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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가 한 일이 뭐 있냐”는 사람들에게 
[일다] ‘oo녀 시리즈’와 여성단체 비난에 깔린 ‘혐오’ 
 
지난 주 또 하나의 ‘oo녀’ 사건이 인터넷을 휩쓸었다. 이번에는 ‘버스무릎녀’란다.
 
사건의 발단은 한 남성이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이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17시 45분발 버스를 타고 가던 승객들이, 버스 고장으로 고속도로 갓길에 3시간을 기다리다 새벽 2시에야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
 
글을 올린 남성의 말을 빌리자면, 분노한 승객들이 “보상”을 요구하며 “하나같이 무식하게 난리”였고, 그 중 한 “싸가지 없는 여성”이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한 젊은 여성과 그 앞에 버스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무릎을 꿇은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원문이 전달한 ‘그리 큰 문제도 아닌데 오버해서 무릎을 꿇렸다’라는 뉘앙스 때문에,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 여성을 비난했다.
 
사건의 진상은 ‘소문’과 달랐다
 
게시물이 퍼져나가자 얼마 안 있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사건의 목격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19일 SBS뉴스가 이 목격자와 함께 버스회사 직원을 인터뷰한 것을 보도했는데 양측의 설명이 일치했다. 그런데 목격자의 설명은 사진을 올린 남성의 말과 많이 달랐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애초에 이 회사가 “고장난 버스”를 운행했고, 결국 버스가 고속도로 갓길에 2시간가량 정차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두운 저녁 시간에 대부분 트럭들이 오가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버스가 정차한 갓길은 낭떠러지 같은 곳이었다. 불안한 승객들이 예비버스를 요구하자 회사는 버스가 없다며 수리를 했고, 버스가 멈춘 후 3시간 만에야 간신히 출발했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갓길은 매년 30명 가까이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위험한 곳이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치사율은 42%나 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러한 곳에 승객들이 3시간이나 방치되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으니, 분명히 버스회사 측에서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다. 애초에 차량 정비에도 문제가 있었다니,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면 큰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승객들이 서울에 도착하자, 버스회사 소장은 사과도 없이 버스요금을 환불해주고 택시비 만원을 지급할 테니 연락처를 남기고 귀가하라고 했다. 승객들은 사과를 요구했지만, 무성의한 태도로 사과를 해 “오히려 승객이 가해자 같이” 느껴졌으며, 소장은 “당당”했다고 한다.
 
“죽다 살아난 듯한 느낌”이었던 승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항의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그 와중에 한 여성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며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소장은 ‘못하겠다. 고소하려면 하라’고 나왔고, 사태를 일단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한 버스회사의 다른 관계자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는데, 문제의 사진이 찍힌 것이었다.
 
‘oo녀 시리즈’에 담긴 여성에 대한 비하
 

승객들을 사고의 위험에 몰아놓고도 진심 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버스 회사의 대응이 밝혀지면서, ‘버스무릎녀’에 대한 비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쑥 사라졌다.
 
사건의 정황을 왜곡한 게시물을 올린 문제의 이 남성은, ‘내가 oo녀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미니홈피 방문자가 수천 명이다’ 라며 SNS를 통해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다, SBS뉴스가 나간 이후로 계정들을 삭제하고 종적을 감췄다.
 
이 정도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으니 “oo남”이라고 불릴 자격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별 이야기 없이 조용하다. 참 이상하다.
 
그 남성은 항의하는 수많은 승객들 중에서 가녀린 몸에, 그야말로 ‘앳된 아가씨’처럼 차려 입은 젊은 여성 하나를 지목해 굳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수고를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은 자신이 ‘oo녀 시리즈를 탄생시켰다’는 남성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여자들만은 아닐 텐데, 인터넷 상에는 시리즈가 탄생할 만큼 ‘oo녀’들의 등장이 줄을 이었다. ‘oo남’이라고 한다면 고작 ‘막말남’ 정도가 유명할까.
 
‘여성단체가 하는 일이 뭐 있냐’는 사람들
 

‘oo녀’의 유행은 인터넷 상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로 지적되어왔다. 최근 인터넷 상에 만연된 이러한 여성혐오는 여성부와 여성단체에 대한 비난에서도 드러난다.
 
고(故)장자연 사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성폭력 범죄 등 사회면에 여성관련 사건이 이슈화될 때마다, 거기에는 항상 여성단체와 여성부를 비난하는 의견이 달린다. 하나같이 ‘너희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냐’는 식의 비난이다.
 
여성단체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뭐한 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간단한 답은 이것이다. 여성인권과 관련한 사안을 당신이 알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그 여성들의 활동이 이루어낸 성과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자. 해방 후 반세기 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더럽혀진 여자라 손가락질 당하며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쉬쉬하며 살아야 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기와,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여성들의 끈질긴 의지가 없었더라면, 이 문제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20년이 넘는 투쟁과 연대활동이 이어져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성폭력 문제는 어떠한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고 있는 곳이 바로 성폭력 관련 민간단체와 기관이다. ‘하는 일 뭐 있냐’ 비난 받는 바로 그 ‘여성단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해자를 지원하고, 법 제도와 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해 쉬지 않고 활동한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때로는 가해자들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걸 감수해가며 말이다.
 
생각해보라. 불과 십 수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법적으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는 사실은 큰 변화다. 이런 게 어느 날 저절로 생겼다고 보는가?
 
여성단체들의 뭘 하고 있는가를 여기서 줄줄이 써 알릴 필요도 없다. 진정으로 궁금하다면 기사 검색만 몇 번 해봐도 알 수 있고, 여성단체 홈페이지에서 활동내역만 찾아봐도 된다.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비난부터 해대니 ‘버스무릎녀’같은 루머만 양산되는 것이다.
 
미워하기 때문에 이유를 만드는 것이 ‘혐오’의 속성
 
‘혐오’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파고들면 그 이유라는 것들은 대개 얄팍하기 짝이 없다. 이유가 먼저고 혐오가 그 결과인 것이 아니라, 혐오가 먼저고 그 이유는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게 혐오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4.11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15번으로 지명된 이자스민씨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어 논란이 되었다. 그가 내지도 않은 정책이 허위로 만들어져 떠돌았고, 이를 근거로 삼아 이자스민에 대한 비난은 더 거세어졌다.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재일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헛소문을 퍼트렸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덧씌운 음탕하고 돈만 알며 부패했다는 뜬소문은 홀로코스트를 합리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죠리퐁이 여성의 성기모양을 닮아 여성단체가 판매 금지를 요청했다는 둥 헛웃음만 나오는 헛소문을 믿고 비난 대열에 참가할 수 있는 건, 애초에 그 대상에 대한 못마땅한 마음이 커서다.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려고 하니, 최근 수원 살인사건에 대한 경찰의 무책임한 대응을 비난하는 여성단체들의 목소리를 담은 <일다> 기사를 보고서까지 “여성단체는 뭐 하냐”고 비난해대는 촌극도 벌어진다.

혐오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여자들을 보면 욕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고, 여성단체 얘기만 나오면 뭐 하는 곳인가 싶어 울화가 치민다면, 잠시 비난을 멈추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라.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노력 정도는 꼭 기울여 보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그 ‘혐오’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박희정 편집장)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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