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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가뭄보다 더 숨막히는 불편한 진실, 비닐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5. 24. 14:27

니루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 이라기보다는 반성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스무 번째 이야기 
 
달포 전에 심은 옥수수와 강낭콩, 그리고 땅콩이 싹을 틔웠다. 씨앗을 심고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애가 탔는데, 아닌 게 아니라 마른 흙을 헤집고 나오느라 그들도 힘이 들었는지 연두 빛 고운 얼굴이 어쩐지 창백해 보이기까지 하다.
 
오월, 우리는 목마르다    

▲  가뭄에도 기를 쓰고 뿌리를 내려 살아남은 고구마 모종.   © 자야 
 
며칠 전 흩뿌린 비로 봄 가뭄이 해소되기를 바랐건만. 양이 적었던 탓일 게다. 한낮이면 펄펄 끓는 뙤약볕 아래, 땅은 마냥 뜨겁고 흙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바람 속으로 흩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작물들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걸 보면 참으로 신묘하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늘을 향해 꼿꼿이 각을 세우고 있던 양파 줄기들이 하룻밤 사이에 쓰러지고, 댓잎처럼 기품과 지조가 흐르는 마늘 또한 스스로 이파리 끝을 누렇게 변색시키면서 수확기가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미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것들이 봄 가뭄쯤 너끈히 이길 힘을 제 안에 품고 있는 것과 달리, 지금이 모종 심기에 적기인 고구마는 사정이 좀 다르다. 농사 고수인 동네 아주머니들 말씀이 고구마는 심은 지 며칠 안에 생존 여부가 결정된다더니, 얼마 전 밭에 들른 나는 몇백 포기의 고구마 모종 중 상당수가 두둑에 엎어져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 말의 의미를 '몸'으로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로 밭을 얻으면서 우리 딴에는 꽤 넓은 면적을 할애해 심은 작물이 그리 돼 버렸으니 기분 좋을 리야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기를 쓰고 살아남았으나 여전히 목마른 짐승처럼 헉헉대고 있는 모종들을 마주하는 일이다.
 
근처에 있는 다른 밭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 K가 틈틈이 물을 떠다 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 이럴 때 지나가는 비라도 한바탕 시원하게 내려준다면 오죽 좋을까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르는 기상청 사이트에선 조만간 비 소식이 없다는 공지만 계속되고 있어 불쑥 야속한 마음이 든다.
 
"지금은 비니루 아니면 안 돼"                
 
날이 가물다고 해야 할 일을 미룰 수는 없기에 K는 주말마다 콩과 들깨 심을 두둑을 만드느라, 나는 주로 밭 곳곳에서 조밀하게 올라오는 작은 풀씨며 매화나무 아래 웃자란 풀들을 매느라 분주하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호미나 삽괭이로 땅을 파게 되는데, 그때마다 어찌나 많은 비닐 조각들이 나오는지 놀라울 정도다.
 
로터리(밭을 뒤엎는 작업으로 경운이라고도 함)를 치기 전에 두둑을 덮고 있던 비닐을 치우느라 갖은 애를 썼는데도, 여전히 밭 곳곳에는 검은 색의 조각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보통은 일부가 지표 위로 올라와 있어 쉽게 눈에 띄지만, 아예 흙 속 깊이 묻혀 보이지 않는 것도 상당하다.
 
이는 전에 밭을 돌본 이가 폐비닐을 제 때, 잘, 걷지 않은 탓이 크다. 수확이 끝나면 곧바로 두둑에 씌워둔 비닐을 걷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이듬해 봄이 되어 밭을 갈 때까지 방치하기 일쑤다. 그러면 햇살과 바람과 비에 삭을 대로 삭아 쉬이 뜯겨 나가고, 그만큼 많은 양의 비닐 조각이 땅 속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더욱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것들을 깔끔히 제거하기보다는 보통 그 상태에서 트랙터로 갈아엎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밭에 묻히는 비닐의 양은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닐 씌운 텃밭.  땅 본연의 생명력을 되살리기보다는 비닐을 써서라도 많은 수확을 올리기를 기대한다.   © 자야 
 
물론 더 근본적인 원인은 비닐 멀칭을 당연시하고 농사에 꼭 필요한 요건으로 여기게 된 풍조에서 찾을 수 있겠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나라 농가에서 비닐을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지금은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땅은 말할 것도 없고 집 앞의 아주 작은 텃밭에마저 비닐이 씌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유인즉슨 비닐을 써야 풀 나는 것을 방지하고 땅을 촉촉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 하여 맨땅에 그냥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온 나는 지난 3년 간 동네 어른들에게서 수시로 이런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비니루도 안 씌우고 무슨 밭을 하겠다고. 지금은 비니루 없인 안 돼."
 
올 들어 영 그런 말씀이 없기에 마침내 동네 분들이 나를 포기하셨나 보다고 좋아했는데, 웬걸, 이제는 새로 얻은 밭 주변에서 일하는 분들로부터 똑같은 말을 듣는 처지가 되었다. 며칠 전엔 할머니 한 분이 당신 집에 있는 여분의 비닐을 가져다 주면서 고구마 농사 안 망치려면 지금이라도 빨리 씌우라 하셨다고, K가 웃으며 전하기도 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순간 내 눈엔 비닐을 건네는 그분의 손이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때는 비닐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뚝딱 농사만 잘 지으셨을 단단하고 올곧고 아름다운 손이. 지금도 여전히 단단하고 올곧고 아름답지만, 그러나 이제는 비닐 없인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고 믿게 된 안타까운 그 손이.
 
가뭄보다 더 숨막히는 불편한 진실 
 

비닐을 씌우면 풀을 좀 더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도 비닐을 뒤집어쓰면 숨이 막히고 곧 죽을 것처럼 불쾌해지는데 땅이라고 괜찮을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친환경 농법이나 자연농법을 강조하는 분들은 비닐 멀칭이 '죽은 땅을 한 번 더 죽이는 행위'라고 말한다. 비닐은 지열을 높이고 흙 속 미생물의 호흡을 방해해 결국은 땅이 지닌 근원적인 생명력과 힘을 약화시킨다는 얘기.
 
오래도록 농사를 지어온 분들이 이와 같이 단순한 진실을 모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짚과 낙엽을 덮어주는 것이 비닐을 씌우는 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건강하며 친환경적인 방법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 아닌가.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더 많은 비닐을 소비하게 되는 이유는 농업이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비닐 멀칭과 하우스가 관행으로 굳어졌고, 그 사이 땅이 지닌 본래의 생명력이 상당 부분 약화되어 이제 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일정한 수확량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생산력과 경제력을 위해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농약에 일단 손을 대고 나면 점점 더 독한 놈을 찾게 되는 것처럼.
 
문학을 공부한 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45년 전에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파괴적인 산업문명을 비판하는 다수의 글을 발표한 웬델 베리Wendell Berry는, 농업의 산업화란 살림(웬델 베리는 살림의 의미를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보존관계로 이어줌으로써 생명을 지속시키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한다)의 노력 없이 땅에게 생산만을 강요하는 시도이며, 그로 인해 농업으로부터 살림의 전통이 축출됐다고 고발하고 있다.
 
웬델 베리의 말은 규모가 크고 작고를 떠나서 왜 농사를 짓는가, 혹은 지으려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함을 내게 알려준다. 나뿐 아니라 귀농을 꿈꾸고 귀촌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에서라고 한들(예를 들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든가) 단지 땅에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든다면, 농사는 '살림'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게 될 테고 그것은 결국 '죽임'에 더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버라면 얼마나 좋을까?      
 
밭일을 귀찮고 번거롭게 만드는 비닐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이 웬델 베리의 글을 만나면서 다소 무거운 성찰과 반성으로 변모했다. 이것이 나의 습관적인 '오버'라면 얼마나 좋을까. 비닐 따위가 뭐 대수냐고 가볍게 넘겨도 정말 괜찮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언정 나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살림과 죽임의 경계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눈에 보이는 작은 것 너머에 그보다 큰 맥락과 의미와 진실이 있음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단지 오버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실은 그래서 나도 슬프다. 오버였으면 싶은데 그게 아니어서. 대수가 아니었으면 하는데 알고 보니 대수여서.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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