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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8) 종신형을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 카페 버스정류장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 박계해 
 
설날에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딸 나라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설날이 밝았고, 문을 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명절에 누가 카페를 오겠어. 우리, 과일 먹으면서 영화나 한 편 다운 받아볼까?’ 하고 쉬는 쪽으로 정리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카페 문 여나요?”
“저, 그게… 지금 어쩔까 하고 의논 중입니다.”
“그럼 열한 시에 다시 전화를 해 볼게요.”
 
전화를 끊고 나니 참 한심한 대답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삼아 하는 장사도 아닌데 특별한 사정도 없이 쉴 생각을 하다니.

정확하게 열한 시에 전화가 왔기에 수화기에 대고 고개까지 꾸벅 숙이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문 활짝 열었습니다.’
 
쉰 언저리로 보이는 그녀는 세 번째 오는 것이라는데 올 때마다 나는 없고 딸이 있더라고 했다. 난로가의 소파로 안내하고 따뜻한 물을 건네며 마주 앉았다.
 
“고맙습니다. 문을 열어 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문을 연 다른 커피 점도 있을 텐데.”
“여기가 숨기가 좋을 것 같아서요.”
“탈옥수군요.”
“네? 아……. 하하하, 종신형!!!”
 
피곤한 지 눈동자가 충혈 되어 있기에 눈을 좀 붙여보길 권했다. 소파 팔걸이를 베개 삼아 머리를 누인 그녀는 곧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무엇이 못마땅한 지 양미간에 주름을 깊게 세우고 잠든 그녀의 어깨에 무릎 담요를 덮어주었다.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소리는 명절에도 예외 없이 규칙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문을 열었을 뿐 역시나 손님은 없었고 그녀는 오후 두 시나 되어서야 일어났다. 빨갛게 실핏줄이 섰던 눈동자가 한결 맑아져 있었다.
 
“아, 개운하다. 푹 잤어요.”
“점심시간이 됐는데 문을 연 식당이 없을 것 같아서 떡만두국을 끓였어요.”
“아……. 고맙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외투를 벗고 옷소매를 조금 걷어 올렸다. 순간, 팔목에 자해인 것으로 보이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연신 맛있다며 열심히 숟가락을 놀리더니 그만 흑,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자식만 아니었다면…….”
 
그랬으면 죽었을 것이란 말인 줄 알았는데, ‘이혼을 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딸아이만 결혼시키면 이혼을 할 생각이에요.”
 
결혼 ‘시키면’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혼한 부모를 둔 자녀들, 특히 여자 쪽이, 상대방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를 더러 보았다. 탈 없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해석을 더 많이 들었다. 참고 살지 못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딸도 그럴 가능성이 많아서라는.
 
참고 살아야 할 날도 많으리란 걸 알지만 사랑이 불붙으면 하나가 되어 타지 않을 도리가 없기에 하는 것이 결혼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동거도 일종의 결혼이다. 결혼은 ‘혼이 맺어지는 것’일 뿐 형식은 아니다. 거기에 ‘식’이 붙어서 형식을 통과하게 만들었을 뿐. 결혼을 반대하다니, 결혼을 찬성하다니… 그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일 뿐 누가 만들 수도 말릴 수도 없는 것이다. 혼의 맺어짐이 그러하듯 혼의 나뉨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형식만 유지하고 있을 뿐, 내 식으로 보자면 이미 이혼을 한 상태.      
 
“이혼한 부모 때문에 아이에게 지장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예식장에 남편과 나란히 서서 손님들을 맞고 나면 그녀는 비로소 그녀식의 이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딸의, 언젠가는 있을 결혼‘식’을 위하여. (그녀의 이혼을 위해서는 딸의 결혼식이 전제되어야한다?)
 
공감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으므로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지만… 각자가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 엄마가 자식의 행복을 바라듯이 자식도 엄마가 편안할 때 함께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까.  
 
남편과 싸우는 바람에 가지 못하였으니, 목이 빠져라 기다렸을 시어머니와 혼자 음식 장만을 하느라 힘들었을 동서, 명절을 보내고 들이닥칠 시누이들에게 변명할 말을 고르느라 그녀는 또 한참을 고민하였다.
 
어둑어둑 해지자 그녀는 덕분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단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더 이상 손님은 오지 않은 채 어둠이 세상을 삼켜버렸다.
 
조명등의 스위치를 올리며 문을 괜히 열었나 하고 후회를 하는 중에 거짓말처럼 손님들이 줄줄이 몰려왔다. 할아버지부터 손자들까지 삼대가 몰려온 집도 있고, 단출하게 동서지간에 오거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팔짱을 끼고 나타나기도 했다. 덕분에 자리가 금새 다 차버렸기에 방바닥에 앉거나 소파 팔걸이에 걸쳐 앉기도 했지만 누구하나 얼굴 찌푸리지 않고 왁자지껄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이웃으로 살아온 그들은 좌석 구분도 없이 추억담을 나누었고 카페는 잔칫집이라도 된 듯 들썩였다.

명절이란, 가족이란, 인생이란 즐겁고 소중하고 따뜻하다는 웅변 같은 이 장면의 전 후 어딘가에 종신형을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도 숨어 있을 것이었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카페를 차려주어 고맙다는  덕담들을 남기고. 대문을 닫고 조명등을 끄고 뒷정리를 하며 그녀의 안녕을 빌었다.   (박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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