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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시각장애인 목욕탕 입장 거부해도 된다?
‘정당한 법적 논리’로 포장한 장애인 차별적인 판결을 보며 
 
=>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욕탕 입장을 거부당한 시각장애인 여성이 업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업주의 편을 들어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가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 기사는 공감의 블로그에도 개제되었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목욕탕 주인 ‘시각장애인 혼자오면 안받아준다’
 
시각장애 1급의 전맹(全盲) 상태인 여성 김모씨는 2010년 12월 14일, 집 근처 공중목욕탕을 이용하기 위해 남성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목욕탕 매표소에 갔다. 김씨는 이전에도 여러 번 동성(同性)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 그 목욕탕을 이용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목욕관리사의 도움을 받아 이동과 탈의, 입욕 등을 마쳤다.
 
그러나 동성(同性) 여성보호자와 함께 오지 않은 김씨를 본 목욕탕 업주는 “시각장애인이 혼자 오면 어떻게 하느냐, 다음부터 도와줄 사람이 함께 오지 않으면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김씨와 동행했던 활동보조인이 목욕탕 업주에게 욕설을 하는 등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업주는 김씨를 목욕탕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동반한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목욕탕 입장을 거부당한 시각장애인 김씨는 목욕탕 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15일, 대전지방법원은 이 사건이 장애인 차별임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무지’가 낳은 판결
 
목욕탕 입장을 거부당해 수면장애까지 동반할 정도로 심한 모멸감과 좌절감을 느꼈던 원고 김씨의 청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법원이 들었던 판결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① 시각장애 1급의 원고가 목욕탕을 이용하려면 입장, 탈의, 샤워기.온탕.냉탕.사우나실 등의 이용, 착의, 퇴장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도움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도움 제공을 개인인 피고(목욕탕 업주)에게 일방적으로 부담 지울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② 피고로 하여금 혼자 온 시각장애인을 입장시킨 후 자발적인 도움을 주도록 유도한다면, 이는 공익적 성격이 있는 장애인 보호에 따른 비용이나 부담을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 헌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규정들을 고려하면 국가, 지자체에서 부담할 비용이다.
 
③ 원고가 목욕탕을 이용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업주인 피고가 언제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지자체는 장애인전용목욕탕을 운영한다. 또한 원고는 장애인복지법상 활동보조인을 제공받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시각장애인을 혼자 목욕탕에 입장시키도록 하는 것은 목욕탕 업주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거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많은 전맹 시각장애인들이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혼자 목욕탕에 간다. 목욕탕에 가면 목욕탕 측 사람에게 보관함 열쇠를 요청하거나, 샤워기나 욕탕의 위치를 문의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에는 옆 사람들이 잠시 도와주는 걸로 끝난다. 몇 번 가면 위치에 익숙해져서 도움 없이 목욕을 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목욕탕을 이용하는데 지속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또한, 시각장애인 고객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일을 개인인 피고에게 일방적으로 부담 지울 수 있는 명시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의 유형 등을 고려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를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잠시 동안 약간의 도움을 주면 끝나는 일이, 목욕탕 운영에 과도한 부담이 되고 현저히 곤란한 사정을 생기게 하는 일일까?
 
장애인을 배제하고 분리시키는 비장애인 중심 논리

▲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 시설물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행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책자 중 ©자료제공: 국가인권위원회
 
특히 “원고가 목욕탕 이용 시 사고가 발생하면 업주인 피고가 언제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한 점이나, “일부 지자체는 장애인전용목욕탕을 운영한다”는 근거를 든 것은 매우 위험한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장애인을 제한하고, 배제하고, 분리시키고, 거부하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폭력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것은 장애인은 보험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크니 보험에 가입해서는 안 되고,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을 자유로이 외출을 하게 되면 사고 위험이 있으니 시설 바깥으로 못 나가게 해야 하며,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니까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 수 없다는 논리와 맥을 같이 한다.
 
그렇게 ‘사고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한다면, 아무도 목욕탕에 가서는 안 되고, 아무도 보험에 가입해서도 안 되며, 모두가 시설이나 정신병원에 보내져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니까 좀더 사고위험이 높을 것이라는 편견은, 실은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 비장애인들의 집단이기주의 발로이다. 나만 편하면 되고, 다른 이들이 겪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모멸감과 수치심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는 장애인전용목욕탕을 운영한다는 말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목욕 한번 하러 가기 위해 KTX라도 타고 여행하는 셈 치고 다녀오라는 것인가? 아니면 장애인과 섞이기 싫으니, 장애인은 전용목욕탕에 다니고, 장애인만 다니는 특수학교에 다니라는 이야기인가?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 해도, 장애인을 분리시키고 배제하는 차별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사실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특수시설이나 특수과정을 제공한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배려’라는 형태의 차별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처럼 ‘정당한 법적 논리’로 포장된 장애인 차별적인 판결은, 장애인들의 사회 활동을 막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데 최소한의 배려를 거부한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장애인에 대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차별’로 규정한 이유는, 이러한 편의 제공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서는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의 제공이 ‘배려’라고 하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장애인에게 제공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공동체를 보다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에게도 최소한의 배려 의무가 부과될 수밖에 없다.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없음에도 최소한의 배려 의무를 거부한다면, 이러한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우므로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거리를 활보하는 것. 이런 것들은 전혀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 오히려 비장애인들에게는 권리로 인식되지도 않을 당연한 일들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이처럼 당연한 것들이 특별히 권리로서 인정받아야만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비춰진다. 사회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례의 논리대로라면 시각장애인은 혼자서 식당에 갈 수도, 혼자 지하철을 탈 수도, 혼자 책방에 갈 수도 없다. 그러한 시설을 이용하려면 시설주로부터 최소한의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무를 개인에게 부과하는 것은 장애인 보호에 따른 비용이나 부담을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이어서 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선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내면의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염형국 /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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