바깥에 나가는 게 두렵다. 아픈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이불 속에 숨어있고만 싶고, 세상이 온통 캄캄하고 갑갑하다. 그럴 때 나는 밥을 많이 먹는다. 꾸역꾸역 밀고 올라오는 억하심정과 원인모를 분노를 밥 한 술에 꿀떡 밀어 넣는다. 평소에는 맛있기만 한 반찬의 소금기가 이때는 왠지 거슬려서, 반찬도 없이 밥만 잔뜩 먹는다. 아무래도 허전하다 싶으면 야채밥을 해먹기도 한다. 만드는 법은 꽤나 간단하다.
 
현미쌀을 딱 한 컵만 물에 씻는다. 물은 평소 밥을 할 때의 3분의 1정도만 넣고, 콩나물, 무, 밤, 단호박, 감자, 고구마, 땅콩, 당근, 양배추 등 있는 야채를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위에 올리고 밥을 짓는다. 미리 불려놓아야 해서 좀 귀찮기는 하지만 보리나 조 같은 잡곡도 넣고, 콩이 있으면 콩을 넣는다.

야채들에서 우러나온 단물로 따로 양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소박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밥이 된다. 야채가 듬뿍 들었기 때문에 좀 과식해도 속이 쉽게 더부룩해지지는 않는다. 깻잎이나 달래를 썰어 넣은 양념장을 만들어서 비벼먹어도 맛있다. 쉽게 상하기 때문에 만들자마자 바로 먹는다.
 
기름 범벅이 아니어도 좋은 볶음밥
 
밥을 이용해서 혼자 편하게 해먹기 쉬운 음식으로 볶음밥을 빼 놓을 수는 없다. 기름으로 뒤범벅을 만들지 않고도 맛있는 볶음밥을 만드는 법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프라이팬을 가능한 뜨겁게 달궈 기름을 적당히 두른 다음 찬밥을 잘 풀어 넣는다. 중요한 건 밥알이 잘 풀어져서 쌀이 한 알 한 알 양념 층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볶음밥은 이렇게 만들었다: 차갑게 식은 흰밥(이때 따뜻한 현미밥을 쓰면 오히려 맛이 덜하다)에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고슬고슬해질 때까지 달달 볶은 다음 양조간장, 토마토케첩과 멸치볶음, 양념을 씻어내고 자잘하게 썬 김치로 양념한다. 볶음밥이 다 되면 계란을 하나 탁 깨 넣고 잘 섞는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시금치나 배추, 그리고 가끔은 좀 독특하게 파래를 넣어서 함께 볶아먹고는 한다.
 
음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밥을 먹는다는 건 하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생명을 이루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이 시금치는 어디에서 자라다가 이곳, 서울까지 왔을까?’ ‘여기다 이걸 넣어보면 어떤 맛이 날까?’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만들면서 작은 행위와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뿐인 생각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음식은 ‘자유’와 ‘선택’과 ‘권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음식을 선택해서 입에 넣고, 맛보고, 씹고, 소화시켜서 배설할지에 대한 자유이자, 궁극적으로는 어떤 음식으로 내 몸을 이룰지에 대한 선택.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가뿐하게 살 권리.
 
앞으로의 글들은 갓 스무 살이 된, 채식을 하고 좀 별난 구석이 있는 청년이 밥해먹고 사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시골에서 갓 상경해서 도시의 음식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촌뜨기의 투덜거림일 수도, 끊임없이 남과의 비교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자기 길을 찾아가려고 기를 쓰는 젊음의 발악일수도 있다. 음식을 통한 세상과의 관계 맺기일 수도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 그리고 나는 세계를 바라본다.  (여연)

 * 여성주의 저널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즐겨찾기 www.ildaro.com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