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험으로 말하다

하늘이 보내는 두번째 위로, 딸과의 만남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04.01 08:30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39. 딸과의 우연한 만남 두번째 
 
[연재 칼럼]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일다> www.ildaro.com

유학시절, 그곳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공부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니?” 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당연하지! 돌아가서 만날 사람이 있어”라고 대답했다. 이건 진심이었다. 나는 딸 때문에 떠남을 선택했지만, 딸은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한국에 돌아왔지만, 딸을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새엄마를 친엄마로 알면서 사는 아이를 혼란스럽게 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나는 늘 그런 식으로 아이를 만나는 걸 회피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자라서는 혼란스럽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 고등학생일 때는 입시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참으로 갖가지 이유를 들어 딸과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이가 느낄 상처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고, 무엇보다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게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나는 딸을 가장 사랑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딸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했고, 내 상처에 더 매달려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항상 지금은 늦었다고, 좀 더 일찍 아이를 만났어야 했다며, 늘 후회하면서도 딸을 만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빨리 세월이 흐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옛날, 아기의 이유식이 담겨있던 작은 병을 찬장 깊숙이 넣으며, ‘나중에 우리 딸이 학교에 가면, 여기에 김치를 싸줘야지’ 했다. 그러면서도 ‘그때가 언젠데…’ 하도 까마득해, 혼자 푸슬푸슬 웃었던 적이 있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그 병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그때가 언젠데’ 했던 그 세월이 다 지나,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중학생이 되었고, 도시락을 챙겨 다니던 시절도 어느새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요즘은 아이와 함께 살았다 하더라도 그 병에 반찬을 챙길 필요도 없었을 테지만, 찬장 깊숙이 빈병을 넣어두며 느꼈던, 그 까마득한 세월의 몇 배의 시간을 빠져나왔다.

 
그러다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서야 불현듯, ‘우리 딸도 블로그나 미니홈피 같은 걸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실, 이런 추측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딸 또래의 아이들을 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요즘 애들이 무엇을 하며 노는지 잘 알지 못했다. 블로그를 하는 초등학생인 조카들과 이웃 어린이들을 발견하고 나서야, ‘이런 꼬마들도 블로그를 하는데, 고등학생인 딸이 설마 아무 것도 안 할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이름과 생년월일이 다였다. 그것을 가지고 포털사이트들을 살피면서, 밤을 새워 작은 단초들을 모아나갔다. 그렇게 해서 결국, 딸의 것으로 확신이 가는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때의 흥분과 놀람이란…….
 
아이는 제법 많은 양의 글을 포스팅해 놓고 있었다. 나는 삼일 밤낮을 새다시피 해가며, 거기에 쓰여 있는 것들을 다 읽었다. 이제 나는 딸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 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안다. 나는 곧바로 동사무소로 달려가 아이의 주소지를 확인했다. 인터넷의 상세한 지도는 딸이 학교를 갈 때, 어떤 길을 따라 걸어가는 지도 자세하게 보여 주었다.
 
나는 여러 날 그냥 딸의 블로그만 드나들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딸에 대한 근황을 자세하게 알면 알수록, 그녀가 더욱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니까, 지금쯤이면 어떤 경로로든 딸이 출생의 진실을 알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조바심이 났다. ‘그렇다면, 빨리 딸을 만나러 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껏 딸을 만나기 위해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면 늦어서는 안 된다고, 아이가 나를 기다리다가 너무 지쳤을 때 가서는 정말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딸을 만나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직 성인이 아니니, 먼저 전남편을 만나야 한다는 것쯤은 모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결정을 내리기 전, 우선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집, 그 사이를 오고가는 길들을 더듬으며, 좀 걷기라도 하고 싶었다. 당장은 그렇게라도 아이를 느껴야겠다고 생각하고, 얼른 딸이 사는 동네로 나들이를 떠났다.
 
그녀는 지방의 한 소도시에 살고 있었다. 고속버스로 몇 시간 달려 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우선 택시를 타고 아이의 고등학교로 갔다. 그날은 마침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었다. 텅 빈 교정을 한참 동안 걸었다.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교실이 어디쯤일까’ 하면서 들여다보이지도 않는 건물 안을 기웃거렸고, ‘그래도 여기는 쉼 없이 드나들었겠지’ 하면서 교문 앞을 수없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교정 한편에 있는 벤치에도 앉아 숨을 고르기도 했다. 우리 아이가 온종일을 보내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학교 구석구석이 모두 애틋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이제 출력해온 지도를 펴고 표시한 길을 따라 걸었다. 딸이 살고 있는 집까지 지도를 보고 걸어갈 참이다. 학교에서 집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아이의 집은 그 도시에서도 외곽에 자리해 한가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버스에 시달리지 않고 아이가 학교와 집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집을 마련한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도랑도랑 흐르는 작은 내를 끼고 햇빛이 눈부신 들판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아이의 집을 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바로, 저 집이겠구나!’
 
주민등록 등본에 기록되어 있는 주소지, 바로 그 밑에 내가 있었다. 아이의 집 바로 근처에, 아니 아이 바로 근처에, 내가 있었다.
 
나는 정말 그렇게만 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이성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떻게 참고 살아왔는지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그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나는 어느새 그녀의 집 현관 앞까지 와있었다. 그러면서 불현듯, ‘내가 여기 못 올 이유가 없지!’ 하는 생각이 가슴으로부터 솟구쳐 올랐다. 사람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띵동”
“.......”
 
아무 대답이 없자, 나는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띵동” 
“.......”
 
그러나 나는 여기서도 포기하지 않고, 경비실까지 달려가 아이의 집에 정말 사람이 없는지 인터폰으로 확인을 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는 아파트 단지 보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잠깐, 잠깐만 앉아 있으면, 나아질 것 같았다. 나는 숨이 가다듬어질 때까지 잠시 앉아 있었다. 그렇게 다시 이성을 되찾은 나는 치마를 털썩털썩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의 학교에서도, 아이의 집 앞에서도, 계획한 것보다 모두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다.
 
돌아가기 위해 다시 냇가를 따라 걸었다. 멀찍이 보이는 찻길에서 택시를 잡아야 할 것이다. 이제 집으로 간다. 계획한 걸 모두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안타깝기만 했다. 나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토요일 오후의 한적한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멀리, 흰 셔츠 차림의 사람이 콩알만 하게 보일 뿐이었다. 어른거리며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우리 딸이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저기, 저 사람이 우리 딸이었으면…….’
 
공연히 햇살이 신경을 거스른다. 방금 전, 눈부시다고 느꼈던 햇살이 머리 위로 사정없이 내리 꽂히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콩알만 하게 보이던 사람이 좀 더 가까워졌다. 긴 머리를 찰랑이며,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딸 생각이 난다.
 
‘저 아이가 우리 딸이었으면……. 그럴 리야 없지만, 그래도 저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바로 저 아이가 내 딸이었으면…….’
 
그건 기도라기보다 딸의 집 앞에서 만나지도 못하고 발길을 옮겨야 하는 속상함, 안타까움 같은 것이었다. 눈이 아프다. 눈이 아픈 건 햇빛 때문일 거라고, 햇빛이 자꾸 눈을 어른거리게 한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터덜터덜 풀죽어 걸었다. 그러는 사이, 그 아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앞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아이에게 나는 시선이 머물렀다. 이제, 그 아이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렇게 하늘이 내게 보내는 두 번째 위로가 시작되고 있었다.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