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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야생 고래, ‘돈’이나 ‘음식’이 아니다
[일다] www.ildaro.com 한국정부의 과학포경 발표 철회해야 
 
한국 정부가 지난 4일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제64차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고래잡이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과학연구용 포경’(scientific whaling)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불필요한 살상’이며 ‘사실상의 포경 재개’라는 국내외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배설물로도 연구할 수 있는데, 포경 고집하는 속내는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가 7월 6일 공식입장을 밝혔다. 포경금지 후 고래 개체수가 많이 증가돼 이에 따른 어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어민들의 호소가 있어, 고래에 의한 어업 피해와 먹이사슬 관계 등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달리 말해 먹이사슬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고래의 배를 갈라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 고래 보호 캠페인 이미지     © 녹색연합  
 
환경운동진영은 고래를 죽이지 않고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배설물 수거 등을 통해서도 먹이조사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호주 정부가 비(非)살상 방식의 연구방법을 적극 공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우리 정부는 침묵 일관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굳이 고래를 ‘죽여서’ 연구해야겠다는 입장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유일하게 ‘과학연구’를 명목으로 한 포경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인 일본은 매해 1천 여 마리 고래를 잡아 개체당 극히 일부분의 시료를 채취한 후 99% 가량을 시장에 유통하고 있다. 사실상 상업포경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혼획과 불법포획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밍크고래
 
포경 허용을 요청하는 이들은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가 포경을 전면 금지하면서 지금은 고래 개체수가 충분히 회복되었다고 주장해왔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 연안에 살고 있는 대형고래 중 개체수가 가장 많고 혼획과 불법포획의 주 대상이 되는 밍크고래는 현재 1만6천여 마리로 추정된다.
 
그런데 1만6천여 마리는 말 그대로 ‘추산’일 뿐이며, 그 수가 포경을 허용해도 될 만큼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자료는 없다.
 
밍크고래는 세계적으로 여전히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른 고래들과 마찬가지로 밍크고래는 번식률이 낮다. 10개월에 이르는 임신 기간을 가지며 한 마리만 낳는다. 태어난 새끼가 모두 성체로 자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다 속 환경은 고래에게 점점 더 위협적이 되고 있다. 연안 이곳 저곳에 쳐진 그물망이나 바다 속에 버려진 폐기물에 희생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우리나라 연안에서만 매해 300여 마리의 밍크고래가 혼획되거나 좌초되어 해안으로 밀려온다. 때로 고속선에 충돌하는 일도 발생한다. 어선, 여객선, 군함 등에서 발생되는 소음과 초음파도 고래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다.
 
불법포경으로 인한 희생도 심각하다. 국제포경위원회(IWC)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불법포획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지난해 89개 IWC 회원국이 보고한 규정위반 사건 23건 중 21건이 울산 앞바다 등 우리나라 연안에서 발생했다. 포획된 21마리는 모두 밍크고래로, 작살을 이용한 조직적인 불법포경에 희생되었다. 이 숫자는 ‘적발된’ 숫자일 뿐이다.
 
한국에서 불법포경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고래고기를 소비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고가에 거래되는 탓에 밍크고래 한 마리면 수천만 원 이익을 남길 수 있다. 포경은 불법이어도 혼획된 고래를 합법적으로 팔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고래를 돈으로 보는 왜곡된 인식이 생겨났다. “바다의 로또”라는 말로 이러한 인식을 부채질한 언론 책임도 크다.
 
새로운 수요층 물색, 고래고기 유통 확대하는 울산 남구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서 고래고기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울산 남구 김두겸 청장은 2006년 남구청장에 당선된 이후 줄곧 정부를 향해 포경 허용을 요청해왔다. 고래고기 소비를 지역사회의 주된 수익 원으로 삼아, 정책적으로 고래고기 유통을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 포경은 불법이어도 혼획된 고래를 합법적으로 팔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고래를 불법포획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으며, 고래고기 소비시장도 유지되고 있다. © 일다 
 
울산 남구청 주최로 2000년부터 열리고 있는 고래축제에서는 고래 회나 수육 등을 파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수요층 확대를 목표로 음식개발에 나서, 2010년에는 ‘피자’와 ‘햄버거’까지 선보였다. “특유의 향 탓에 일부 마니아들의 기호식품으로 머물러 있던 고래고기를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시도”라는 주최 측의 설명은, ‘전통적인 식문화’ 때문에 포경을 허용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말이다.
 
울산 남구청은 현재 50억을 들여 고래해체장까지 건립 중에 있다. 공식적인 고래고기 유통확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학포경’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고래고기 물량이 늘어난다면, 수요가 공급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래고기를 소비해선 안되는 이유
 
포경 재개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는 왜 고래를 보호하고자 하는가.
 
“고래는 생선이 아니다”라는 환경운동가들의 구호가 있다. 고래가 포유류라는 이유로 다른 물고기와 차별을 두려는 얘기가 아니다. 고래는 ‘인간의 먹잇감’ 이전에 바다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큰 축으로, 멸종 위기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다생태계와 인간은 지구라는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이다. 그 생태계에 속한 한 구성원으로서 인류는 자신의 행동이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무분별한 바다생물의 남획으로 생태계 교란을 가져오거나, 먹이사슬 맨 위에 있는 종을 멸종시켜 바다 생태계의 축을 무너뜨릴 권리가 없다는 얘기다.
 
고래고기를 소비해선 안 되는 또 다른 ‘실질적’ 이유가 있다. 바로 중금속 오염 문제다. 시중에 고래고기로 유통되는 고기 중 상당수는 돌고래로 알려져 있다. 돌고래와 같은 이빨고래류는 육식성 상위포식자로, 수은 등의 중금속이 다량 축적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환경운동연합이 국제동물복지기금(IFAW) 지원으로 2003년 12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부산과 울산, 포항 등지의 고래고기 시장과 식당에서 구입한 113개의 고래류 고기 샘플을 분석한 결과, 분석 대상의 57%인 64개 고래류 고기가 0.5ppm 이상 수은에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8건은 총 수은 오염치가 1ppm 이상으로, 최고 155.6ppm까지 오염된 토종고래 상괭이의 간도 버젓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었다. 155.6ppm이라면 한 젓가락만 먹어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주일간 수은 최대 섭취기준인 ‘0.005mg/체중(1kg)/1주일’을 초과한다.
 
고래가 수은에 오염된 이유는 물론, 인간이 바다를 오염시킨 결과다. 탐욕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윤리조차 잃어버린 괴물이 되어버릴 것인가? 돈이 되면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는 생각은 결국,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와 함께 병들게 할 뿐이다.  (박희정 / 여성주의 저널 '일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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