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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딸을 만나러 가는 길 (34) 
 
[연재 소개]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일다> www.ildaro.com

자매들의 이런 ‘추억 간직 습관’은 어쩜 집안 내력인지도 모른다. 언니나 동생보다 내 딸과 관련된 추억의 물건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뭔가 기념하는 걸 정말 좋아하신다. 그래서 집안의 가구와 가전제품들조차 특별한 사건의 기념물인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어머니는 내 딸, 아니 더 정확히는 내 결혼생활과 관련된 물건들을 여럿 가지고 계시다. 예를 들어, 내 결혼식 비디오테이프나 우리 가족이 썼던 은수저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은수저들은 금고 속에 보관중이다.
 
한번은 “그까짓 비디오테이프는 안 버리고, 왜 갖고 계세요?” 하니까,
“무슨 소리야, 얼마나 멋있니! 우리, 한번 다시 볼까?”
하시며, 진정으로 당시를 기쁘게 추억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 딸이 아기였을 때 쓰던 포대기.     © 윤하 
 
이런 것들은 이미 내가 마음대로 손대거나 없앨 수 없는 어머니의 물건이 되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포대기’다. 어머니의 장롱 속에는 딸이 아기였을 때, 내가 썼던 포대기까지 있다. 그 포대기는 마치 어머니 마음 깊숙이 존재하는 손녀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처럼 느껴져, 차마 버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자매들처럼, 내 딸을 만나면 그걸 주겠다고 하신다. 지난주에 딸의 털조끼를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포대기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것을 잊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난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해, 다짜고짜 포대기를 달라고 했다.
 
다소 당황해 하시며, “그걸 뭐하게?” 라고 묻는 어머니께,
“고쳐 쓰게요. 아직, 뭘 할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살펴보면 생각이 날 거예요. 그건 엄마가 제게 준 선물이기도 하잖아요. 제 딸보다 엄마와 저의 추억의 물건이니까요.” 했다.
 
“그래, 요즘 누가 그런 포대기를 쓴다고! 엄마도 한가쳐서 좋겠다.”
라고 선선히 허락하셨지만, 난 어머니의 허전해하는 마음을 수화기 너머에서조차 읽을 수 있었다.
 
그랬다. 그 포대기는 어머니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러고는 며칠 전 부모님 댁에 가서 그걸 받아왔다. 아이의 포대기를 다시 본 것이 몇 년 만인가? 포대기 끈은 짜글짜글 헤질 대로 헤진 모습이었다. 낡아 더 이상 쓸 수도 없는 물건을 손녀에게 주겠다고 보물처럼 간직하고 계신 어머니가 이해가 안 갈 지경이었다. 낡은 물건 속에 서려있는 추억보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이 안타까워, 눈이 아리하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난 어머니께 포대기를 사달라고 졸랐다. 그런 내게 “한 달도 안 된 아이를 누가 업느냐?”고 야단을 치셨지만, 내 성화에 못 이겨 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포대기를 사다주셨다. 어머니는 포대기를 주시며, “애기는 왜 그렇게 업으려는지……. 그래, 고생 좀 해봐라!” 하시며, 짓궂게 웃으셨다.
 
딸이 아주 아기였을 때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포대기에 아기 업길 좋아하는 내게 길이 든 아이도 업히길 정말 좋아했다. 오죽하면, 아기가 가장 먼저 한 말이 ‘엄마’도, ‘아빠’도 아닌 ‘어부바’였을까?
 
그러나 점점 자라면서, 발을 동동거리며 등에 매달리는 아이를 업을 때마다 ‘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포대기를 주실 때, 어머니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며 내 자신을 한탄했지만, 그건 즐거운 한탄이었다. 난 아기가 너무 자라서 업기에 힘이 부칠 때까지 딸을 업어주었다.
 

▲ 아이와 나를 묶어 주던 포대기로 만든 깔개 위해서 아이를 업고 다녔던 옛날을 생각하며 잠 들 것이다.     © 윤하


그런 포대기가 다시 내게로 온 것이다. 나는 어머니께 받아온 포대기를 가만히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포대기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실용적인 것이라면, 깔개가 좋겠다 싶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썩둑썩둑 잘랐다. 도저히 재사용조차 할 수 없겠다 싶은 끈은 쓰레기통에 미련 없이 던지고, 체크 천으로 바이어스를 둘렀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디자인의 누비포대기에 체크무늬를 두르니, 좀 더 발랄한 느낌이다.
 
난 이걸 침대에서 쓸 생각이다. 아이와 나를 칭칭 묶어주었던 것, 아이를 업고 다녔던 옛날을 생각하며, 오늘은 그걸 펴고 잠을 자야겠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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