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진실을 직시하는 건 늘 너무 힘들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40) 
 
집에서 한 시간 남짓 걸어가면 큰 호수가 있다. 일주일 전부터 이 호수를 다니고 있다. 암수술을 받은 지 아무리 오래 되어도 안심하지 말고, 운동도 열심하고 음식도 신경 쓰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나서 약을 끊고 병원도 자주 가지 않는 상황이 되니, 마음가짐이 느슨해지는 게 사실이다.
 
여전히 유기농 식재료로 식사를 하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지만, 밤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외식할 궁리를 하는 등, 나쁜 생활습관을 조금씩 늘리고 있었다. 하지만 암재발에 대한 경각심 때문에 운동을 더 하기로 결심한 건 아니다. 그보다 나쁜 습관으로 뱃살이 불어나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얼른 운동을 더 하자, 음식도 더 신경 쓰자’ 하면서 요란을 떨게 된 것이다.
 
나는 불어나는 뱃살을 막기 위해서는 그동안 해온 운동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고, 좀 더 운동량을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또 해가 있을 때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들 하니, 이왕이면 오전에 걸어가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시작된 호숫가 산책이었다.
 
일주일을 했을 뿐인데, 총 2시간 반 걸리는 이 산책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낮 시간을 훨씬 활기차게 보내게 되었고, 먹고 싶은 만큼 충분한 식사를 해도 몸이 부는 느낌이 없어 좋다. 무엇보다 밤에 잠을 잘 자게 되었다. 밤이 되면 절로 졸음이 오는 것은 물론, 새벽에 자주 깨는 증상도 없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너무 탄다.
 
유방암 수술 후, 나는 가슴이 잘린 내 몸을 긍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완벽하게 자긍심을 회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은 잘린 가슴에 대해 훨씬 담담하다. 그래서 대중탕 같이 가슴을 드러내야 하는 장소에서 덜 긴장하며 다닌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자매들과 찜질방에도 갔다. 가족들 앞에서 잘린 가슴을 드러낸 건 그날이 수술 후 처음이었다. 그들에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나는 이런 내가 스스로 자랑스러워, 다음에 또 가자고 나서서 제안하기까지 했다. 

▲ 수술 후 복용한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낯빛이 병색이 완연하다고 느껴지는 검은 빛으로 변해갔다. ©일다 
 
그러나 얼굴에 대해서는 좀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수술 후부터 복용한 항암제의 부작용은 2년이 지나면서 더욱 심해졌다. 지방간에, 복부비만, 자궁내막증까지……. 게다가 낯빛이 점점 거무튀튀한 짙은 회색으로, 병색이 완연하다고 느껴지는 검은 빛으로 변해갔다. 실제로 병원의 암센터를 오가며 만난 환자들 중에 이런 얼굴빛을 한 사람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너무 아픈가보다!’ 생각했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항암제의 부작용 때문이기도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2년이 지나면서 내 얼굴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디가 안 좋냐? 혈색이 너무 안 좋다”는 걱정의 말을 듣는 횟수가 점점 늘어날 무렵, 의사인 한 지인을 통해 내가 먹는 항암제가 피부를 까맣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좀 더 있었지만, 3년차가 되었을 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에스테틱 클리닉으로 달려가 의사의 상담을 받았다. 의사는 내 얼굴을 살피고는 영양과 보습을 주면서 하는 레이저치료를 제안했다. 나는 의사의 제안에 동의하고 몇 달 동안 이 치료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도 1년 넘게 얼굴을 돌보러 꾸준히 병원을 다녔다.
 
이백 만원이 넘는 돈을 얼굴에 들였지만, 아깝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들로부터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행복했다. 그런 인사는 인사가 아니라, 마치 주문 같았다. 더욱이  사람들로부터 “예뻐졌다, 젊어 보인다”는 말까지 듣게 되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나는 이런 유쾌한 상황이 좋았다. 그래서 너무 심하지 않다면, 또 그 결과로 행복감까지 느끼게 된다면, 외모를 가꾸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외모에 신경 쓰는 이런 내가 싫지 않았다. 게다가 ‘아픈 사람이 아픈 티를 내며, 다닐 필요는 없잖아!’ 라고 합리화하며, 이런 나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마다 얼굴을 가꾸러 병원에 가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호수를 다니면서 얼굴이 너무 타는 것이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모자도 눌러 써 보지만, 들판에 쏟아지는 햇살을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동안 돌본 것이 무색할 정도로 금방 얼굴이 시커멓게 되었다. 나는 거울을 보면서 또 한 번 화들짝 놀랐다. 소위, 뽀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얼굴을 가꿔야 하는 것은 물론, 이런 식으로 햇볕을 쬐어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우선, 급한 대로 얼굴 전체가 잘 가려지는 챙이 넓은 모자를 장만해 쓰고 걸으며 생각했다.
 
‘항암제를 끊었으니, 예전 같은 상황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사십이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나는 왜 이렇게 얼굴에 신경 쓸까? 건강보다 아름다움에, 젊음에 집착하는 건 아닐까?  혹시, 나이 들어간다는 걸, 늙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또 다시, 도전받는 기분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존적 상황은 나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이혼 후에는 ‘이혼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딸을 키우지 않은 건 곧 딸을 버린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암 수술이후에는 가슴이 잘린 몸을 긍정하는 것이 힘들었다. 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건 늘 너무 힘들다.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 같다. 이제는 나이 듦을, 내가 늙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일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분명 예쁘지 않아도 진정으로 아름답고 건강하게 늙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늙음도,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란다.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