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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청공장 지하창고에서의 삼일
<기록되지 않은 노동>① 소규모 하청공장의 여성들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소규모 하청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수기 형식으로 기고한 첫 기사의 필자 윤춘신님은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입니다. 이 연재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일년 전 새해 정초였다.
 
내 집에서 버스로 세정거장 거리에 있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첫 출근 날, 나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걸어도 삼십 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교통비를 쓰고 싶지 않았다. 잔뜩 웅크린 채 도시락을 옆구리에 끼고 종종 걸음을 쳤다. 한겨울 바람이 내복 입은 무릎을 시리게 했다. 쉰 하나 나이니 그럴만했다. 내 몸이 내 나이를 따라온다는 사실에 쓸쓸해졌다.
 
첫 출근한 나를 공장 과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동네 골목 점포로 쓰였음직한 사무실 문을 밀고 나서는 과장 뒤를 따라 나섰다. 작업장은 사무실 뒤 지하실이었다. 어둑시근한 지하계단 한 층을 꺾어 다시 내려가는 계단에서 우뚝 멈춰 섰다. 열린 구멍마다 파고 드는 냄새. 화공약품 냄새와 본드 냄새가 뒤섞인 계단에서 걸음을 떼기 두려웠다. 시급 사천 원. 단순조립이라는 일터에서 내가 할 일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챘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허위를 나는 내게 말할 수 없었다. 도시락 가방을 팽개쳐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따뜻한 밥 먹기를 포기하고 밥값으로 받게 될 사천 원과, 아홉 시까지 야간작업, 주말근무까지. 과장이 설명해주는 백사십만 원 정도를 벌게 될 시간표 앞에서 찌질한 내 인생에 구역질이 났다.
 
형광등이 환하게 밝혀진 작업장 내부에 정물화처럼 두 여자가 앉아 있었다. 벽면을 따라 붙박아 놓은 나무판 작업대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작업하는 두 여자 가운데 앉았다. 나는 한눈에 그녀들이 이주여성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내 나이 절반쯤 돼 보이는 그녀들은 힐끗거리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자동차 의자 내부에 들어간다는 스티로폼 압축판에 같은 모양의 접착 시트지를 벗겨 붙이는 일이었다. 작업은 쉽고 간단했다. 한 시간이면 숙달될 거라며 작업순서를 알려주는 과장한테 물어보았다.
 
“환기는 어떻게... 공기 정화기는 없나요?”
 
“문 열어놨잖아요”
 
과장은 퉁명스런 한마디를 내뱉고 작업장을 빠져나갔다.
 
제기랄. 나는 튀어나오는 욕을 꾹 삼켰다. 화장실은커녕 창문 하나 없는 지하창고 작업장. 근로환경 따위를 가릴 처지가 되긴 한 건지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해가 바뀔 때마다 임금 협상을 하는 저들과, 파업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손실을 말하는 저들과, 문을 열어놨다는 과장과, 비정규직의 처우를 묻는 저들과, 밥값조차 아껴야 하는 나는, 서로 종이 다른 인간이다.
 
찌이익... 톡톡톡. 접착 시트지 벗겨내는 소리와 끈적이는 접착부분을 압축판에 눌러 붙이는 소리를 사람 발자국 소리가 밀어냈다.
 
과장 뒤를 따라 들어오는 내 나이 또래 여자. 나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한 여자가 내 등뒤에 앉아 나처럼 작업 순서를 배웠다. 서로에 대한 인사랄 것도 없이 일만 가르쳐주곤 나가버리는 과장을 싸가지 없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니 사무실로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여자는 들은 체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를 흔들어 줄 때야 비로소 일어나는 여자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청각장애인인 그녀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두 명의 여자가 알아듣는 언니, 밥, 돈, 빨리 라는 말과 눈빛만으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네 명 여자 모두 여섯 시에 퇴근하지 않았다. 작업장 가득 채워진 화학물질 냄새와 적막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튿날, 나는 단단히 중무장을 했다. 마스크를 쓰고 한 대뿐인 선풍기 모양 온열기를 자꾸만 끌어 댕기기 미안해서 두툼한 점퍼도 입었다. 자신의 발을 불쑥 내밀며 꽃덧버선을 보여주던 베트남 여자처럼 양말 한 켤레를 더 신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릴 때 미리 준비한 두통약도 먹었지만 자꾸 무거워지는 머리와, 씀벅거리는 두 눈의 피로를 털어낼 수 없었다. 여섯 시 퇴근시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눈인사를 한번, 그 다음날 한번 더한 게 끝이었다. 나는 삼일 만에 그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과장은 그간 일한 돈은 삼 개월 후에 입금될 거라 말했다. 삼 개월 후면 봄이다. 봄은 점점 깊어지는데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과장 목소리는 씨근덕거리느라 숨소리조차 거칠었다. 일하다 중간에 그만 두면 돈을 줄 수 없다는 말을 안 한 게 자신의 불찰이라고 했다. 사장님이 알아서 할 거라며 떠넘기는 과장 말을 듣자마자 내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다.
 
나는 미친 듯이 공장을 향해 내달렸다.
 
열려진 사무실 문으로 과장 모습이 보였다. 접착 작업을 끝낸 완제품에 박스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과장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사람 서넛이면 꽉 들어찰 비좁은 공간에 시퍼렇게 날 선 눈빛으로 과장을 쏘아보았다. 나는 사업자등록번호를 물었다. 과장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요? 고소라도 하시게? 고소하면 누가 준답디까? 아줌마, 그 나이에 이런데 다니면 쪽 팔린 줄 아셔야지. 며칠이나 일했다고 돈을 받으러 와. 과장은 내 삶의 불리한 조건들을 약점 삼았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내 욕구와 최소한의 돈을 지켜야 하는 내 욕구가 벼랑 끝에 섰다. 뒤로 물러설 데가 없었다.
 
나는 과장이 한말을 꼭꼭 씹어서 내뱉었다. 네 말 맞아. 못 배워서, 늙어서, 이 꼬라지로 살아서, 그 돈이 필요한 거야. 그 돈 꼭 받아야겠어. 지금 입금하지 않으면 내가 붙인 거 싹 다 뜯어버릴 거라며 악다구니를 했다.
 
공장 입구 사거리 현금 인출기 앞에서 시간을 재고 있었다. OO전자 입금액 구만육천 원. 그 돈엔 야간작업수당과 내 밥값이 빠져있었다. 이나마 받게 된 게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내 모습이 생소했다.
 
밥은 나눠 먹을 수 있어도 빼앗아 먹는 게 아니다. 밥이 상대에 따라 줄 수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날, 나는 배가 고팠다.  (윤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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